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보는 사람의 진을 빼는 ‘불펜야구’, 원인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0.10.22 12: 16

SK 와이번스의 통산 3번째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0 포스트시즌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불펜야구’였다. 
선발투수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매 경기마다 조기에 무너져 내린 선발투수의 뒤를 다수의 구원투수들이 줄줄이 메워나가는 바람에 공식기록지의 투수기록 집계란은 빈 칸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빼곡히 채워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심지어 수기로 투수 통계란을 새로이 두어줄 그려 넣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SK와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평균 3시간 30분, 5경기를 치르는 동안 65명의 투수들이 집단으로 마운드를 들락거렸던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는 평균 4시간을 훌쩍 넘는 경기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와 같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투수교체 빈도수가 극심했던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은 당연한 대답이 되겠지만 믿을만한 수준급 선발투수의 수적 부족이 첫 번째 원인이다. 팀마다 1-2명을 제외하면 긴 이닝을 버텨줄 만한 투수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나마 믿고 싶은 1,2선발도 Q.S는 고사하고 5이닝을 채우기도 버거울 정도의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포스트시즌 경기(14경기)를 통틀어 선발투수가 Q.S(퀄리티 스타트, 6이닝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경우는 모두 3번뿐이었다.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 김선우(두산,7이닝 무자책점)와 사도스키(롯데,6이닝 무실점)가 맞대결을 벌여 서로 Q.S의 기록을 남겼던 경우와 두산과 삼성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두산의 히메네스가 7이닝 무실점의 역투를 선보였던 것이 전부이다.
숫자로 풀면 14경기를 기준으로 28명의 선발투수가 등판했다고 볼 때 Q.S의 기준을 넘긴 횟수는 고작 3번뿐이었다라는 얘기가 된다. 
두 번째 원인은 큰 경기일수록 투수교체 타이밍을 빠르게 하는 것이 낫다는 지론에 근거한 과감한 교체 타이밍 포착 때문이다.
선발투수가 일찍 물러난 경기 중에서도 평소였다면 그대로 더 던지게 놔둘만한 상황도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4.2이닝 만에 물러난 삼성 배영수(투구수 67개, 2실점)와 4차전에서 4이닝 동안 1안타 1볼넷 만을 내주는 호투에도 마운드를 내려온 SK의 글로버(투구수 51개, 무실점)이다.
한국시리즈 1차전 때 5회에 나란히 쫓겨난 삼성 선발 레딩(3실점)과 SK의 선발 김광현(3실점)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좀더 끌고 갈 수 있어 보이는 상황에서의 강판이었다.
세 번째는 상대 공격의 맥을 끊기 위한 포석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는 정석이 되어버린 좌타자 때 좌투수, 우타자 때 우투수 기용법을 기본으로 상대가 치기 어려워하는 유형의 투수를 승부처에서 골라서 등판시키는 마운드 운영법이 이른바 인해전술식 투수기용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근거한 SK의 풍부한 좌완 계투진(전병두, 큰 이승호, 작은 이승호, 정우람)은 상대적으로 주력 좌타자가 많았던 삼성(이영욱, 박한이, 최형우, 채태인, 조영훈) 타선을 고비마다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네 번째 원인은 믿을 만한 전담 마무리 부재현상이다. 과거 속의 우승 팀들을 떠올려보면 우수한 선발투수 외에도 대부분 걸출한 마무리 투수가 꼭 한 명씩은 끼어 있었다. 1986년 해태의 김정수, 1990년과 1994년 LG의 김용수, 1999년 한화의 구대성, 2004년 현대의 조용준, 2005년 삼성의 오승환 등은 뒷문을 책임지며 그 해 한국시리즈 MVP에 까지 올랐던 선수들이다.
그러나 올 시즌 대부분의 팀들은 고정된 마무리를 찾지 못해 2-3명의 투수들을 상황에 따라 순서를 바꿔가며 마운드에 올리는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했고, 그 여파가 포스트 시즌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다섯 번째는 갈수록 분업화되고 있는 야구의 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선발투수가 아무리 잘 던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기록 등이 걸려있지 않은 이상, 일정 투구수가 넘게 되면 마운드에서 내리고 구원투수를 올린다. 만일 남은 이닝이 길다면 전담 마무리를 바로 올리지 않고 중간 계투진을 활용한다. 
선발투수들의 부상방지와 잦은 등판으로 인한 전담 마무리 투수들의 혹사를 막기 위해 일정 비율로의 역할을 분담 지우려는 것이다.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완투라는 것은 희귀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최근 3년간(2008~2010년)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선발투수가 완투를 한 것은 2009년 KIA와 SK의 한국시리즈 5차전 때의 로페즈(KIA)가 유일하다.
여섯 번째는 경기 운영과 선수 활용면에서 갈수록 감독의 선택권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믿는 선수 몇 명만을 가지고 배짱 좋게 큰 경기를 치르던 시대의 무용담은 이제는 옛날 이야기다. 
1983년 해태가 MBC를 4승 1무로 누르고 처음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했던 그 해, 해태가 5경기를 치르는 동안 기용했던 투수는 달랑 3명이 전부였다. 당시 에이스 이상윤과 김용남 그리고 재일동포 주동식 이상 3명이다. 6일간 5경기(15회 연장경기 포함)를 치르는 강행군이었음에도 한 경기에 투수 2명 이상을 기용한 경우가 없었다.
해태 타선 역시 그랬다. 스타팅 라인업 외에 대타(김종윤, 양승호)나 대주자(조충열), 대수비(김준환)를 내보낸 경우는 모두 합해 4번에 불과하다.
물론 투수나 타자들의 기량이 그 만큼 출중했다는 증거가 되겠지만 반대로 보자면 선수들이 하는 야구에 감독의 선택권과 조정 폭이 지금보다 크게 끼어들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외에도 현대야구의 전력분석 능력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발전한 까닭에 상대의 약점을 연구하고 잡아내 경기에 활용하는 빈도수가 늘어났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대야구의 변화요인이라고 하겠다.
속절없이 한국시리즈에서 내리 4연패(무승부 제외)를 당한 6번째 팀으로 남게 된 삼성 선동열 감독은 최종 인터뷰에서 승자인 SK의 야구를 ‘알 수 없는 야구’로 표현했다. 선동열 감독 역시 공격력보다는 절묘한 투수교체 타이밍을 무기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성향임을 고려할 때 다소 의외적인 표현이었지만,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러내는 동안 그 어느 팀을 막론하고 무너진 투수력을 보충하느라 진을 빼는 모습들이 프로야구라는 최고의 이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현실야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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