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일시정지경기의 덫, 시즌 최종전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09.20 08: 55

야구규칙에는 특정한 상황에서 경기를 더 이상 속행할 수 없는 경우에 일시중단하고 날짜를 정해 남은 경기를 속개하도록 하는 ‘일시정지경기(서스펜디드게임)’라는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상황이란 우천이나 일몰 등의 날씨 또는 조명시설 등의 고장 등에 의한 돌발 상황을 말한다.
대개 비가 많이 내려 경기가 중단되었을 경우 그 때까지의 득점 상황으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일반적(강우콜드게임)이지만, 득점이 이루어진 상황에 따라서는 경기종료가 아닌 일시중단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날씨(우천)로 인한 콜드게임이나 일시정지경기 모두 정식경기의 기본 조건인 5회를 넘겼다는 것을 전제(홈팀 리드시는 5회초 완료)로 한다.
그러나 정식경기 성립요건과는 무관하게 일시정지경기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조명시설의 고장 등으로 경기가 도중에 끊기게 되면 중단 이닝이 어느 시점이던 무조건 일시정지경기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사에 일시정지경기로 처리된 사례는 모두 5번. 이중 4차례는 우천으로 인한 일시정지였지만 나머지 1차례는 조명시설 이상으로 일시정지가 된 사례다.
1999년 10월 6일 쌍방울과 LG(전주구장)의 더블헤더 2차전 경기로 구장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1회 도중 일시정지경기로 처리된 바 있다.
한편 정식경기가 성립된 뒤 우천으로 인해 일시정지경기가 되는 상황은 단 두 가지뿐이다.
어느 이닝 초(6회 이후) 공격에서 원정 팀이 지고 있던 경기를 동점으로 만든 후부터, 홈 팀이 말 공격에서 다시 리드하는 점수를 얻지 못한 상태로 수비나 공격 도중 경기가 끊겼을 경우, 일시정지경기가 된다.
또 한가지는 역시 어느 이닝 초 공격에서 원정 팀이 역전을 포함한 리드하는 점수를 올린 뒤부터, 홈 팀이 말 공격에서 최소한 동점이상의 상태로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수비나 공격 도중 경기가 끊겼을 경우에도 일시정지경기로 처리된다.
이 두 가지 경우를 일시정지로 처리하는 근본 이유는 홈 팀에 대한 어드밴티지 때문이다. 홈 팀이 동점이나 다시 리드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하게 갖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가 잘려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막아주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일시정지경기를 훗날 치르는데 있어서는 몇 가지 규정에 관한 원칙이 존재한다. 경기가 일시 중단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진 팀간의 예정된 경기가 남아있을 경우, 그 예정된 경기보다 앞서 치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대진 팀간의 경기가 같은 장소에서 남아 있지 않을 경우에는 상대 팀 구장으로 장소를 옮겨 훗날 예정된 경기보다 앞서 거행하게 된다.
그런데 같은 대진 팀간의 경기가 어느 장소에서도 남아 있지 않을 경우(시즌 최종전을 뜻한다)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일시정지경기 관련 규칙 4.12를 숙독해보면 (c)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두 구단의 마지막 일정에서 일시정지경기가 발생하여 속개할 수 있는 일정을 잡을 수 없을 때는 콜드게임으로 한다’
지난 9월 9일 KIA와 넥센(목동)의 시즌 19차전은 6회초 시작 직전, 5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마무리(KIA가 3-2로 승리)가 되었는데, 만일 스코어 2-2 상황에서 6회초에 원정 팀 KIA가 1점을 얻어 3-2로 리드한 후, 6회초 도중이나 6회말 넥센의 공격이 완료(3아웃)되기 전에 그 점수 그대로인 상태에서 경기가 우천으로 중단되었다고 한다면, 이 경기는 정황상 일시정지경기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두 팀간의 최종전인 관계로 앞서 말한 규칙 (c)가 적용되어 콜드게임으로 종료된 것으로 처리된다.
이 규정은 아직 전례도 없고 흔히 나오기가 힘든 경우라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만일 양 팀간의 순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시즌 최종전이 우천으로 경기 중 차질을 빚는다면 미처 생각지도 못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규칙이다.
따라서 양 구단간의 시즌 최종전을 치를 때는 당일 날씨의 변동성과 기후상태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올 시즌에는 너무 일찍 포스트시즌 진출 팀과 순위가 명백하게 가려져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운 잔여경기가 치러지고 있지만, 순위싸움이 치열할 경우, 최종전에 내리는 비는 얘기가 달라진다.
가외로 일시정지경기와 관련된 오래 전의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생각난다. 1990년 대통령배 실업야구 봄철리그에서 한전과 농협의 경기가 대회규정에 의해 일몰사유로 6회말에 일시정지경기가 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다음날 나머지 경기를 이어서 진행하면 그 뿐. 그러나 전날 일시정지경기의 주심을 맡았던 심판원이 공무원인 관계로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 다른 주심으로 바꿔 속개된 경기를 마저 치르려고 했는데, 0-6으로 끌려가던 한전 측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주심이 바뀐 상황에서는 경기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야구규칙 9.02 (d)항을 보면 심판원은 부상이나 질병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심판원도 경기 중 교체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바로 이 대목을 한전이 짚고 나온 것이었다.
주최측은 규칙은 그렇지만 사정이 이러저러함을 이유로 설득, 경기에 나서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한전은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겠다며 버텼고, 끝내 이 경기는 경기 거부의사를 거두어 들이지 않은 한전의 몰수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일시정지경기가 몰수패로 돌변한 것이다.
프로였다면 그러한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일시정지경기를 마저 치르게 되는 날의 심판원과 기록원은 물론 선수 역시도 중단된 그 상황 그대로를 옮겨다가 나머지 경기를 치르는 것이 규정의 대원칙이다. 단 관중은 예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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