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주로(走路) 개척’
지난 5월 3일 대 롯데전(사직)에서 삼성의 1루주자 채태인이 2루를 밟지 않고 지름길(?)을 이용해 3루로 질러간 주루 해프닝을 놓고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주자가 의당 밟고 지났어야 할 루를 밟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한 것을 야구용어로는 ‘공과(空過)’라 부른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touch a missed base’쯤이 되겠다.

야구에서 주자는 다음 루로 진루하려는 플레이는 물론, 플라이 타구가 잡히는 등의 이유로 원래 있던 루로 돌아가는 주루플레이(일명 역주)를 행함에 있어, 반드시 순서대로 각 루를 밟고 지나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간 주자가 루를 공과해 허무하게 아웃 되고 마는 일들을 여러 차례 접해봤지만 이번 채태인의 2루공과 아웃상황은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대박(?)’이었다. 일반적인 야구상식을 뛰어넘는 주루플레이를 채태인이 보여준 때문이다.
그렇지만 채태인이 야구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명색이 프로야구 선수인데, 2루를 밟지 않고 3루로 내처 달린 데는 급했다는 단순한 이유 말고 또 다른 나름의 이유가 숨어있지는 않았을까?
우선 그날 상황을 자세히 분석해보자.
2회초 1사 후. 처음 신명철의 우중간 타구 때 1루주자 채태인은 수비수가 잡기 힘든 타구로 판단해 2루를 지나 3루로 뛰었다. 그러나 2루를 돌고 난 채태인은 롯데 중견수(전준우)가 타구를 향해 몸을 던지자 잡히는 상황으로 판단, 발길을 되돌렸고 조금 전 지나온 2루를 다시 밟고 1루 쪽으로 귀루하려 했다.
하지만 타구가 잡히지 않고 외야 펜스 앞에 떨어지자 채태인은 또 다시 방향을 틀어 2루 쪽으로 두 번째의 줄달음질 치기 시작했는데….
사건은 바로 이 두 번째의 줄달음에서 일어났다. 2루로 향하던 채태인은 갑자기 2루를 멀찌감치 버리고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최단코스(?)를 이용, 3루에 안착하는 무모한 주루를 선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투수 송승준을 비롯한 롯데 야수들이 채태인의 엄청난(?) 공과를 눈치채지 못하기엔 공과 그림이 너무도 확실했다. 우익수 손아섭과 유격수 문규현으로부터 전해진 송구를 이어받은 2루수 조성환은 3루에 서 있는 채태인에게까지 달려와 태그를 하며 2루공과에 대한 어필의사를 표했고 최종적으로 아웃을 이끌어냈다.
이후 상황에서 심판원으로부터 아웃을 선언 당한 채태인이 3루 주루코치와 잠시 짧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는데….
짐작으로 채태인은 최초에 2루를 한번 밟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두 번째 2루로 향할 때 이미 밟았던 2루를 다시 밟지 않아도 괜찮은 것으로 채태인이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이 대목에 규칙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야구규칙 7.08 (e)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진루할 의무가 있던 루에 닿은 주자가 어떤 이유로든 원래 점유하고 있던 루로 돌아갈 경우, 다시 포스상태에 놓이게 되며 그가 도달해야 할 루가 태그되면 주자는 아웃이 된다. 이것은 포스아웃이다.’
위 내용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재(再) 포스상태’라고 할 수 있다. 포스상태의 주자가 어떤 이유로 다시 포스상태의 처지에 놓이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즉 1루주자 채태인이 처음 2루를 밟았다 하더라도 상황을 착각해 다시 2루를 되 밟고 1루로 향한 순간, 재 포스상태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채태인이 정상적인 주루 순서를 알면서도 순간 간과했다면 바로 이점을 놓친 것이다.
우중간 2루타성 타구를 때리고 2루에 도달한 신명철의 기록이 2루타는 고사하고 단타도 아닌 ‘우익수 앞 땅볼’로 강등된 이유도 채태인이 재 포스상태 신분의 주자였기 때문에 포스아웃 처리된 때문이었다.
한편 이날 롯데의 조성환이 공을 직접 들고 3루까지 쫓아와 채태인을 태그 했는데, 주자를 쫓아오지 않고 공과한 2루에 대고 채태인의 주루미스를 어필만 해도 아웃을 인정받을 수 있다. 만일 공과한 해당 루가 아닌 주자를 직접 태그 하는 경우에는 태그 시도가 어떤 사유인지를 심판원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읽다 보면 어필아웃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주자의 루 공과는 반드시 수비 측이 공과내용을 심판원에게 알려야 아웃을 인정받을 수 있다. 주자가 루를 공과한 사실 자체만으로는 아웃이 아니다. 심판원이 비록 공과행위를 눈으로 목격했더라도 수비 측의 어필이 없다면 주자는 무사하다.
팁으로 한 가지 더. 루를 공과한 주자가 돌아가서 공과한 루를 다시 밟는 것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자신보다 뒤에 있는 주자가 홈 플레이트(본루)에 도달하면 선행주자는 공과한 루를 다시 밟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2)볼 데드 상태에서는 어느 루를 공과하고 다음 루에 도달하고 나면, 그 주자는 공과한 루를 다시 가서 밟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1)의 경우를 덧입혀, 1루주자 채태인이 홈으로 들어오고, 계속해서 타자주자 신명철이 홈을 밟고 나면 채태인은 돌아가서 공과한 2루를 밟을 수 없다. (어필이 있어야 아웃. 당연 어필이 없으면 아웃이 아님)
2)의 경우를 덧입혀, 신명철의 타구가 원 바운드로 펜스를 넘어가 인정 2루타(볼 데드 상태)가 되었을 때, 신명철이 1루를 공과한 상태에서 2루를 밟았다면 다시 돌아가 1루를 밟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웃을 인정받기 위해 어필은 필수)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채태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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