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아이&메모] 관중 수준에 반비례, 티켓 관리는 엉망
OSEN 기자
발행 2007.10.16 10: 07

우리 프로야구 관중 수준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보다 높아진 것 같습니다.
프로 초창기 인천구장에서는 입장하는 관중들이 대혼잡을 일으켜 30대 여성이 입구에서 넘어지며 관중들의 발길에 밟혀 경추 손상을 입고 평생 사지마비를 당하는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롯데와 삼성이 대결한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에선 0-2로 뒤진 롯데가 6회에 호세의 솔로홈런으로 추격의 불씨를 당기는 순간 대구구장 관중들의 오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고 사타구니를 맞아 흥분한 호세는 방망이를 휘두르는 난동사건이 벌어져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보다 더 심한 난동 사건은 1986년 해태 구단버스 방화 사건입니다. 한국시리즈 광주 1차전에서 호투하던 삼성 진동한이 관중석에서 던진 병에 머리를 맞고 강판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후 삼성이 역전패를 당했고, 2차전도 지고 대구로 왔죠. 3차전도 해태가 6-5로 역전승을 거두자 대구팬들은 시민운동장 옆에 주차해 있던 해태 구단 버스에 불을 질러 전소되는 전대미문의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1990년 해태-LG의 잠실경기에서는 트윈스가 대량 득점에 성공해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자, 3루측 해태팬 수백명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베이스를 뽑아버리고 술판을 벌이기도 했고, 이에 1루측 LG팬들이 그라운드에 내려와 해태팬과 패싸움을 벌였습니다. 주먹다짐에 의자를 뽑아서 던지고, 각목이 등장하고 1시간 동안 난장판이 됐습니다. 수백명이 연행됐죠.
2003년에는 이승엽에 대한 고의사구로 사직구장이 소란했습니다. 김용희 롯데 감독이 마운드에서 마이크를 잡고 눈물로 관중들의 자제를 호소했던 적도 있습니다.
2005년 5월 19일 롯데-삼성전이 열린 사직구장에서는 롯데 패배에 불만을 품은 일부 관중이 삼성 선수단 버스를 둘러싸고 가로막는가 하면 이날 결승타를 올린 심정수의 옷을 낚아채고 모자를 빼앗는 등 선수에게 직접 위협을 가했습니다.
지난 해 5월 11일 두산과 롯데의 사직경기 때는 9회초 두산의 마지막 공격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만취한 관중 2명이 응원단상에 올라서 소란을 벌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20대 초반에 건장한 체구를 가진 두 남성은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를 단상에서 밀어내더니 구단 보안요원과 방송사 카메라맨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습니다. 심지어 다른 관중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렀고 소동을 말리려 올라간 한 30대 관중은 이들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사직구장에서는 롯데가 패한 후 상대팀 구단 버스를 가로막고 흔들어대는 일이 일어나 타구단에서 “팬들의 위협적인 행위를 막아달라”고 제안도 했지만 과거와 같은 과격한 소란이나 난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황석중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 대행은 “올해는 관중들의 소란이 없어 다행이다. 이제는 예전과는 다른 야구장 문화가 생긴 것 같다”면서 “전에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이기고 지는 승부에 연연하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경기 자체를 즐기려는 분위기가 야구장에서 조성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며 흐뭇해 했습니다.
최근엔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삼아 찾을 정도로 야구장 풍경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관중 드세기로 유명한 부산 사직구장과 마산구장, 대전구장, 청주구장, 광주구장의 분위기가 상대팀 응원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수준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30~40대 아저씨들이 관중들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요즘엔 10대 후반~20대의 연인 커플과 젊은 부부로 바뀌었고 특히 여성 관중이 부쩍 늘었습니다.
2002년 인천 문학구장과 2005년 사직구장에 ‘스카이박스’(가족 및 단체석)가 생겼고, 잠실구장엔 지난 해 1루와 3루측 관중석에 테이블이 놓인 가족석이 만들어져 전체 관중석의 이미지가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경기장의 관중 매너는 우리보다 나아 패싸움을 벌이거나 이물질을 집어 던지는 행위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자기가 응원하는 홈팀이 형편없이 대량 실점을 당하거나 심판의 판정에 문제가 있으면 간혹 물병을 던지는 일이 있는데 대부분은 즉각 장내 청원경찰에게 끌려 갑니다. 전에 한번은 상대방 야수에게 새총을 쏘는 일이 발생한 적 있는데 크게 논란을 일으켰죠. 그러나 우리보다는 관중들의 소란이나 난동이 적습니다.
그런데 콜로라도 로키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이 벌어진 10월 12일(한국시간) 디백스의 홈구장 체이스필드에서 보기드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애리조나는 1-5로 뒤진 7회말 무사 1, 2루의 다득점 찬스를 잡았습니다. 오지 오헤다의 유격수 땅볼 때 1루 주자 저스틴 업턴이 2루로 돌진하며 병살을 막으려고 슬라이딩을 하면서 콜로라도의 2루수 마쓰이의 오른쪽 다리를 치고 들어가고 자신의 손으로 마쓰이의 하체를 방해해 수비 방해를 선언 받았습니다. 2루심은 업턴을 아웃 시키고 타자주자도 아웃을 선언했으며 3루로 달려간 2루주자도 원위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야구 규칙 7.09 e항(우리는 g항)을 적용한 2루심의 판정은 정당했는데 4만 8142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운동장이 떠나가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좌익수 뒤쪽에서 물통과 맥주병, 쓰레기들이 운동장으로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투척 행위가 계속되자 팀 맥클랜드 구심은 로키스 선수들에게 덕아웃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결국 경기가 8분여 중단됐고 구심이 애리조나 밥 멜빈 감독과 콜로라도 클린트 허들 감독에게 각각 경고와 양해를 구한 후에야 경기가 속개됐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구심이 콜로라도 선수단을 덕아웃으로 불러 들이도록 허들 감독에게 종용한 사실입니다.
아마 우리 같았으면 감독이 먼저 선수단을 철수 시키려 했을 것이고 구심은 빨리 경기를 속개하려고 선수단 철수를 막았을텐데 거꾸로 사태가 진행됐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하여튼 미국 전역국에 방영된 이 경기에서 디백스 팬들은 당분간 씻기 어려운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올해 우리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대전구장과 잠실구장은 연일 만원 사례로 팬들의 야구 사랑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관중 소란 행위는 발생하지 않은 대신 입장 관중 관리를 맡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미숙한 처리 때문에 상당수 관중들이 곤욕을 치러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KBO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누리꾼의 글 몇 개를 소개합니다.
‘정말 오늘 경기보다가 1회에 열불나고 성질 나서 나와 버렸다...정말 표 30500장 판거 맞냐??
내가 보기엔 5만장은 판거로 보이더라...완전 피난촌이 따로 없었어...사람들 계단은 기본으로 앉아있고...통로 다 점거 되있고...지나 다닐수도 없고 화장실도 못가겠더라...그러다가 환자가 생기거나 화장실 급한사람은 신문지 깔고 거기서 그냥 싸버릴까?? 아무리 돈도 좋지만 30500석 정원이면 30500석만 팔아야지 돈된다고 막 팔래?? 그러다 야구장 무너지면 개망신 한번 당하고 땡이고..??’
‘어제 9시 50분부터 제2 매표소에서 표 살려 했던 사람입니다. 11시가 되도 표 안팔고...사람들 항의하자 11시 20분쯤부터 팔기 시작했는데, 앞에 4명 셀수없는 양의 표 사시더라구요...
4명 사고 나니 매진이라고 하더라구요...표살려는 사람들 소리치고, 그 와중에 암표 팔고 때가 어느땐데 아직도 암표가 기승을 부리고, 경찰관 3명 왔는데 잠시 왔다갔다 하더니 가더라구요, 암표상 잡아 갔는지, 왔다 그냥갔는지는 안 보이더라구요, 오늘도 경기 관전하러 가고 싶은데, 그넘의 암표상 기승 부릴것 생각하면, 가고 싶은 맘 뚝 떨어집니다...KBO및 표관리하는 분들 1시간 30분 동안 기다리다가 표 못살것 같은 생각들 때의 억울함, 느껴봐야 해요, 그래도 항의 계속 있으니까, 나중에 판매 하더라구요,’
‘플레이오프 처럼 중요한 경기에 이렇게 개념없이 티켓팅해도 되는 겁니까? 예매하고 간 사람들이 현장구매 하는 사람들 보다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고작 한두 개 창구만 열어놓고 말이죠...그리고 프린트해서 간 사람들은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공지를 해놓던가 티켓팅하는데 공지사항 붙여만 놓았서도 알아서 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 하도 많이 기다리니까 양복입은 분들이 조그만 목소리로 “프린트 해오신 분들은 그냥 들어가셔도 되요”라고 외친던데...장난 하십니까? 확성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들한테 속삭이다니요. 그리고 예매해서 프린트해온 사람하고 표로 교환해서 들어가는 사람하고 들어가는 입구가 다르면 그것도 공지사항으로 입구마다 붙여놓던 가요...이것도 도우미들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뛰어다니며 얘기하면 그게 잘 됩니까? 사람들만 혼선이 생기죠...’
/마지막으로 암표상들 어떻게 관리 안됩니까? 제가 아주 피해를 본 사람인데요 일행이 같이 안왔기 때문에 프린트해온 걸로는 못들어가서 발권을 하려고 하는데 1시간 반을 기다렸습니다. 말이 됩니까? 예매해서 온 사람이 한 시간 반을 기다리다니요...이유는 암표상이었죠...프린트를 수십장을 해와서 혼자서 티켓으로 교환하고 있더군요...뒤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결국 사람들이 고함치고 하니까 양복입은 분들이 끌어내시더군요...티켓팅도 그렇고 예매도 그렇고 1인이 할 수 있는 예매분량을 정해놓으면 적어도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 거 아닙니까?’
‘좋은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다가 불쾌한 기분만 갖고 돌아갔습니다. KBO하고 G마켓은 최소한 사과문 정도는 공지사항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성하시고 남은 경기에서는 잘 하시길 바랍니다. 인터넷예매 쿠폰을 입장권으로 바꾸기 위해..그 많은 인파 속에서..10시부터 12시 10분까지 줄서 있었습니다. 차례 지켜서 완전 바보 되었습니다. *안내판, 안내요원 전혀없었음.’
‘12시 넘어서 구장 들어가니 당연히 자리없었고..그래서 그냥 구장을 나왔습니다. 구장에 전화해서 하소연하려 했는데..전화연결은 아에 않되고..지금도 어제 일을 생각하면 일이 손에 안잡혀요. 분하고 억울해서.’
‘구장 가는 것이 정말 무섭습니다. 야구팬을 얼마나 희롱할지 왜 모두 침묵입니까? KBO, 구단, G마켓. 어느 한 곳 여태까지 해명이나 사과가 전혀 없군요. 각 스포츠신문들은 또 어찌 한 마디 언급도 없습니까? 경기장 현장 스케치만 한 번 성의있게 하더라도 어제의 그 상황을 알 수 있었을텐데. 그러고도 기자 직함 달고 다닙니까? 첫째, 매진됐다는 지정석 좌석이 왜 뻥 뚫려 있었는지. 둘째, 지정석 입장객 중 좌석이 겹치는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셋째, 예매권을 육안으로만 확인하고 입장시키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몰랐는지. 넷째, 정원을 훨씬 초과한 관중(적어도 좌석 수를 다 채우고도 2-3천명은 더 들어 온 것으로 파악됨.) 수의 근본적 원인이 어느 쪽에 있었는지.’
‘예매를 미리 하고도 한참을 기다리다가 입장하고, 또한 입장하고도 계단에 쪼그리거나 스탠드 상단에 서서 볼 수밖에 없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마냥 모른 척하고 지나치려고 합니까?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사람들로 꽉 찬 계단을 위태위태하게 건너가야 했던 그 풍경들을 못봤다고 우길 작정입니까? 그냥 입다물고 있으면 끝날거라고 생각합니까? 한시라도 빨리 해명과 사과를 내보내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이 사태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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