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아직은 요원한 한국판 ‘트레버 호프만’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1.25 13: 46

같은 종소리일지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 느낌이 완전 판이하게 다가오던 ‘지옥의 종소리’를 야구장에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601세이브(전체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트레버 호프만(44. 밀워키 브루어스)이 지난 1월12일 마침내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그가 위기상황이나 승리를 매조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야구장에 울려 퍼지곤 하던 ‘Hells bells’.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명 ‘트레버 타임’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었는데 호프만의 이별에 맞추어 함께 작별을 고하게 됐다.
사실 Hells bells는 1973년 호주에서 처음 결성된, 하드 락과 헤비 메탈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룹 AC/DC가 발표한 노래들 중의 하나로, 도입부에 은은히 깔려 나오는 종소리가 아주 인상적인데, 트레버 호프만이 이 종소리를 따다가 자신의 등장음악으로 사용해오곤 했었다.

“댕~ 댕~ 댕~”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 나오는 종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없이 목가적인 풍경이 눈에 아른대지만, 정작 제목 자체는 느낌과는 완전 상극. 호프만의 소속 팀으로서는 승리와 평화를 부르는 천상의 종소리였겠지만 상대 팀으로서는 불길한 예감을 암시하는 음산한 종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1993년 프로데뷔(4월 6일)이후 트레버 호프만은 16시즌 동안 총 1035경기에 등판해 1089와 1/3이닝을 던졌고, 줄곧 마무리로 활약해 왔다. 그의 기록에서 선발로 뛴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신적 압박감이 심한 마무리 자리를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었을까? 동양인보다 월등한 신체조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이너리그 시절 투수가 아닌 내야수(유격수)로 뛴 덕분에 어깨가 누구보다 싱싱한 덕을 본 때문이었을까? 호프만의 기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트레버 호프만의 경기당 투구이닝 수를 계산해보면 1.05이닝. 한 경기 평균 1이닝 정도를 던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러한 평균적인 통계자료 안에는 또 다른 조류가 숨어있다. 
트레버 호프만이 어깨부상을 당해 시즌을 통째로 쉬다시피 한 2003년을 전후로 그의 출장경기 수와 투구이닝 수를 비교해보면 작지만 의미부여가 가능한 변화가 감지된다.
2003년 이전 호프만의 기록은 출장경기 수보다 투구이닝이 대체로 많은 편이었다. 수치로 따지면 대략 1.25이닝 정도. 하지만 2003년 이후의 출장경기 수 대비 투구이닝은 0.95이닝으로 대폭 낮아진다. 이는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로서 등판하는 시점이 점점 뒤로 늦춰졌음을 말해주는 대목으로 비단 호프만에 국한된 일이 아닌, 현대야구에서 마무리 투수 등판 패턴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흔들림 없이 마무리 투수자리를 거뜬히 지켜낼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바로 절제되고 철저히 제한된 투구이닝이었다.
개인통산 559세이브로 트레버 호프만의 최고기록에 42세이브 차로 근접한 메이저리그의 또 다른 전설적 구원전문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42. 뉴욕 양키스)의 기록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16년 통산 출장 경기수와 투구이닝이 각각 978경기와 1150이닝으로 경기당 투구이닝 환산수치는 1.17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단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한국프로야구 마무리 투수들의 통계적 현실은 어떠했을까?
우선 통산 227세이브로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는 LG의 김용수가 주로 마무리로 활약했던 1986~89시즌과 1993~95시즌 그리고 1999시즌의 기록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마무리 투수들의 혹사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6년간 팀 사정에 따라 해마다 선발과 마무리를 교대로 오갔던 김용수가 마무리로만 활약했던, 앞서 얘기한 8개년의 출장 경기수(331경기)와 투구이닝(798과 2/3이닝)의 기록대비를 따져보면 경기 당 투구이닝수가 무려 2.41이닝에 이르고 있다. 이 사이 김용수가 거둬들인 세이브 숫자는 195세이브.
2001년 32세이브 포인트(18S+14구원승)로 최우수 구원투수 자리에 오르며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었던 LG 신윤호의 경기당 투구이닝수는 2.04.
1999~2000년에 걸쳐 2년 연속 구원왕에 올랐던 두산의 진필중의 경기당 투구이닝수는 1.41.(132경기/187이닝)
2000년대 초반 현대 유니콘스의 전성기를 책임졌던 조용준이 4년간(2002~05) 오로지 마무리로만 등판하며 기록한 경기당 투구이닝수는 1.30(223경기/290이닝)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고 하겠다.
1990년 38세이브 포인트(27S+11구원승)로 구원부문 1위에 올랐던 송진우(한화)가 그 해 기록한 한 경기 대비 투구이닝수도 2.55.(50경기/128이닝)
1993년과 1995년 41세이브 포인트와 38세이브 포인트로 구원왕에 올랐던 선동렬(해태)의 기록도 궁금했다.
선동렬이 구원 1위를 차지했던 2개년간 등판한 경기수는 97경기로 투구이닝은 235와2/3이닝이었다. 한 경기당 투구이닝 수 대비 수치는 2.42. 풀어 쓰자면 마무리를 위해 7회부터 등판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상 굵직하다 싶은 구원왕 투수들의 과거기록들을 살펴봤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장수하고 있는 구원전문 투수들의 경기 당 투구이닝수가 1.0이닝 전후로 근접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1이닝 대 초반은 고사하고 2이닝 대를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인 우리 마무리 투수들의 단명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미래까지 어두운 것은 아니다. 2006~2008년에 걸쳐 3년 연속 구원왕에 등극한 바 있는 오승환(29. 삼성)은 김용수가 보유하고 있는 최다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울 후보 0순위에 올라있다. 지금까지 오승환이 거둔 세이브는 총 165세이브. 김용수의 기록에 62개가 모자란다. 지난해(2010) 부상으로 4세이브에 그치고 만 것이 아쉽지만 재기에 성공만 한다면 김용수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통계적으로도 오승환의 어깨는 무겁지 않은 편이다. 그는 6년 동안 292경기에 출장해 346이닝을 던졌다. 마무리로만 나서며 165세이브를 따내는 동안 경기 당  투구이닝수는 1.18을 기록하고 있다. 
새내기 급에도 기대주가 한 명 보인다. 두산의 이용찬(22)이다. 2009년 롯데의 애킨스와 더불어 구원부문 공동 1위에 오른바 있는 이용찬은 2년간 98경기에 출장해 51세이브를 거둬들였다. 그 사이 기록한 투구이닝은 82와 2/3이닝. 경기당 0.83의 대단히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투구이닝 수치다. 
22세의 젊은 나이라는 최대 이점을 안고 있는 이용찬에게 부상이나 보직 변경이라는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그가 향후 마무리 투수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울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어느 마무리 투수가 등판할 때마다 울려 나오던 사이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살아있다.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기가 죽었다는 선동렬급은 아니더라도 등장 음악만으로도 상대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안겨줄 수 있는 한국판 트레버 호프만의 탄생을 고대해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전문투수 오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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