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 ‘고의낙구(故意落球)’는 연기력 부족이 원인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4.26 07: 40

중요한 장면에서 자신만의 생각과 의도를 담아 혼신의 연기를 다하고 있는 연기자에게 촬영감독의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날아든다.
“NG (No good).”
타구가 날아오는 동안 야수의 머릿속은 어지럽게 돌아간다. 대개 자신에게 타구가 굴러오면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 등을 감안해 어떤 패턴의 수비플레이를 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보곤 하지만, 수비를 하다 보면 아주 가끔은 연기자의 대본에 없는 ‘애드립(ad-lib)’과도 같이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때도 있기 마련이다.
지난 4월 23일 롯데의 유격수 문규현은 SK전(사직구장) 5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자신에게 날아온 직선타구를 글러브로 잡았다가 땅바닥에 얌전히(?) 내려놓는 행동으로 2루심에게 고의낙구 판정을 받는 일이 있었다.
문규현은 내심 정면으로 날아오는 빠른 직선타구를 잡았다가 놓치는 상황으로 만들어 미처 2루로 스타트를 끊지 못한 1루주자(최윤석)와 타자주자(정근우)를 모두 아웃 시켜보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그 불순한(?) 의도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려 2루심에게 곧바로 제지를 당한 일이었다.
야구규칙을 뒤적이다 보면 이처럼 수비수가 잔꾀를 써서 공격 측 주자를 2명이상 더블아웃 시켜보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것(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인필드 플라이 등)을 볼 수 있는데, 고의낙구도 그 범주에 드는 규칙 중의 하나이다.
타자를 아웃으로 처리하는 항목들을 모아놓은 <규칙 6.05> 안에는 고의낙구와 관련,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무사나 1사, 주자 1루/1, 2루/1, 3루/만루 때 내야수가 쉽게 잡을 수 있는 페어의 플라이볼이나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고의로 떨어뜨렸을 경우, 볼 데드가 되며 주자는 원래의 루로 돌아간다.’
이날 심판원에 의해 고의낙구 판정을 받은 문규현의 연기가 결과적으로 NG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짚어보자면 우선은 타구를 글러브로 잡으려 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글러브로 막지 않았다면 안타가 될 수 있는 직선타구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고의낙구 판정을 피하기 위해선 글러브나 손으로 ‘인 플라이트 상태’의 타구(뜬공)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과거 명품 유격수의 계보를 이어온 이종범(해태)과 김재박(LG) 그리고 투수 선동렬(해태)은 고의낙구 판정을 피하기 위해 어정쩡한 플라이타구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공을 주워 타자주자와 루상의 주자를 함께 아웃 시키려는 플레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타구가 내야에 뜨게 되면 포스상태에 있는 루상의 주자들이 다음 루로 뛰지 못한다는 점과 자신의 타격결과에 실망한 타자주자가 전력을 다해 1루로 뛰어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플라이타구가 바운드 되기를 기다렸다가 더블 플레이로 연결했던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라 구체적인 상황이 살아나진 않지만 이종범은 실패했고 선동렬은 성공(병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비춰보면 서툴렀던 문규현의 수비 연기력도 연기지만, 직선타구를 병살로 이끌고자 했던 의도 역시 무리가 있었다. (야수 정면이 아니라 옆으로 빠질 듯한 직선타구를 최선을 다해 잡으려다 놓쳤다면 고의낙구 판정은 선언되지 않는다)
고의낙구 판정에 걸려들지 않고 더블아웃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선행된다. 
타구가 완만한 플라이성 타구라야 한다. 타구가 땅에 먼저 떨어져도 멀리 굴러가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은 타구가 땅에 닿기 전, 글러브나 손으로 접촉을 해서는 아니 된다. 
아무리 잡기 쉬워 보이는 플라이타구라 할지라도 내야수가 고의로 잡지 않고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면 이는 고의낙구로 간주되지 않는다. 연기로 치자면 ‘NG’가 아니라 ‘OK’다.
플라이타구가 땅에 먼저 떨어졌는데도 타자가 자동아웃 되는 경우는 인필드 플라이 타구 밖에 없다. 
☞팁으로 한 가지 더. 그러면 고의낙구 규칙에 언급된 내야수라는 말의 정의와 범주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내야수’에는 투수와 포수를 비롯한 일반적인 내야수가 포함되지만, 수비시프트의 필요성에 의해 외야수가 내야 범위 안으로 들어와 수비하는 경우 역시 내야수로 간주된다. 그러나 반대로 내야수가 처음부터 외야로 나가 수비하는 경우는 내야수의 신분으로 보지 않는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 롯데 자이언츠의 문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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