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대표팀 인선, 풍요 속의 빈곤
넘쳐도 고민이고, 탈이다. 풍요 속의 빈곤, 한국야구대표팀 인선이 바로 그렇다.
마땅한 투수와 외야수가 모자라는 반면, 1루수는 차고 넘친다. 당장 그 후보들의 면면만 봐도 이승엽(31.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대호(25. 롯데 자이언츠), 이숭용(36. 현대 유니콘스), 김태균(25. 한화 이글스) 외에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최희섭(28. KIA 타이거즈)도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막상 한 명을 선택하자면 골치께나 앓아야할 판이다.
물론 당장 낙점을 하라면 이승엽이 단연 0순위다. 타격, 수비, 주루 능력까지 현역 가운데 이승엽을 능가할만한 경쟁자는 없다. 하지만 이승엽은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고 있어 설사 뽑는다고 하더라도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어차피 시즌이 끝나봐야 알 수 있다.
만약 이승엽을 뒤로 돌린다면, 누가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될까. 대표팀 선발 권한을 쥐고 있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회의 고민은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역대 최고 1루수는?
우선 작년에 WBC 한국대표팀을 지휘했던 ‘국민감독’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의 말부터 들어보자. 김인식 감독은 7월26일 대전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역대 최고 1루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요청에 “왼손은 이승엽, 오른손 김성한”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김 감독은 특히 김성한에 대해 높은 평점을 매겼다.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전신) 전성기 시절 막강한 공격력과 강한 어깨, 매끈한 수비력, 게다가 강인한 승부근성까지 두루 갖춘 김성한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였다. 김성한과 이승엽, 모두 원래 투수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김인식 감독의 견해에 대해 한국야구사에서 가장 뛰어난 유격수였던 김재박 LG 트윈스 감독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김재박 감독은 “무엇보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아니냐”며 주저하지 않고 이승엽을 첫 손에 꼽았다. 이대호와 이승엽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를 곁들여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도 대상이 된다. 해태에서 V9 신화를 창조해냈던 김응룡 사장은 현역시절 1루수 강타자로 명성 날렸다. 1960년대초~1970년대 중반까지 아무도 그자리를 넘볼 수 없으리만치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다.
김응룡 사장은 1960년 부산상고를 졸업 한 후 당시 실업 최강팀이었던 농협 입단을 원했지만 덩치가 커 몸이 둔하다는 이유로 깅영조(金永祚) 감독에게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한국운수에 연습생으로 입사, 그 뒤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전력이 있다.
김 사장은 대한통운 소속이었던 1963년 제 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9월21~29일. 서울운동장)에 1루수로 출장,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역전 결승홈런을 날려 대회 사상 첫 우승을 안겨주었다.
이 대목에서 김 사장과 한일은행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인식 감독의 평이 묘미가 있다. “당시 국가대표 4번타자로 타격은 최고였지만 수비에서는 ‘아니올시다’였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전제로 “(김)응룡이 형은 요즘으로 말하면 이대호 같은 선수, 즉 이응룡”이라며 주위를 웃겼다.
대표팀 인선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기술위원회의 윤동균 기술위원장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 위원장은 “따지고 보면 김응룡 사장은 워낙 오래 대표 1루수 생활을 했고, 김봉연과 김성한 등도 거론할 수 있겠다. 전성기를 놓고 본다면 장종훈도 떠올릴 수가 있지만 역시 파워와 수비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자면 이승엽이 최고”라고 평가했다.
대표 1루수 인선과 관련해서는 윤 위원장은 이승엽을 우선으로 하되 “이대호와 김태균, 이숭용은 물론 최희섭도 8, 9월에 하는 것을 봐가면서 후보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숭용의 경우 부상으로 잠시 주춤하긴 했으나 규정타석(27일 현재 .349로 18타석 부족)을 채우면 당장 리딩히터자리를 되찾게 된다(현재 타격 1위는 이대호, .347). 비록 1루수 대표후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지만 이숭용도 어엿한 대표후보로 명함을 내밀게 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놓고 보자면 역시 이승엽이 최다인 7차례 수상(1997~2003년, 7년 연속)으로 압도적이다.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여전히 1루수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이 독차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한은 이승엽에게 버금가는 6차례 수상자(1985~1989년 5년연속 및 1991년)로 프로야구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장종훈은 1992년과 1995년 두 차례 수상 경력이 있다.
여럿이 한 자리를 놓고 다툴 수밖에 없지만 한가지 돌파구는 올림픽이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는 선수는 지명타자로 구제를 받을 수가 있다.
1루수는 강타자의 몫
1루수는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전통적으로 강타자의 자리이다. 1루수는 다른 위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비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수비범위가 제일 좁고, 수비 자체도 다른 위치의 송구를 많이 받아먹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덩치가 좋고 파워가 뛰어난 강타자 출신들이 유난히 많은 포지션이다.
위에 거명한 것 외에도 사실 ‘양신’으로 칭송받고 있는 양준혁과 LG 2군에서 시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마해영도 원래 1루수 출신이었다. 양준혁은 이승엽이 떠나간 후 삼성 주전 1루수로 활약, 2004년에는 1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손에 쥔 적도 있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일본에선 868홈런 기록 보유자인 왕정치(67. 스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22년간 뛰는 동안 명1루수로 골든글러브를 9번 수상한 경력이 있다.
이승엽의 동료로 요미우리 73대 4번타자(이승엽은 70대 4번타자)로 등재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4)도 원래 1루수가 제 자리였다. 현재 일본대표 후보로 뽑혀있는 오가사와라는 이변이 없는 한 일본대표로 뛸 것이 확실해 만약 이승엽이 부상에서 완전 회복한다면 한-일 대표1루수로 경쟁을 펼칠 수도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는 옛날로 가면 3번 베이브 루스와 양키스의 최고 타선을 구축했던 루 게릭(1903~1941년 사망. 뉴욕 양키스)을 1루수로 첫 손에 꼽을 수 있겠다. 21세기에 들어서 보면 강타자 앨버트 푸홀스(2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첫 눈에 들어오고 20세기 말에는 ‘빅맥’마크 맥과이어(44. 세인트루이스)가 있었으나 약물 복용으로 오점을 남겼다.
올해는 밀워키 브루어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괴물’ 프린스 필더(23)가 있다. 덩치를 보면 이대호가 프린스 필더와 흡사하다. 앨버트 푸홀스는 오른손, 프린스 필더는 왼손 1루수로 우뚝 선다.
부드럽고 타이밍이 좋은 이승엽은 굳이 비유하자면 근육질에 힘을 앞세웠던 마크 맥과이어와는 달리 켄 그리피 주니어(38. 신시내티 레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홍윤표 OSE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