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인심 쓰고 매맞은 OB 베어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1.10 08: 55

지난번에 언급했던 몰수경기에 관한 뒷 얘기 하나를 풀어내볼까 한다. 야구경기장에 어느 한 팀이 경기 개시시간이 지나도록 도착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처리될까?
야구규칙의 몰수경기 관련조항에는 경기개시 예정시간에 플레이 볼이 선언되고 나서 5분이 지나도록 어느 한 팀이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을 경우, 상대 팀에 몰수경기 승이 주어지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한편 규칙보다 우선하는 대회요강에도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것에 대비한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원정 팀이 정당한 사유 없이 경기개시 예정시간에 구장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에는 본거지 구단 팀(홈팀)에 승리가 돌아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홈팀의 몰수경기 승은 경기개시 예정시간에 홈팀이 해당 구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1군 경기에서 특정 팀이 경기개시 예정시간에 늦어 경기를 치르지 못한 적은 아직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1990년 공식적인 2군 경기가 시작된 이후, 2군에서는 특정 팀의 도착 지연으로 경기개시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경기를 치러야 했던 적이 두어 차례 있었다.
경기개시 예정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구단에 대한 페널티가 규칙이나 대회요강에 엄연히 명기되어 있는데, 어떻게 경기개시 예정시간을 넘겨 도착했음에도 경기를 치르는 일이 가능했었을까?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1990년 8월 19일, 경기도 이천구장에서는 OB 베어스(홈팀)와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경기가 예정(오후 2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후 2시가 넘도록 원정 팀인 삼성 선수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성남에 숙소를 정한 삼성이 이천구장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남짓. 그러나 삼성은 경기개시 4시간 전인 오전 10시께에 성남을 떠났음에도 오후 2시로 예정된 경기 개시시간이 넘도록 야구장에 도착을 할 수가 없었다. 원인은 극심한 휴가철 교통체증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홈팀인 OB가 대회규정에 따라 앉아서 1승을 그냥 챙길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 OB 윤동균 감독은 구장에 도착해있는 KBO 심판원과 기록원을 통해 이런 경우에 어떻게 조치되는지를 따져 물었고, 이곳 저곳 문의해 얻어진 1차적 결론은 몰수경기 승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아니고 휴가철 교통체증으로 경기에 늦고 있는 삼성의 딱한 사정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주변의 의견과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 볼 때 OB도 향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론에 힘이 실렸고, OB 역시 대의를 위해 일정시간을 더 기다리는 아량을 베푸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경기 예정시간인 정각 2시에서 약 30분 정도가 흘러간 시점에 삼성은 이천구장에 들어섰고, 연습이고 식사고 따질 경황이 없었던 삼성은 가방을 던져놓기가 무섭게 곧바로 경기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인정미 넘치는(?) 2군경기인 까닭에 칼로 두부 자르듯 냉정한 규정적용을 고집하지 않았던 홈팀 OB는 이날 참으로 황망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몸 풀기를 끝내도 여러 번 끝냈을 OB와는 달리 변변한 캐치볼 조차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경기에 돌입한 삼성은 시작부터 일을 만들고 말았다.
1회초 시작부터 OB선발 김상진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3회초에는 타자 일순까지 곁들이며 7-0의 일방적 페이스로 OB를 몰아붙인 것이었다.
경기 모양새가 이쯤 되자 OB의 윤동균 감독은 달아오른 얼굴빛으로 몰수경기 당할 것을 모면하게 해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다소 격앙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감독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경기 후반 OB가 부쩍 힘을 내며 벌어진 스코어를 따라잡기 시작, 8회말 기어코 8-8 동점을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OB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9회초, OB는 이날 경기에서 물이 오를 대로 올라있던 삼성의 1번 강종필(이날 강종필은 3루타 1개와 연타석 홈런을 포함, 4타수 4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에게 결정타인 대형 2점 홈런을 얻어맞고 8-10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놨더니 물에서 나와 구해준 사람의 뺨을 때린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정신 없이 도착해 얼떨결에 승리를 하나 챙긴 삼성은 부리나케 장비를 수거해 야구장을 떠났고, 그라운드에는 만신창이가 된 OB 선수들만 씁쓸히 남아 특타와 특수를 위해 그라운드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만약 1군 경기였다면?
승패에 민감하기 짝이 없는 1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도 곧바로 몰수경기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지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일정범위 시간 안에 경기장 도착이 가능한 상태라면 개시시간을 어느 정도 늦춰서라도 원만한 경기진행을 시도하는 것이 팬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 출발했음에도 결과적 도착 지연사유가 교통체증 등의 사회적 구조문제였다면 몰수경기를 선언하기 이전에 정상참작으로 조치될 가능성이 더 크다 하겠다. 
만일 천재지변이나 교통기관 운휴 등으로 일정범위 시간 안의 도착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이때는 대회요강에 의거, 경기일정 변경이나 조정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윤병웅 KB0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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