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라는 것은 상대팀 투수가 투구하는 동안 빠른 발을 이용, 다음 루를 훔친 주자에게 주어지는 주자관련 기록항목이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다음 루를 훔치려다 아웃 된 주자에게는 ‘도루자(C.S)’라는 것이 기록되고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주자의 도루성공률은 도루성공수를 도루시도수로 나눈 것을 말하며, 상반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포수의 도루 저지율은 도루저지 성공수(도루자)를 도루시도수로 나누어 계산된 수치를 말한다.
야구규칙 안에는 주자의 도루 및 도루자 기록과 관련해 많은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어 규칙적용에 그리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야구를 보다 보면 규칙만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황당한 상황 앞에서 머리를 싸매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야구에서 기록원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경우를 꼽으라면 선수가 본 헤드 플레이를 했을 때인데 도루관련 기록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 4일 롯데의 톱 타자 전준우는 한화와의 대전 원정경기에서 본의 아닌(?) 도루자 기록을 하나 얻어 도루성공률을 깎아 먹고 말았는데, 그 해프닝의 전말은 이렇다.
2회초 롯데가 3-0으로 앞서가던 상황. 추가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고 의기양양 2루에 나가 있던 전준우가 1사후 3번 손아섭의 삼진(2사) 때 이닝이 종료된 것으로 착각, 2루를 벗어나 투수 마운드 쪽으로 걸어 나오다 이를 목격한 포수 신경현의 송구로 결국 런 다운에 걸려 아웃되고 만 일이었다.
중계를 담당했던 방송사 해설위원도 전준우의 기록이 어떻게 처리되었을 지에 대해 궁금해 했을 만큼 보기 드문 주자의 본 헤드 플레이였다.
그려본 대로 분명 전준우는 처음 도루를 시도하지 않았다. 2루에서 떨어나 나온 주자의 의도는 다음 루를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공식기록상 전준우의 기록은 도루자로 처리되었을까?
기록상 주자의 도루자로 기록될 수 있는 상황은 크게 3가지로 축약된다. 첫째는 액면 그대로 주자가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된 경우이고, 둘째는 도루를 시도한 주자가 슬라이딩을 너무 세게 해서 다음 루를 지나쳐 태그아웃 된 경우다. (가려고 했던 루에 주자의 손이나 발이 먼저 닿았더라도 오버 슬라이딩은 도루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셋째는 주자가 견제구에 걸린 뒤, 다음 루로 진루하려다 아웃된 경우다. 전준우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처음에는 도루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견제구에 걸린 뒤 다음 루로 가려는 행위를 했다면 진루하려 했다고 간주된다.
참고로 야구의 견제구라는 것은 투수나 포수가 루상의 주자가 다음 루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야수에게 송구한 공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의 견제사 항목은 투수의 견제구에 주자가 아웃된 상황만을 따로 한정하고 있는데, 포괄적으로 포수 견제구에 의한 주자 아웃도 견제사로 봐야 한다. (주자가 투수나 포수의 견제구에 걸린 다음, 원래 있던 루로 바로 돌아가던 도중 또는 그 자리에 선채 아웃 되었다면 도루자로 기록하지 않고 견제사로 처리된다)
그날 전준우의 플레이는 포수의 견제구로 2루로 돌아가는 것이 여의치 않자 3루로 뛰었고 런 다운 끝에 2루수에게 태그아웃 된 것으로, 3루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 플레이가 도루자 판단의 단초가 되었다. 엄격히 따져 런 다운에 의해 아웃된 전준우의 기록은 주루사지만, 다음 루를 향한 어떠한 움직임도 도루시도로 간주된다는 기록규칙에 의해 도루자가 된 것이었다.
상황을 역으로 유추해 보면 좀더 확실해진다. 이날 전준우가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는 수비측의 느슨한 협살 플레이를 틈타 재치있게 3루로 가서 살았다면 기록은 도루가 된다. 전준우의 주루사에 대해 도루자 기록 대입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준우와 상황은 다르지만 주자의 본 헤드 플레이와 관련해 도루기록 처리 원칙을 정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2005년 8월, 김태균(당시 한화)이 2루로 도루를 감행해 성공한 다음, 포수의 송구가 없자 타자가 파울 볼을 때린 것으로 상황을 오판, 다시 1루로 귀루하려다 태그 아웃(당시 도루를 인정)된 적이 있었는데, 주자가 자신의 권리를 어떠한 이유로든지 포기한 것으로 해석, 향후에는 같은 상황이 일어나도 주자의 도루기록을 인정해 주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바 있다.
이처럼 주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 일종의 본 헤드 주루플레이를 저지른 경우에는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것이 규칙적용 기저에 깔린 보편적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