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고난을 넘어 영광을 일궈낸 이승엽의 2007년 가을 도쿄
OSEN 기자
발행 2007.10.05 12: 06

영광의 정점에 선 이승엽의 2007년 가을 도쿄
2007년 10월 2일, 도쿄돔 구장. 이승엽(31. 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4회 동점 2점홈런을 날리고 홈으로 들어오면서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지난 1월 어머니를 여읜 뒤 올 시즌 홈런을 치면 어머니한테 바치겠다고한 ‘배리 본즈식’ 감사의 세리머니를 재연한 것이다.
요미우리의 센트럴리그 우승이 걸려 있던 이 경기에서 이승엽은 천금같은 홈런을 날렸다. 그의 작지만 의미 있는 이같은 세리머니는 보는 이로하여금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윽고 3-4로 뒤지고 있던 9회 말 1사 후, 이승엽이 볼넷을 골라 출루한 다음 2사 만루에서 시미즈의 유격수 안타 때 홈을 밟아 동점을 이룬 뒤 야쿠르트 유격수 미야모토의 1루 악송구로 아베가 역전 득점(5-4)을 올리는 순간, 이승엽이 홈에서 양팔을 번쩍 들고 홈으로 전력 슬라이딩해 들어온 아베와 얼굴을 마주하며 활짝 웃고 있는 장면(10월 3일치 1면)은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라운드 여기저기에서 환호작약하는 요미우리 선수들의 모습은 눈에 익었다. 절정에서의 집단 군무, 마치 연못에서 잉어떼들이 일제히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같은 그 장면, 언제 봐도 흥겨운 장면이다.
이승엽으로선 고난으로 점철된 1년이었다. 는 하라 다쓰노리(49) 감독이 4년 전인 2003년 9월 당시 도이 요미우리 구단 사장으로부터 등을 떠밀리다시피 팀을 떠나기 직전 “지금부터 요미우리는 큰일이다. 정말 관둬도 좋은가”라고 물었을 때 “이미 결정 난 일”이라는 말을 듣고 씁쓸하게 발길을 돌렸다고 일화를 전했다.
하라 감독은 그 굴욕적인 시기를 딛고 2년 후 다시 요미우리 사령탑에 앉은 다음 팀 개혁에 착수했고, 우선 작업으로 이승엽을 영입했다. 이승엽이 2002년 삼성 라이온즈와 2005년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맛 본 우승과 이번 요미우리에서의 정상 정복은 그 의미가 같지 않다. 당사자가 느낀 감격이야 큰 차이가 없을 지 모르겠지만, 이승엽이 올해 온갖 고통과 고난을 딛고 막판 우승 고빗길에서 비로소 제 몫을 해내며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감동의 도가 다른 것이다.
이승엽이 굴욕적인 상황과 부상의 고통을 안으로 새기며 감추고 이겨낸 이 상황이야말로 환희의 극치라 하겠다.
의지로 새긴 영광의 기록들
의지의 승리였다.
이승엽은 올 시즌을 앞두고 ‘팀 우승, 45홈런과 3할 타율, 100타점’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의 다짐대로 기록은 성사시키지 못했으나 “하라 감독을 헹가레 치겠다”는 가장 중요한 약속 만큼은 지켜냈다.
이승엽의 올 시즌 최종 성적은 137게임에 출장, 타율 2할7푼4리(541타수 148안타, 10월 5일 현재 리그 21위), 84득점, 2루타 29개, 3루타 2개, 30홈런(리그 8위), 74타점, 119삼진, 39사사구(38볼넷), 출루율 3할2푼2리, 장타율 5할1리. 목표치에 많이 미달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대목에서 4번타자의 진면목을 발휘했고 기어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요미우리 이적 첫 해인 2006시즌(타율 3할2푼3리, 41홈런, 169안타, 108타점)에 비한다면 미흡한 성적표.
그렇지만 이승엽은 일본 무대 개인통산 500안타와 100홈런, 3년 연속 30홈런의 이정표를 세웠다.
2004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 이승엽은 그 해 80안타, 2005년 106안타, 지난 시즌에 요미우리로 이적한 뒤 169안타, 8월 25일 도쿄돔에서 열린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시즌 145번째 안타를 기록하며 4년 만에 500안타를 달성했다.
이승엽은 벼랑 끝 승부에서 3년 연속 30홈런을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첫 해인 2004년 14홈런에 그쳤으나 2년차에 30홈런을 날렸다. 이듬해 요미우리로 이적해 41홈런을 터트렸고 올해 다소 부진했지만 30호 홈런를 기록해 체면을 세웠다. 일본 통산 홈런은 115개.
이승엽은 7월 1일 히로시마 카프전에서 일본 진출 432경기 만에 100홈런 고지에 올라섰다.
굴욕과 아쉬웠던 순간들
이승엽은 부상 악화로 2군행을 자청, 1군 무대에서 7게임 결장했다. 7월 12일 왼손엄지 관절염 통증이 도지자 이승엽은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갔다가 12일만인 7월 24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후반기 개막전에 맞춰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타순은 5번이었다.
이승엽은 반환점을 앞두고 79경기에서 타율 2할5푼4리, 15홈런, 42타점을 남긴 채 일시 개점 휴업에 들어갔다.
유난히 기복이 심한 한 해를 보냈던 이승엽은 줄기차게 ‘제 70대 요미우리 4번타자’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타순이 5, 6, 7번으로 갈마들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인 요미우리 4번의 중압감은 상상하기 어려운 자리였던 모양이다.
이승엽이 밀려났을 때 대신 4번 자리에 들어섰던 오가사와라 히로미치 조차도 요미우리 구단의 독특한 분위기와 중압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팀 우승 후 실토했을 정도였다. 오가사와라는 “중압감이 심했다. 생각한대로 플레이가 안되고 고달픈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오가사와라는 6월 중순께 경기 도중 오른쪽 허벅지 통증이 찾아와 한 때 전열 이탈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승엽과 마찬가지로 부상을 억누르며 경기에 출장했다. 이승엽 역시 시즌 내내 왼손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정신력으로 버텨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엽은 경기중 굴욕을 당한 일이 있다. 그것도 두 차례나.
6월 17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야후돔구장 원정 교류전에서 이승엽은 4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출장했으나 상대 선발 와다 쓰요시(26)에게 3타석 연속 삼진 포함 4타수 무안타의 수모를 당했다. 이승엽은 1, 3, 5회에 득점기회에 잇달아 타석에 섰지만 와다의 교투에 맥을 추지못했다.
특히 1-1로 팽팽하던 5회 초 2사 2루에서 와다가 3번 오가사와라를 고의볼넷으로 내보내는 대신 ‘요미우리 4번’이승엽을 맞대결 상대로 선택한 것은 눈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승엽으로선 그야말로 굴욕감을 느낄 법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볼카운트 1-2에서 와다의 제 4구째 한복판으로 들어온 평범한 직구(구속 133㎞짜리)를 놓치고 그대로 삼진을 당했다. 허를 찔린 것이다.
와다는 1-1로 균형이 깨지지않고 있던 7회에도 이승엽을 다시 ‘선택’했다. 2사 2루에서 5회와 마찬가지로 오가사와라를 걸리는 대신 이승엽과 맞섰다. 이승엽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서 설욕을 노렸지만 무위에 그쳤다. 볼카운트 2-1에서 제 4구째 몸쪽 가운데 공을 힘껏 때렸으나 타구는 소프트뱅크 2루수 혼다의 글러브에 잡히고 말았다.
이승엽은 9월 23일에도 같은 경우를 당했다. 도쿄돔 구장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홈 경기에 4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 했던 이승엽은 0-2로 뒤지고 있던 8회 1사 만루의 절호의 기회에서 우중간을 가로질러 펜스 하단을 때리는 역전 3타점 싹쓸이 3루타를 날렸다.
요코하마는 8회 1사 2, 3루에서 3번 오가사와라를 걸리는 대신 4번 이승엽을 선택했으나 이승엽은 호투하던 요코하마의 에이스 미우라 다이스케(34)를 화끈하게 두들겨 모처럼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상대의 도전에 응징의 한 방을 알린 이승엽 덕분에 요미우리는 우승 발판을 마련했다.
이승엽은 수비를 하다가 상대 타자주자에게 발 뒤꿈치를 밟히는 비신사적인 일도 경험했다. 9월9일 밤 도쿄돔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한신의 용병 앤디 시츠에게 수비도중 1루 베이스에서 스파이크로 발뒤꿈치를 밟혔던 것이다. 이승엽은 경기 후 시츠의 명백한 의도를 가진 폭거에 대해 점잖게 “어린이들 때문에 참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경기 내내 시츠가 타석에 들어서면 째려보는 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승엽이 9월 7, 8일 한신전에서 홈런 4발을 쏘아올리는 등 호타를 보이며 9일 4번 타순에 복귀한 것 때문에 요미우리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한신으로선 ‘눈에 가시같은 껄끄러운 존재’로 여겨 보복적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요미우리로 이적한 2006년 이후 이승엽은 그라운드에서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다. 일찌기 한국에서는 별로 보지 못한 일들이었다. ‘누 공과로 인해 홈런을 도둑맞은 사건’이나 ‘은닉구에 당한 것’ 따위가 그것이다.
2006년 4월 2일, 이승엽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은닉구’에 당한 적이 있다. 요코하마 1루수 사에키가 평소 이승엽이 1루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는 버릇을 관찰해 뒀다가 공을 숨긴 뒤 태그아웃시킨 것이다.
이승엽은 또 2006년 6월11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에서 투런홈런을 터트렸으나 ‘홈런이 순식간에 우월 안타로 둔갑’하는 기막힌 일을 당했다. 앞선 주자 오제키가 3루를 밟지 않고 지나쳐 이른바 ‘누 공과’로 인해 홈런이 무효가 되고 단순한 안타로 처리된 것이다. 하필이면 투아웃 후에 홈런이 터지는 바람에 이승엽은 앞선 주자의 한심한 주루플레이로 홈런 기록은 물론 2타점을 날려버린 셈이 됐다.
하지만 당시 후지 TV가 찍은 동영상에는 오제키가 3루를 밟은 것으로 드러나 요미우리가 동영상을 증거물로 항의서를 제출한 바 있다. 는 그러나 센트럴리그 사무국이 ‘일반적으로 영상기술이 발달하면서 심판의 판정과 다른 상황이 생기는 일은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인간의 눈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혀 사실상 오심을 시인했다고 전한 바 있다.
아직 해내지 못한 것,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득점권 타율 2할9푼2리. 이승엽이 올해 감추고 싶은 가장 부끄러운 기록일 것이다. 팀의 중심타자로서 득점권 타율이 3할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승엽이 득점 기회에서 제 구실을 못했다는 반증이다. 앞으로 득점권 타율을 높여야 명실상부한 4번타자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이승엽은 올 시즌 도중 2할4푼대까지 떨어질 정도로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후반기에서 상승세를 타면서 결국 2할7푼4리까지 끌어올렸다. 목표치였던 3할대에 못미쳤고 지난해 3할2푼3리의 타율에는 거리가 있다.
이승엽은 부상에 시달리다보니 타격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타격폼이 오락가락했다. 이승엽은 ‘외다리 타법’으로 홈런을 양산해 왔다. 그러나 이승엽은 타이밍을 잡기 위해 5월 하순부터 외다리타법을 포기했다가 교류전 막판부터 다시 외다리타법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외다리 타법으로 시즌 15호이자 일본 통산 100호 홈런을 날렸다.
타격폼에 관한한 이승엽은 올해 모색과 혼돈의 한 해를 보냈다고 하겠다. 최고의 순간의 타격폼을 되살려 내는 것, 이승엽이 안고 있는 또 다른 과제이다.
이승엽은 아직까지 일본 무대에서 만루홈런이 없다. 한국에서 9년 동안 324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이승엽은 만루홈런도 8개나 만들어냈다. 홈런의 백미인 만루홈런을 이승엽이 내년 시즌에 기록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제 그야말로 일본 프로야구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요미우리의 이승엽은 클라이맥스를 넘어 일본 최정상에 올라야 한다. 시즌 막판에 보여준 투혼이라면, 이승엽이 2005년에 지바 롯데에서 그랬던 것처럼 포스트 시즌 최고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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