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제2의 손시헌을 꿈꾸는 김선빈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6.21 09: 46

2005년 연습생 신분의 벽을 뚫고 그 해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최종 확정된 순간, 두산의 손시헌(31)은 식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제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라고.

 
2011년 프로야구 역대 최단신 선수(165cm)라는 닉네임 아닌 닉네임을 달고 최근 공수에 걸쳐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KIA의 김선빈(22)은 2008년 입단 당시 후순위(2차 6순위) 지명에 따른 실망감과 단신이 주는 정신적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교적 단신인 손시헌(172cm)이 유격수로 골든글러브 자리에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돌렸습니다”라고.
 
올 시즌 개막 후, 4월 초순 한 때 타격 6개부문(타율, 타점, 득점, 도루, 출루율, 최다안타)에서 1위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김선빈이 야구팬들의 주목을 한껏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역대 외국인 투수 중 최장신(203cm)을 자랑하는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30)와의 극과 극 대결구도가 적지 않은 영양을 미쳤다.
 
발을 고정시키느라 움푹 파헤쳐 놓은 타석에 서서 평지보다 10인치 높은 마운드 위에서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때려내야 하는 것이 타자의 어려움인데, 38cm의 신장차이에다 팔 길이 차이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김선빈이 니퍼트를 상대로 느껴야 하는 체감 핸디캡 지수는 생각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러나 팬들은 이에 주눅들지 않는 김선빈의 당찬 도전에 시선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 또한 나쁘지 않음에 김선빈은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4월 8일 잠실서의 첫 대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니퍼트와 김선빈이 맞대결을 펼친 것은 모두 3경기. 타석으로 계산해 총 9번을 만났다. 맞대결 결과는 8타수 2안타(2루타 1개 포함). 삼진과 볼넷은 각각 1번씩을 주고 받았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성적 같지만 싸움 상대의 체급조건을 먼저 떠올린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로 봐야 한다.
 
6월 20일 기준으로 김선빈의 현재 성적과 타자순위는 타율 3할4리와 타격순위 11위. 지난 3년간 통산타율이 2할7푼9리였음을 감안하면 일취월장한 성적이다. 여기에 파워도 업그레이드 되었다. 통산 1홈런 타자였는데 올해만 벌써 홈런 3개를 때려냈다.
 
그러나 단순 외형적인 타격성적보다도 김선빈의 기여도가 대단함을 말해주는 기록수치는 따로 있다. 득점권 타율에서 김선빈은 3할5푼3리의 고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순위 10걸 안에 드는 고 순위다.
 
타점부문은 37타점으로 이범호(54타점)에 이어 팀내 2위. 대부분의 경기에서 2번 타순에 배치됐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타점수다. 희생타 부문에서는 12개로 전체 4위. 팀내에서는 단연 1위다.
 
게다가 수비 포지션은 내야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유격수를 맡고 있음에도 실책 수는 불과 7개뿐이다. 여타 팀들의 유격수와 3루수가 실책부문 순위에서 두 자릿수 실책으로 상위자리를 독차지 하고 있음과 비교해보면 김선빈의 수비 견실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어림잡을 수 있다.
 
KIA가 개막일부터 줄곧 1위자리를 지켜온 SK를 최근 2경기 차로 압박하며, 2위 삼성에 반 경기 차로 따라붙을 수 있었던 데는 투수왕국으로 알려진 KIA의 이면에 숨은 원동력 김선빈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반환점도 돌지 않아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각 팀의 유격수들과 비교할 때 김선빈의 성적과 활약도는 단연 독보적이다. 현재로선 부상으로 고전 중인 손시헌(두산)과 삼성의 김상수 정도가 경쟁구도에 들 수 있는 선수들이지만, 지금의 페이스를 잘 유지해 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연말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선빈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2005년 골든글러브를 안고 감격에 겨워하는 손시헌을 바라보며 제2, 제3의 손시헌이 나왔으면 하는 다소 어렵고도 막연한(?) 바람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김선빈이 용기와 힘을 얻었던 손시헌을 넘어 단상에 올라 제2의 손시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미래의 야구후배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날이 돌아올 수 있을지…. 벌써부터 투표결과가 궁금해진다.
 
김선빈을 상대로 던진 니퍼트의 변화구가 큰 궤적을 돌아 그리며 포수의 가슴팍 지점에서 미트에 박히자 포수는 스트라이크를 확신한 듯, 한참 동안 미트를 고정시킨 채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 주심은 묵묵부답. 경기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니퍼트의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답이 우회적으로 나왔다.
 
“최희섭이었다면 스트라이크 줄 수도 있었지만, 김선빈의 스트라이크 존으로는 볼이야. 높아서 못 쳐.”
 
야구규칙에 스트라이크 존이란 위로 타자의 겨드랑이 선에서 아래로는 무릎 아랫부분까지의 홈플레이트 위 공간을 지칭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적용기준에 있어서는 타자가 평소에 취하는 자연스러운 타격자세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부연하고 있다. 니퍼트의 투구가 절묘했지만 김선빈이라는 타자의 스트라이크 존을 기준으로 보면 ‘볼’이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를 들춰보면 ‘볼넷’ 한 개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가 존재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수가 아니라 그 선수가 입었던 유니폼이 쿠퍼스 타운에 전시된 것인데.
 
1951년 세인트 루이스 소속으로 단 1경기만을 뛰었던 에디 게이들(당시 26세)이라는 선수는 136cm의 키를 가진 초미니 선수였다. 게이들은 디트로이트 전에 대타로 나와 볼넷을 얻었는데, 상대투수가 타자의 키가 너무 작은 관계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해 얻어진 결과였다.
 
일반적인 스트라이크 존에 해당하는 포수 미트의 위치가 게이들에게는 어깨와 얼굴 정도의 높이였으니 좁디 좁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 맞춰 넣으려 애썼던 투수의 고충이 상상만으로도 십분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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