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보다 보면 야구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플레이를 선수가 저지르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를 야구용어로는 일명 ‘본 헤드 플레이’라고 부르고 있다.
본 헤드 플레이의 기원에 관해 전해지는 역사 속 이야기는 1908년 뉴욕 자이언츠와 시카고 컵스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회말 1-1 동점상황, 2사 주자 1루에서 뉴욕 프레드 머클의 단타로 1루주자는 3루까지 진루. 이어 다음 타자 브리드 웰이 중전안타를 때려 3루주자가 득점하며 경기는 2-1 뉴욕의 승으로 결정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1루주자였던 프레드 머클이 3루주자가 득점하는 것을 보고 2루로 가던 도중 발길을 돌려 덕아웃으로 향한 것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 정황을 포착한 시카고 2루수 조니 애버스는 퇴장 중이던 심판진에게 찾아가 프레드 머클의 2루 미진루 사실을 어필했고, 심판진은 이를 받아들여 프레드 머클의 포스아웃(제3아웃)을 인정했다. 3루주자의 득점은 당연 무효가 되었고, 연장을 치러야 했지만 이미 관중들로 들어찬 그라운드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1-1 무승부로 처리한 후, 나중에 재경기를 갖는 것으로 결말을 지었다. (현대 야구규칙에서는 이닝이 끝난 상태에서의 어필은 수비측의 투수를 포함한 모든 내야수가 페어지역을 떠나기 전까지로 어필 유효시점을 제한하고 있다)

이 경기를 잡았더라면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지만 허무한 이유에 발목이 잡혀 우승을 뒤로 미루게 된 뉴욕은 최종 성적에서 동률을 기록한 시카고와 시즌 종료 후 재경기를 치른 끝에 결국 무릎을 꿇고 우승을 넘겨주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선수의 어이없는 플레이를 본 헤드 플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프레드 머클과 같은 어이없는 플레이를 저지른 선수를 ‘보우너(Boner)’라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 너무나 화제가 된 이야기지만 8월 27일 두산의 우익수 정수빈은 삼성전(잠실) 연장 11회초(1-1 동점상황) 1사 2루에서 어려운 우중간 플라이 타구를 잘 잡아내고도 순간 아웃 카운트를 착각, 상대 2루주자의 진루에 대해 전혀 대처를 하지 않는 바람에 어이없는 결승점을 헌납하고 만 뼈아픈 일을 겪고 말았다.
정수빈과 팬들을 비롯한 두산의 아픔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기록적인 시각으로 이 해프닝에 대해 접근, 좀더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이날 경기를 담당했던 공식기록원은 이 통한(삼성으로선 행운이 되겠지만)의 결승점을 플라이 타구를 날린 삼성 오정복의 타점이 아닌 정수빈의 실책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지에 올렸다.
오정복의 타구는 2루주자 배영섭이 3루까지 진루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타구였지만, 홈까지 내쳐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정수빈이 상대 주자를 의식하지 못하고 타구를 잡고 엉뚱한 플레이를 벌였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한 데에 따른 냉철한 결정이었다.
이날 상황에서 오정복의 타구가 타점으로 인정(희생플라이)받고 못 받고의 차이는 사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갈린다.
2007년 7월 14일 KIA-LG전(잠실) 1회초 무사 만루에서 최희섭(KIA)이 때린 우중간 플라이 타구 때 LG의 외야수 발데스가 타구를 잡고 느슨한 플레이를 하는 사이, 2루주자였던 김종국마저 홈으로 달려들어 득점에 성공(2타점 짜리 희생플라이로 기록됨)한 일을 기억에서 꺼내어 보자.
비슷한 우중간 플라이 타구에 2루주자 득점이라는 공식은 오정복이나 최희섭 모두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익수의 대응 모양새.
발데스는 당시 상황에서 2루주자가 홈까지 들어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플레이에 방심을 입혔고 KIA는 그 틈새를 파고 들었다. 그렇다면 정수빈은?
정수빈과 발데스의 차이를 꼽으라면 그것은 상황인식 차이였다. 발데스는 상황 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었지만 나태한 플레이를 가져간 것이고, 정수빈은 상황 자체를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실책에 관한 기록규칙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있다. 느슨한 수비동작이나 두뇌적 판단착오는 실책으로 기록하지 말라고.
실제 플레이에서 발데스나 정수빈은 모두 두뇌적 판단착오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규칙에서 이야기하는 판단착오는 플레이를 함에 있어 선택의 오판이나 안이한 대처를 말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잡을 수 있는 플라이 타구의 낙구지점을 전혀 엉뚱하게 판단해 안타를 만들어 주는 경우, 잡기 어려운 주자를 잡으려다 실패해 아웃 시킬 수 있었던 주자까지 살려주는 경우(야수선택), 베이스커버를 늦게 들어가 주자를 살려준 경우, 런다운 플레이 중에 송구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주자를 아웃시키는 데 실패한 경우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에 관여한 상황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자체를 잘못 인식해 엉뚱한 플레이를 가져간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8년 우익수 이종범(KIA)이 아웃 카운트를 착각해 공을 관중석으로 던진 일(1사 3루라서 결과적으로 이종범의 실책이 아닌 타자의 희생플라이로 기록됨).
1999년 두산의 이광우 투수가 인필드 플라이 타구를 놓친 후. 다시 주워 이미 규칙상 아웃된 타자 로마이어(한화)를 재차 아웃시키려다 다른 주자를 살려준 일(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해 불필요한 송구로 주자의 추가진루를 허용).
2007년 한화의 유격수 김민재가 이호준(SK)의 직선타구를 직접 잡았다고 생각해 1루에 송구하지 않았다가 땅볼 판정이 내려진 관계로 타자주자를 출루시킨 일(심판원의 판정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지레짐작에 의한 플레이 태만).
2008년 삼성의 유격수 박진만이 2사 2루에서 땅볼을 잡다 놓친 후, 낙심한 나머지 공을 줍지 않고 땅만 쳐다보다 2루주자를 홈까지 들여보낸 일(후속 플레이 태만으로 공격 측이 이득을 봄) 등등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 속의 상황인식 오판에 의한 수비 측 본 헤드 플레이는 찾아보면 상당히 많다.
물론 아웃 카운트를 착각한 폭주나 진루 중에 지름길(?)을 이용하는 등의 공격 측 주자들의 본 헤드 플레이도 상당수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원점으로 돌아가 과거 포구 실수나 악송구 등이 아닌 야수들의 상황인지 착각 등의 본 헤드 플레이에 대해 기록상 실책기록을 부과하는 것에 일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현장이나 기록원 모두 선수의 본 헤드 플레이에 대한 기록적 관대함(?)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는 것이 야구 기록이론의 시대적 추세이자 흐름이라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