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전운 감도는 ‘8인 8색’의 프로야구 8국지
OSEN 기자
발행 2007.04.06 08: 07

짙은 전운
전운이 감돈다. 짙은 먹구름이다. 전선은 한냉기류로 기득차 있다.
‘8인 8색’, 8명의 지휘자가 던지는 변화구가 막후에서 춤추고 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 무대는 8개구단 감독들의 칼날 세운 신경전으로 그 막을 열었다. 단초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LG 트윈스로 말을 갈아탄 김재박 감독이 제공했다.
김재박 감독은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을 한 직후 “돈을 주고 좋은 선수들을 데려갔는데 그 멤버로 우승을 못하면 말이 안된다”며 선동렬 삼성 감독을 노골적으로 건드렸다. 선동렬 감독도 지난 2월 오키나와 전훈지에서 LG 선발투수진을 일일이 거명하며 “우리와 비교하면 너무 부럽다. 서로 투수를 바꾸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바꾸겠다. 그 멤버라면 우승해야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김재박 감독이 다시 “8위팀이 우승이라니 다 우승하겠다. 삼성외에는 라이벌로 생각하는 구단이 없다”고 되받았다.
이같은 장외 설전으로 촉발돼 올해 프로야구판은 일찌감치 대립구도가 생겼다. 그 전선은 전반적으로 2년 연속 챔프에 오른 삼성을 중심으로 놓고‘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각론에서는 ‘김(재박)-선(동렬)’, ‘김(경문)-김(재박)’, ‘김(시진)-김(재박)·강(병철)’, ‘김(성근)·서(정환)-선(동렬)’등으로 갈래가 다양하고 어지럽다.
목표는 물론 하나다.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의 말대로 “(어떤 팀이든) 걸리는대로 다 무찔러서…우승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올해처럼 감독들이 무대의 전면에 나서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적은 없었다. 8개구단 감독들은 4일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는 말을 아끼기는 했지만, 은연중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감독들이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와 논리로 대립각을 형성, 팬에게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입씨름은 환영이다. “잠실구장 한 지붕 두 가족인 라이벌 LG한테는 지지않도록 하겠다”(두산 김경문 감독)거나, “명가 재건과 타도 삼성”기치를 내건 KIA 서정환 감독, “초보감독으로서 은사인 강병철 감독과 작년까지 모셨던 김재박 감독, 이 분들은 꼭 이기고 싶다”(현대 김시진 감독) 등 그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감독들의 색깔은 8색조
8개구단 감독들은 연령대별로는 선동렬(44), 김경문(49), 김시진(49) 등 40대와 서정환(52), 김재박(53) 등 50대, 그리고 김인식(60), 강병철(61), 김성근(65) 등 60대로 나뉜다. 현역시절 포지션별로는 투수출신 감독이 김성근, 김인식, 김시진, 선동렬로 절반이고, 내야수가 3명(강병철, 김재박, 서정환), 포수출신으로는 김경문 감독이 유일하다.
감독들의 성향은 대체로 투수출신이 한 박자 빠른 마운드 운영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 선동렬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선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의 호시노 센이치(현 일본 대표팀 감독)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마운드 운영에서 허리와 마무리에 중점을 두는 ‘지키는 야구’를 아주 선호한다.
김재박 감독의 그늘에서 현대의 2인자로 마운드 구축에 일가견을 보여온 신임 김시진 감독 역시 선 감독과 비슷한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시진 감독은 미디어데이 때 “한 박자 빠른 승부(투수교체를 지칭함)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은 특유의 ‘벌떼작전’으로 나간다. 마운드 물량공세로 상대의 혼을 빼고 가동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하는 것은 김성근 감독의 능기.
이들에 비해 김인식, 김경문 감독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왠만해선 번트를 잘 대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김인식 감독이 보다 대범한 작전을 구사한다면, 김경문 감독은 변칙에 능하다.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김경문 감독은 “틀에 박힌 야구를 하지 않고 때에 따라 변칙야구를 구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롯데 자이언츠 강병철 감독의 바탕은 ‘뚝심’이다. ‘만만디(중국어로 천천히의 뜻)’라는 별명대로 서두르지 않고 믿는 도끼로 계속 내려치는 형이다. 하지만, 올해가 계약만기여서 강병철 감독도 마냥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강 감독은 일부 고참 선수에게 이끌려가지 않고 젊은 선수를 집중 기용할 작정이라고 밝혀 그의 변신이 주목된다. 롯데가 노장진, 정수근 같은 몇 선수들에게 휘둘려 분위기가 흐트러졌던 점을 감안한 강경 발언이다.
명가재건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KIA 타이거즈 서정환 감독은 임기응변에 능하다. 왕년의 명 유격수 출신답게 감이 좋고, 허슬플레이를 강조하고 있다.
김재박 감독은 정작 미디어데이에서는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라이벌이 따로 없다”는 식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홈경기 승리에 전력을 기울일 것임을 언명했다. ‘안정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김재박 야구가 친정팀 LG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번트는 전가의 보도? 조자룡의 헌칼?
희생타는 필요악인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인가. 이같은 논란은 올 시즌에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번트라는 것이 야구에서 사라질 수 없고, 유효적절한 공격 수단으로 인식하는 한 감독의 성향에 따라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8개구단의 희생타(번트) 통계를 보면, 김재박 감독의 현대가 2002~2004, 2006년에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특히 작년에 현대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가장 많은 희생번트(153개)를 댔다. 김재박 감독의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수치이다.
반면 김인식 감독은 한화 지휘봉을 잡은 2005년부터 2년 연속 가장 적은 번트수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 감독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유이다. 김인식 감독은 두산 시절에도 2000~2001, 2003년 시즌에 번트를 가장 적게 기록한 감독으로 남아 있다.
김성근 감독과 강병철 감독은 김인식 감독에 비해 번트를 많이 구사하는 감독이고 선동렬 감독은 평균치 정도이다.
이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이 LG이다. LG는 김성근 감독 시절(2002년)을 제외한 이광은(2000~2001년), 이광환(2003년), 이순철(2004~2005년) 감독 때는 번트를 적게 댄 팀으로 분류됐다. 번트를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인 김재박 감독이 LG 타선의 굳어진 체질을 어떻게 변화시켰는 지가 올 시즌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1989년 주니치의 호시노 감독이 한 시즌 최다인 174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했다. 이승엽이 몸담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라 감독은 2006시즌에 89개로 희생번트를 가장 적게 구사한 감독이다. 그렇지만 하라 감독도 필요에 따라선 이승엽을 비롯한 중심 타자들에게도 번트 지시를 내렸다. 이승엽은 작년에 두 차례 번트지시를 받아 한 번은 파울이 된 적이 있다.
입씨름도 좋지만
감독들의 장외 설전은 관중들의 호기심과 호승심을 자극한다. 김인식 감독이 미디어데이에서 “(SK) 이진영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오늘보니 멀쩡하다”고 잽을 날리자 SK 김성근 감독은 “기자회견에서는 손은 필요 없이 입만 살아 있으면 되니 이진영을 데려왔다”고 받아넘겨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보기좋은 입씨름 한마당이었다.
물론 불필요한 신경전으로 인해 오히려 주눅든 상대 팀을 자극, 역효과를 낳는 수도 없지 않다. 굳이‘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만, 때로는 우리편의 힘을 북돋우는 구실도 하는 것이 말싸움이요, 심리전이다.
신경전의 명수는 단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김응룡 감독이었다. 김응룡 감독(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1988년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전신)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이번 시리즈는 (일본 교포 출신인 김영덕 감독을 빗대) 한·일전”이라고 상대를 자극하며 심리전을 펼쳤다. 1996년 해태-현대의 한국시리즈 때는 “(현대 연고지인) 인천출신 심판을 배정하면 경기를 보이콧하겠다”는 폭탄발언까지 던졌던 전력이 있다.
공교롭게도 김응룡 감독의 이같은 장외 신경전은 잘 먹혀들었고, 그 때마다 해태는 우승했다.
현대의 매각설로 뒤숭숭한 프로야구판이 해외파들의 귀환으로 모처럼 활기를 되찾아 한국야구사를 살찌울 수 있는 올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홍윤표 OSEN 대기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