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1패로 막을 내린 한국(SK)과 대만(슝디)의 2010 클럽 챔피언십 2차전에서 6회말 2루타를 치고 나간 슝디의 선두타자 장즈하오가 후속 타자의 보내기 번트 때 3루 진루를 시도하다 포수의 송구에 의해 3루에서 태그아웃 된 것은 팽팽하던 2차전 승부의 물꼬를 한국 쪽으로 트는데 있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주었다.
1차전 역전패에 이어 2차전서도 경기흐름상 일정 부분 끌려가는 모양새였던 점을 감안하면 슝디에 선취점을 내줄 경우, 자칫 2차전까지도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커 보이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으로선 다행이었지만 대만으로선 무척 아쉬운 대목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한가지 문제를 던져보도록 하자.

3루에서 태그아웃 된 대만 2루주자의 아웃은 기록적으로 볼 때 주루사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흔히 주루사라고 하면 주자가 판단미스나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루상에서 아웃되는 그림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물론 넓은 의미로 볼 때 주루사는 그렇다.
아웃 카운트를 착각해 플라이 아웃 타구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뛰다가 본래의 루에 돌아오지 못해 아웃되거나, 후속 타자의 안타 때 2개루 이상의 진루를 노리다 아웃된 경우 등이 대표적인 주루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타자가 장타를 치고 무리하게 2개루 이상을 노리다 아웃된 경우 또는 3루주자가 후속 타자의 희생 플라이를 이용해 득점에 성공했지만, 3루 리터치가 빨라 나중에 어필아웃 되고 마는 경우 또는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도루자) 되거나, 투수의 견제구에 주자가 걸려 아웃(견제사) 되는 일 등도 포괄적 범주의 주루사에 포함된다.
그런데 가끔 주루사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태그아웃 된 경우를 주루사로 동일시 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주자가 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주루행위를 시도해 태그아웃 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 해석인데, 야구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기록적으로는 무리가 있는 풀이다.
단적인 예로 무사 1루 때 리버스 포스 플레이에 의한 병살타(기록표기상 3A-6T)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1루주자가 2루부근에서 태그아웃 된 사실을 주루사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데, 타자의 타구로 주자가 다음 루에 도달하기 전, 태그아웃 되었다면 이는 주루사가 아닌 선택수비사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자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타자의 타구를 이용해 다음 루로 진루를 시도하다 아웃된 것으로써, 타자주자가 아웃되지 않는 사이 대신 아웃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슝디의 2루주자가 번트 타구를 이용해 3루로 뛰다 태그아웃된 것은 기록상주루사가 아닌 선택수비사가 된다. 가끔 2루주자가 유격수 정면 땅볼 때 2루에 머무르지 않고 무리해서 3루로 뛰다 아웃되어 어수룩한 주루플레이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자의 주루판단미스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기록상 선택수비사에 해당된다.
그러면 2개루 이상을 노리다 아웃된 것이 아니라 단지 다음 루, 즉 1개루 만을 노리다 ‘타자대신 아웃된 것을 선택수비사로 보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가령 1루주자가 타자의 타구에 직접 맞아 아웃되었을 경우, 타자대신 다음 루를 노리던 주자가 아웃된 것이지만 타자의 기록이 안타로 기록되는 관계로 1루주자의 아웃은 주루사로 처리된다.
이쯤에서 ‘주루사인지 아니면 선택수비사인지의 구별문제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거두절미하고 대답은 ‘대단히 중요하다’이다.
주루 플레이상 주자의 아웃을 주루사로 볼 것인지, 선택수비사로 볼 것인지의 문제는 투수의 실점책임 결정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닝 도중에 투수가 교체되었다고 가정할 때, 주자의 아웃을 주루사로 해석하면 그 주자를 남겨놓고 물러난 투수의 책임은 소멸된다. 다시 말해 책임져야 할 주자수가 주루사로 인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수비사가 되는 경우에는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책임져야 할 주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선택수비사로 아웃된 주자가 없어지기는 했지만 대신 타자주자가 루상에 출루해있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주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야구기사를 보면 가끔 ‘결정적 주루사’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대개 종반의 승부처에서 이기고 짐이 결정되는 순간의 원인은 결승타나 수비실책에 의한 판가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경기전체를 놓고 보면 경기 중반에 일어났던 주루사 하나가 그 경기 전체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2010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이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두산에 패한 것도 시리즈 내내 터져 나온 주루사에 발목이 잡힌 때문이다. 주루사는 규칙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재야의 야구용어이지만 경기와 기록에 미치는 그 영향력 만큼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존재다.
첫째, 주루사는 주자가 주루 플레이 도중 아웃된 것을 말한다. 도루자도 견제사도 광의의 주루사다. 둘째, 태그상태의 주자가 아웃된 것 역시 넓은 의미로서의 주루사로 볼 수 있지만, 타자의 타구로 1개루 진루하려다 태그아웃된 것은 기록상 주루사가 아니다.(타구에 주자가 직접 맞은 경우는 제외) 셋째, 주자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주루플레이 도중 아웃된 것은 모두 주루사다. 넷째, 타구와 관련해 리터치 의무 위반이나 공과를 저질러 어필아웃된 것 역시 주루사에 속한다. ‘주루사’, 알고 보면 야구의 재미는 배가 된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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