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아이&메모]김병현, 올 봄같은 자부심을 살려라
OSEN 기자
발행 2007.08.28 09: 27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달랑 한명 남아 있는 김병현(28)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플로리다로 다시 돌아와 힘찬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돼 반갑습니다.
지난 4월 미국, 캐나다를 여행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4월 9일 LA에서 에서 21년간 같이 지낸 후배 장윤호 특파원을 만났습니다. 장윤호 씨는 그날 당시 콜로라도 로키스의 김병현이 LA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를 갖는다고 해 단독으로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김병현의 답변이 흥미로와 지금까지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김병현은 “콜로라도 클럽하우스 안에서도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다. 나는 팀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서 참고 있다가 이상하게 된 경우”라며 불펜 투수로 놔두고 있는 구단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불펜으로 떠밀리면서 깨달은 것은 내 실력이 월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할 부분이다. 솔직히 말해 다른 투수들에 비해 내가 뒤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다. 내가 미국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안됐을 것이다”이라면서 한국 선수 등 외국인은 미국 선수보다 훨씬 잘해야만 인정해 주고 미국 선수들과 비슷한 기량이면 찬밥 신세라는 것입니다.
김병현이 1999년 초 성균관대를 다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을 때 스프링캠프에 취재를 간 적이 있는 필자는 당시 벅 쇼월터 애리조나 감독로부터 “저 친구의 공은 참으로 묘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종잡을 수 없다”면서 “좀처럼 보기힘든 공을 가지고 있어 여기 선수들도 상대하기 힘들겠지만 본인도 말을 잘 하지 않아 어떻게 생활할 지 미지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병현이 합류하고 난 다음 보름 정도 지켜본 미국인 감독으로서 김병현의 특징을 한눈에 꿰뚫어본 것입니다. 김병현은 지난 8년간 5번이나 구단을 옮기며 힘든 미국 생활을 겪었습니다.
1999년 애리조나에 입단하자마자 빅리그에 발을 내딛은 김병현은 2000년 14세이브, 2001년 19세이브에 이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이듬해 36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잠수함 투구폼에서 온몸을 흔들며 던지는 위력적인 라이징업슛과 뱀처럼 휘는 슬라이더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맥을 못췄습니다.
지난 2000년 여름 주간지 는 자체 선정한 미드시즌 올스타에서 김병현을 내셔널리그 최고 구원투수로 뽑아 당시 쟁쟁했던 트레버 호프만, 존 프랑코 등을 제쳤습니다.
그러나 김병현의 36세이브는 지난 8월 17일 애리조나의 마무리 호세 발베르데가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37세이브를 기록하며 깨졌습니다.
2002년 팀의 대기록을 세운 김병현은 이후 마무리 투수보다는 선발 출장을 요구하며 팀과 이견이 생겼고 구단도 구조조정을 위해 그를 보스턴으로 트레이드했습니다.
보스턴에서 김병현은 첫 해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그럭저럭 지냈지만 다음 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장기간 결장하다가 복귀하게 됐는데 팀 동료들로부터 경원 당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보스턴 지역의 는 2004년9월18일 ‘김병현이 곧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예전 김병현은 팀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듯한 인상으로 동료들과 멀어졌으며, 실제로 일부 선수들은 팀 분위기가 깨질 것을 우려해 올 시즌 김병현이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구단에 로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레드삭스의 테오 엡스타인 단장도 “우리는 김병현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거기에 좋은 팀 동료가 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에도 신경을 썼다”며 보도 내용을 뒷받침 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김병현은 다음 해인 2005년 콜로라도 록키스로 옮겼는데 거기에 2년간은 주로 선발로 출장하다가 3년째인 올해 초 팀이 불펜으로 돌리자 반발을 한 것입니다.
올 봄 김병현은 “초반에 눈병이 나고 몸살도 걸려 좋지 않았지만 이제 정상으로 올라왔다. 더 화가 나는 것이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어느 해 보다 컨디션이 괜찮았다”면서 “선발 투수로 컨디션을 조절하다가 다시 옛날에 하던 불펜 투수를 하려니 쉽지가 않다. 던지는 것 자체보다도 불펜에서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다.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14일 호르헤 훌리오와의 맞트레이드로 콜로라도에서 플로리다로 이적한 뒤 그는 코칭스태프의 지원과 동료들의 환영 속에 풀타임 선발 투수 자리를 보장받아 14경기(선발 13경기)에서 5승3패, 평균자책점 4.16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도 안된 지난 8월 4일 김병현은 애리조나로 옮겨야 했습니다. 플로리다는 연봉총액이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연봉 2770만 달러보다 약간 많은 3050만 달러입니다. 전체 선수 연봉 총액이 30개 구단 중 29번째인 플로리다가 팀내 연봉 랭킹 4위(250만 달러)인 김병현을 부담스럽게 느낀 것입니다.
옛 친정팀 애리조나로 간다는 게 좋을 듯 싶었지만 상황은 반대로 벌어졌습니다. 김병현은 애리조나로 가면서 컨디션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말 그대로 이적 후 선발 2경기에서 2⅔이닝 동안 11피안타 9실점(7자책)을 했습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애리조나는 2주일만인 지난 16일 그를 다시 방출했습니다. 애리조나는 24일 웨이버 공시 기간이 마감됨에 따라 김병현을 조건없는 방출(release)로 내보냈는데 데려가려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자 플로리다가 즉시 영입하면서 황당했던 김병현의 마음고생은 끝났습니다.
항상 떨떠름한 표정에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김병현이지만 플로리다에서는 웃음을 머금게 됐습니다. 평소 낙천적인 분위기의 플로리다 클럽하우스 생활에 편안해 했고,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프레디 곤살레스 플로리다 감독은 김병현이 애리조나로 가기 전 자신을 직접 찾아와 “선발이 아닌 불펜도 좋으니 여기 남게만 해달라” 는 바람을 전했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돌아온 김병현에게는 2주간 제대로 피칭을 하지 않았으므로 당분간 컨디션이 안정될 때까지 불펜을 맡기겠다고 했는데 감독의 예상대로 김병현은 복귀 다음 날 중간으로 나와서는 형편없는 투구를 했으나 그 이튿날날 구원투구에서는 무실점 호투를 해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김병현에게 남은 과제는 영어를 스스로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표정 관리를 부드럽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전부터 김병현은 “안타까운 점은 영어를 아예 몰라서 통역이 있을 때는 차라리 편한데 통역이 없는 상태에서 알아듣기는 하고 말을 잘 못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오해를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돼 웬만하면 말을 안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애리조나 경기의 해설을 맡고 있는 전 팀의 선배 마크 그레이스(1루수)는 “김병현은 표정 관리부터 해야 된다. 투수는 감정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상어다. ‘나 피 흘렸네’라고 얼굴에 광고하면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라는 충고도 했습니다.
남은 한달간 정규 시즌에서 선발로 등판한 김병현이 3승 이상을 올리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 참가해 최고의 아시아 투수임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선동렬 대표팀 투수코치는 “지난 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대회에서 해외파 중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가 김병현이었다. 대만전에 꼭 써야 하는데…”라고 최근에 밝힌 바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 장난하는 것 같이 김병현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 메이저리그팀들에도 보란 듯이 김병현이 뛰어난 피칭을 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올 봄에 그가 밝혔던 ‘나는 잘하고 있는데 한국인이라고 제 대접을 하지 않는다. 월등하게 잘하는 수밖에 없다’는 기백이 살아있다면 김병현은 5년 전과 같은 발군의 투수로 다시 인정 받을 것입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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