[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뿌리를 내릴 틈이 없는 연속경기 출장기록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9.02 07: 30

제1막. 이범호의 6.4사태
2007년 이범호(당시 한화소속)가 26세의 비교적 어린 나이로 500경기 연속출장기록을 돌파하자 세상은 최태원이 보유하고 있는 1014경기 연속출장기록을 깨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로 그를 지목했다.
젊은 나이도 나이지만 해가 갈수록 수비는 물론 타격 기술과 파워가 진일보 하는 그의 끝없는 진화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만한 선수를 팀 내에서 찾기 어려워 보였기에 이범호의 기록행진은 부상이라는 돌발 악재만 만나지 않는다면 상당기간 쭉 이어질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범호는 이듬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부리에 걸려 연속출장기록을 615경기에서 끝내야 했다. 2008년 6월 4일 광주 KIA전, 허리통증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져있던 이범호는 경기 도중 쏟아진 폭우로 경기가 7회 강우콜드게임으로 종료가 되는 바람에 덕아웃에 앉아 손을 써보지도 못한 채, 내심 애지중지하던 기록이 잘리는 아픔을 겪고만 것이다. 
경기 후반 이범호를 대타로라도 기용해 연속 출장기록을 이어가게 하려던 김인식 감독은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을 만나 이범호의 기록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힘들더라도 경기를 단 1이닝만이라도 좀더 진행했으면하는 애타는 심정을 내비쳤으나, 계속되는 비로 그라운드는 이미 더 이상 경기를 속개할 수 없을 정도로 젖어 있었고, 결국 이범호의 기록도 빗물에 씻겨 떠내려가고 말았다.
제2막. 이대형의 7.4사태
올 시즌을 앞두고 발행된 기록집을 들춰보면 연속경기 출장기록이 진행 중인 선수명단 2순위에 이대형(LG)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76경기에 연속 출장했다는 내용과 함께.
빠른 발로 상대를 유린하며 LG 공격의 첨병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이대형의 나이는 올해로 27세. 과거에 비해 한층 나아진 타력을 엄청난 주력에 덧씌워 올 시즌 상대에겐 더욱 위험한 존재로 떠오른 이대형에게 있어 연속경기 출장기록의 최대 걸림돌은 잦은 도루로 인한 부상의 위험과 이병규와 이택근의 가세로 더욱 막강해진 국가대표급 외야진에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이 걸린 자리보전 여부였다. 
하지만 이렇듯 산적한 위기에도 사상 최초의 3년 연속 60도루 돌파와 4년 연속 50도루 기록을 향해 매진한 이대형은 의외로 잘 버텨냈고, 4년 연속 도루왕을 향한 그의 거침없는 질주 속에서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어느덧 300을 넘어 400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 시즌까지 전 경기 출장기록을 잇는다면 최대 409경기까지 기록을 늘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7월 4일 하늘은 야속하게도 3년 전 이범호에 이어 이대형의 뒷덜미를 또 한번 낚아채갔다. 잠실서 열린 롯데전에서 이대형은 컨디션 부조와 상대 선발이 좌완(장원준)이라는 핸디캡에 걸려 선발 출장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던 와중, 갑작스레 퍼붓는 비로 경기가 8회에서 중단되는 바람에 경기에 대타나 대수비로라도 출장할 수 있는 기회를 그만 잃어 연속 출장기록을 353경기에서 멈춰야 했던 것이다.
역시 김인식 감독이 그랬듯 이대형의 기록중단 사태에 화들짝 놀란 LG 박종훈 감독도 강우콜드게임 선언을 조금이라도 늦출 것을 주문하며 날씨가 개이기만을 기다렸지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3막. 김현수의 8.26사태
“철인 최태원의 기록을 언젠가는 꼭 깨고 싶다.”
김현수가 늘 마음 속에 두고 있던 동경의 기록은 어쩌면 4할이 아니라 최태원의 연속출장 기록을 깨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답지 않은 타격 기술을 바탕으로 장타력까지 겸비한 교타자로 자리매김하며 어느덧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타자 중의 한 명으로 떠오른 김현수.
지난해(2009)까지 김현수는 284경기로 진행형 연속경기 출장기록 선수명단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 시즌 들어서도 꾸준한 활약으로 연속경기 기록을 하나하나 늘려가 어느덧 400경기를 눈 앞에 두고 있었는데 김현수 역시 부상 아닌 허무한 이유로 8월 26일, 그렇게 아끼던 기록을 반 강제로 손에서 내려 놓아야 했다. 우천으로 인한 잔여경기로 예정된 삼성과의 대구 단발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4-6으로 뒤지던 두산은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2사 1, 2루의 역전 찬스를 잡았다. 5번타자 최준석 차례. 마운드에는 우완 배영수(삼성)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쯤에서 대타로 김현수를 쓰지 않을까? 이곳 저곳 김현수를 찾는 관계자들의 눈길이 오갔지만 이날 따라 유난히 타격감이 좋았던 최준석(3타수 3안타)이 그대로 타석에 들어섰다. 결과는 스탠딩 삼진. 경기는 속절없이 끝이 났고, 김현수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그렇게 396경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뒷날 밝혀진 불출장 사유는 정신 재무장.
지금의 시점으로 따져 진행형인 한국프로야구 연속경기 출장기록 리스트의 가장 앞자리에는 넥센의 유격수 강정호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김현수와 이대형에 이어 3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올해 1, 2위 선수가 나란히 나동그라지며 당당히 선두자리로 치고 올라왔다. 현재(9월 1일) 기준으로 326경기 연속출장 진행 중이다.
앞서 열거한 이범호, 이대형, 김현수 등 3명 외에도 박용택(LG)과 고영민, 손시헌(이상 두산) 등이 최근 3년간 200~400경기 이상의 연속 출장기록을 이어왔지만, 컨디션 난조와 잔 부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모두 맥이 끊어진 상태다.
메이저리그의 거목, 칼 립켄 주니어의 2632경기 연속출장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까지 탄생된 수많은 대기록들 중, 가장 의미있고 가치 있는 기록을 꼽아보라면 사람들은 과연 어느 것부터 헤아릴까?
사이영의 개인통산 511승? 아니면 놀란 라이언의 5714 탈삼진?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안타나 1941년 테드 윌리엄스의 4할 타율(.406)은 어떨까? 배리 본즈의 통산 762홈런이나 피트 로즈의 개인통산 4256안타는?
그러나 몇 년 전 미국에서 여론조사 형식으로 집계된 <불멸의 스포츠 10대 기록> 선정(전 스포츠 분야를 대상으로 집계)에서 가장 값진 기록 1위에 오른 것은 앞서 열거했던 대기록들이 아닌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 오리올스)의 2632경기 연속출장’ 이었다.
메이저리그 팀 당 경기수가 평균 162경기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16년 이상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출장한 것으로, 철저한 자기관리는 기본이며 연속출장을 이어갈 수 있는 전제조건인 뛰어난 기량의 유지가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대기록이다.
밤하늘의 불꽃처럼 한 때의 화려함을 내세워 팬들에게 선명하게 기억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성실함과 꾸준함을 무기로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지키며 팬들의 뇌리에 깊이 살아남는 선수가 있다. 전자의 경우 그 선수는 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지만, 후자는 팬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
줄기가 자라기도 전에, 뿌리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관심권 밖에 방치된 채, 허망한 이유로 뿌리 채 뽑혀 나가곤 하는 연속경기 출장기록 선수들의 거듭된 기록행진 중단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비단 해당 선수만의 느낌은 아닐 터이다.
대기록의 이정표 가까이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런 기록이 진행중인 지도 본인 외엔 잘 인식하지도 못하는 연속경기 출장기록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도 이 시점에서는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번에는 연속경기 출장기록에 얽힌 성립기준과 관련 사례 등을 놓고 규칙적인 면에서 접근해 보도록 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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