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LG가 잠실구장에서 맞붙은 지난 9월 7일, 5위 트윈스는 반드시 승리해야 4강에 오를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수단과 팬들의 기대대로 에이스 박명환은 다른 때보다 힘있는 피칭으로 8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했고 스코어도 2-0으로 앞서 누구나 LG가 승리하리라 여겼습니다.
1위 SK는 저력을 살려 9회초에 정근우와 김재현의 연속 안타로 1점을 추격했습니다. 무사 1, 2루에서 박재홍은 LG 마무리 우규민을 상대로 병살타를 치고 말았고 투아웃 3루에 등장한 정경배는 지극히 평범한 2루수 플라이를 날렸습니다. 그러나 교체 투입된 LG 2루수 김우석이 이 타구를 글러브에 넣었다 빠뜨리는 믿기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3루주자가 홈에 들어와 2-2가 됐고, 연장전에 접어들었습니다. 분위기를 탄 SK는 연장 10회초 연속 볼넷으로 만든 1, 2루 찬스에서 정근우가 우규민을 상대로 3유간 역전 적시타를 뽑아내 3-2로 승리했습니다.
동점을 허용한 다음 LG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했고 투수가 얻어 맞아 패했지만 팬들이나 선수단엔 9회에 2-1로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어처구니 없는 포구 실수로 동점을 내준 2루수 김우석이 패인의 장본인으로 낙인 찍힐 것입니다.
야구장을 50년 이상 드나들고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을 찾는 필자도 김우석의 에러는 참으로 보기힘든, 황당하기까지 한 불운의 장면이었습니다.
김우석(32)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입니다. 인천고-홍익대를 거쳐 2002년에 LG에 입단했는데 지난 해까지 5년 동안 151경기에 출장해 129타석만 나와 타율은 1할6푼8리이고 올해는 7일 경기가 두 번째 출장입니다. 8회에 2번타자 이종렬이 주자로 나간 다음 핀치 러너 대신 9회에 2루수 자리를 맡았습니다.
‘포지션이 바뀐 야수에겐 타구가 잘 간다’는 속설대로 갑자기 자신에게 높은 타구가 날아오자 양팔을 흔들며 자신이 잡겠다고 사인을 보내며 잡으려다 당황한 끝에 공을 글러브 가운데에 넣지 못하고 떨어뜨린 것입니다. 모처럼 출장한 야간경기가 문제였습니다.
아마도 본인은 그 자리에서 아주 먼나라로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김우석을 다른 선수들은 등을 두드려주며 힘을 내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선수단측에서는 전합니다. 다음 날 김우석은 2군으로 강등됐습니다.
LG의 이정훈 2군코치는 “김우석을 모든 동료들이 따뜻하게 위로했고 코치들은 ‘한번 실수는 약이 된다’며 격려해줘 우석이가 안정된 것 같다”면서 “본래 우석이는 2루 수비는 잘했는데 2군경기를 맨날 대낮에 치르다보니 모처럼 나간 야간경기에 플라이가 나오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에러를 분석했습니다.
김우석의 에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프로야구 출범 첫 해인 1982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일어난 삼성 포수 이만수와 투수 황규봉의 충돌 사건입니다. 당시 예상은 삼성이 우세했는데 1차전은 연장 15회까지 벌이다 무승부가 났고 2차전은 삼성이 9-0으로 대승을 거두었으며 3차전은 OB가 5-3으로 신승했습니다.
1승1무1패여서 4차전 향방이 중요했는데 서울운동장 경기에서 초반에는 삼성이 우세하게 나가다가 5회에 OB가 4-4 동점을 만든 다음 계속된 2사 2, 3루에서 김우열이 높은 내야 플라이를 날렸습니다. 이만수와 황규봉이 하늘만 쳐다보고 콜사인을 하지 않다가 충돌하는 바람에 두 선수 사이에 타구가 떨어지는 이상한 안타가 발생해 승부는 결국 OB의 7-6 승리로 끝났습니다. 야구인들은 당시 상황에서 투수보다 포수 이만수가 힘차게 자신이 잡겠다고 나서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이 승리로 사기가 오른 OB는 5, 6차전도 휩쓸어 원년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커다란 실수를 범한 이만수지만 그후에 1985년 통합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는데 주역이 됐고 타격 3관왕에, 포수 중 가장 수비 실책이 적은 선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 다음에 생각나는 결정적 에러는 프로 이전의 실업야구 전성기 때의 일입니다. 1979년 9월 18일부터 사흘간 서울운동장에서 토너먼트로 진행된 최종 시리즈에서 롯데는 4관왕 성무와 준결승전에서 만나 2-1로 아슬아슬하게 이겼습니다. 6회초 성무가 김재박의 적시타로 선제점을 뽑았고 롯데는 8회말 유격수 김재박의 악송구로 동점을 만들고 9회말 김성호가 정순명을 상대로 스퀴즈번트를 성공시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2만 명의 관중이 들어찬 20일 결승전에서 롯데는 포철을 상대해 3회말 이해창이 적시타를 날려 2점을 먼저 뽑았습니다만 포철이 이후 장효조의 솔로호머 등 6점을 얻어 2-6으로 승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롯데는 9회말 조용선이 솔로홈런을 날려 추격에 나서고 장정호 김형운이 연속안타를 터뜨린데 이어 포철 1루수 김용희의 결정적 에러에 힘입어 6-6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여세를 몰아 롯데는 연장 11회말 1사 1루에서 이해창이 이광은을 상대해 중월 끝내기 투런 호머를 날려 대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롯데가 3년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습니다.
당시 결정적 에러를 범한 김재박이나 김용희는 그후에도 최고 인기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근래 한국시리즈에서는 지난 2005년 삼성-두산의 3차전이 생각납니다. 삼성이 안타없이 볼넷과 폭투로 선취점을 뽑기는 했지만 1-0의 스코어가 유지되던 8회초까지는 오히려 두산 선수가 계속해 출루해 역전승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8회초 두산의 철벽 유격수라는 손시헌의 실책 하나가 결정적인 에러로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삼성의 8회초 공격 1사 1루에서 3번 박한이가 행운의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 다음 심정수가 3구 삼진으로 물러나고 5번 김한수가 두산의 세번째 투수 이재우의 공을 힘껏 받아쳤지만 평범한 유격수 땅볼이 됐습니다. 두산의 유격수 손시헌이 재빨리 잡아서 2루에 던졌지만 공은 2루수 앞을 지나 1루쪽으로 굴러갔습니다. 8회가 끝나야 할 상황이 졸지에 투아웃 주자 2명으로 불어나고 말았습니다. 다음은 양준혁. 1, 2차전에서 1안타에 그쳐 부진하던 양준혁은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고 공은 우측 담장을 넘어 3점 홈런이 됐습니다.
이후 삼성은 곧이어 터진 진갑용의 투런 홈런 등으로 6-0으로 끝났습니다. 홈런 맞은 투수의 실투보다는 팬들에겐 손시헌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더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손시헌은 이 아픔을 잊고 삼성의 유격수 박진만에게 버금가는 수비실력과 투혼을 계속 보여주다 올해 초 상무에 입대했으며 상무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올해 롯데는 시즌 초반에 3연승을 하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두 번째 주 경기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롯데는 LG와의 홈 3연전에서 2패를 당했는데 내야실책만 아니었으면 6연승이 가능했을겁니다. 강병철 감독은 2루수에 박현승 대신에 중고신인 문규현을 기용했는데 결정적인 에러를 범했고 거기에 1루수 이대호는 홈런은 날리면서 연속 포구 실책과 악송구를 하는 등 내야수 전체가 무너져 이길 수 있는 경기 두 게임을 내주었습니다. 이어 한화와의 경기서는 주전 유격수 박기혁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우익수에 손인호 대신 이인구를 넣었다가 결정적인 에러를 범해 분패, 시즌 초반 완전히 선두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선수들은 결정적인 에러를 범할 수 있습니다. LG는 김우석이 결정적인 에러를 범하기 이전 경기부터 선수들이 지나치게 긴장해서인지 분패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4강 경쟁자 한화와의 8월말 경기서 2연패를 당해 경기차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9월 4일 수원경기서는 이길 수 있는 게임을 7-8로 내주고 비로 인해 이틀간 쉰 다음 가진 7일 SK와 홈경기서는 다 이긴 게임을 2-3으로 역전패했으며 8일 삼성과의 홈경기도 9회에 동점을 내주며 연장전 끝에 무승부를 이루는 희한한 비극을 연출했습니다. 아마도 이들 5경기 중 세 게임만 건졌어도 한화와 동률 내지 반게임차가 됐을 것입니다.
오늘의 석패, 분패, 결정적 에러가 LG 선수들에게는 ‘좋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김영수 구단 사장은 “우리팀은 아직도 2%가 부족하다”고 한숨을 쉬지만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인 LG는 올해 겪은 심한 압박감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삼성, 두산, 한화, SK의 선수들이 똑같은 압박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 경험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압박감이나 긴장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면 일상생활에서도 패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수비 실수로 평생을 우울하게 지낸 선수도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보스턴이 베이브 루스를 팔아버려 생긴 ‘밤비노의 저주’를 86년만에 풀었는데 ‘밤비노의 저주’를 얘기할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빌 버크너가 라디오 스포츠 토크쇼 ‘댄 패트릭 쇼’에 출연해 “나는 용서받고 싶지 않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보스턴에서 1루수로 활약했던 버크너는 1986년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에서 3승2패로 앞선 6차전에서 5-3으로 리드하던 연장 10회 정면으로 가는 느린 땅볼 타구를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 실책을 저질러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입니다. 결국 보스턴은 3승4패로 우승을 놓쳤고 버크너는 이로 인해 18년간 팬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하고 저주의 상징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왔습니다.
월드시리즈 우승 뒤 세인트루이스의 부시스타디움에는 ‘우리는 버크너를 용서한다’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는데, 버크너는 “지금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시킨 뒤 ‘이제 당신이 무죄라는 증거가 밝혀졌다’며 석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들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지난 18년간 삶이 힘들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