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시즌 프로야구가 지난 7월15일(일요일)까지 315경기를 치르며 전반기를 마감했습니다. SK가 6월 하순부터 선두를 질주하고 있지만 그 전까지는 기아를 제외한 7개팀이 자고나면 바뀌는 순위 경쟁을 벌여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오랜만의 프로야구 열기로 관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총 287만7229명이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경기당 평균 9134명으로 지난해 이맘 때쯤의 188만9047명에 비해 무려 52%가 늘었습니다.
시즌 초반 롯데가 거포 이대호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성적을 내며 한동안 중상위권을 유지한 게 열기를 부추겨 부산 사직구장 관중은 지난해보다 73%가 증가했습니다.
작년에 최하위를 차지한 LG의 도약도 흥행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고 FA 투수 박명환을 데려오는 등 의욕을 보인 결과 4강에 턱걸이했습니다. 관중은 40경기를 치르며 62만6천683명(경기당 1만5667명)이 입장해, 전체 1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해에 비해 62%가 늘어났습니다.
지난 해 6위에 머물었던 SK는 팬을 위한 ‘스포테인먼트’ 프로젝트를 펼치고 김성근 감독과 헐크 이만수 코치를 영입해 단독 1위까지 치고 올라가 홈 43경기에 47만6천778명(경기당 11,088명)이 입장해 작년에 비해 무려 95%가 늘었습니다.
올초 현대 유니콘스가 구단을 매각키로 해 한때는 팀이 공중분해되고 프로야구가 7개구단 체제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으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유니콘스를 계승할 업주를 찾겠다고 약속하면서 숨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관중을 1990년대 중반과 같은 400만 명 시대로 중흥시키겠다고 목표를 정해 반신반의했는데 현재 추세라면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17일에는 부산에서 올스타전을 벌여 잔칫집 분위기를 확대하고 처음으로 2군 올스타전도 춘천에서 열기로 해 팬들과 야구인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잔칫날 하루 전에 프로야구 심판부 수장인 김호인 심판위원장이 전격 경질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습니다.
KBO는 페넌트레이스 전반기 종료일인 15일 밤 김 전위원장에게 대기 발령을 통보했습니다. 아울러 과거 심판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2군 심판장으로 있는 황석중씨를 심판위원장 대행으로 선임했습니다. 김호인 전위원장은 지난해 1월 13일 전임 김찬익 위원장에 이어 취임한 지 1년 6개월 만에 퇴진하게 됐습니다. 시즌 중에 심판위원장이 보직 해임된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김 전위원장의 전격 경질은 심판 조직 내부의 갈등과 그로 인해 파생된 KBO와의 마찰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김 위원장은 올시즌 2군으로 내려갔던 팀장 출신 허운 씨를 KBO가 당초 결정했던 기간(1년)보다 앞당겨 1군에 복귀시키려 하자 이를 거부하다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판진의 편가르기 갈등은 지난해 초 전임 김찬익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있으나 직접적인 발단은 올해 초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각 조 팀장을 교체하면서 기존 팀장을 맡고 있던 허운 씨를 2군으로 내려 보내며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허 씨는 김호인 위원장에게 처음에는 “20년 심판 생활을 한 내가 갑자기 팀장을 그만두는 이유가 무언지 알려달라”고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KBO 윗선에서 결정한 것이고 구체적인 강등 사유는 밝히지 않자 허운 씨는 “그러면 나는 2군으로 내려가겠다”고 반발해 연봉 15%감봉의 조치를 받았습니다.
이에 허운 씨를 따르는 심판 7명이 KBO측에 불만을 털어놓자 이들도 연봉 동결 조치를 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허운 씨를 따르는 심판들과 김호인 위원장을 지지하는 10명 가량의 심판들이 벽을 쌓았습니다.
지난해 LG와 삼성의 정규시즌 마지막 대결인 9월 28일 경기에서 LG 박용택이 구심을 맡았던 허운 씨에게 판정 불만을 품고 강하게 어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기 후 허운 구심은 최규순 심판에게 “박용택에게 어필할 이유가 있으면 심판실로 찾아와 이야기하라”고 지시했고 최규순 심판이 박용택에게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LG 선수단과 말다툼도 생겼했습니다.
KBO는 이 사건을 비롯해 허운 심판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팀장에서 물러나도록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허운 심판은 지난 5월 경남 남해에서 열린 2군 리그 때는 하루 업무를 포기한 채 무단 상경해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허운 씨를 따르는 심판원과 김호인 위원장을 지지하는 심판들의 갈등은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 함께 지방 출장을 가더라도 식사를 따로 한다거나 공식 업무 외에는 대화조차 없는 썰렁한 관계가 올 시즌 내내 지속됐습니다.
공정한 판정을 위한 자체 모임도 조성되기 힘들었고 허운 씨를 따르는 심판들을 배제하는 풍토로 인해 일부 심판들이 소외되고 경력이 짧은 심판들이 한국시리즈 등 주요 경기에 배정돼 선수단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심판진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8개 구단에서는 심판들의 눈치를 보는 야릇한 분위기도 조성됐습니다. 보다못한 김응룡 삼성 사장이 지난 6월에 신상우 KBO 총재와 만나 식사를 하면서 심판진의 난기류를 사실대로 털어놓고 사태 해결을 요망했습니다.
이에 신상우 총재는 하일성 사무총장과 상의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 앙금을 풀고 화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허운 심판을 1군에 7월 1일자로 복직 시키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과정에서 KBO가 반발이 심한 허운 심판을 달래기 위해 ‘3개월 뒤 1군에 복귀시켜준다’는 각서를 이상일 운영본부장이 써준 게 최근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김호인 위원장은 “허운 씨는 내가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규합해 조직적인 반발을 꾀했던 사람이다. 이 사건으로 KBO는 징계 차원에서 올 1년간 그를 2군에 내려보내기로 조치한 것인데 나에게는 아무런 통보조차 없이 3개월 만에 복귀 시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심판부의 기강이 설 수 있겠는가”라고 강변하며 신상우 총재의 결정에 불복했습니다.
그래서 KBO는 다시 지난 13일까지 총재의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통보했으나 김호인 위원장이 끝내 거부하자 대기 발령 조처를 내린 것입니다.
하일성 사무총장은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야구인들이 서로 뜻을 모아 헤쳐나가도 모자라는데 이런 사태가 빚어져 참으로 난감하다”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후유증은 더욱 번질 가능성도 큽니다. 김호인 위원장을 지지하는 조종규 차장을 비롯한 몇몇 팀장 및 심판들이 쉽게 이번 조치를 승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야구계는 일부 은행 출신과 대학들의 계열이 존재했지만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서는 특정 파벌이 없었던 종목으로 비교적 화합이 잘돼 왔습니다.
우리 속담에 ‘달걀에도 뼈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달걀 속에도 뼈가 있을 수 있듯이 안심하거나 잘나가던 일에서 오히려 실수하기 쉽고 야릇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항상 신중을 기하라는 말입니다. 프로야구가 모처럼 팬들의 사랑을 받는 요즘 느닷없이 심판계에서 이 같은 내분이 발생한 게 안타깝습니다.
현재 36명인 KBO 심판들은 우리나라 야구 그라운드의 규율과 질서를 유지하는 판관입니다. 스포츠맨답지 않은 언행을 하는 선수와 코치, 감독을 제재하는 심판들은 먼저 자신부터 스포츠맨으로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심판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중흥을 외치는 한국야구는 변질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지난 해부터 팬들의 예리한 지적을 많이 받고 있는 심판들입니다. 오는 20일부터 다시 시작하는 후반기에서 심판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팬들로부터 더 한층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