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야구장 사람들] 어영부영 넘어갈 난투극이 아닌데…
OSEN 기자
발행 2007.10.28 09: 28

빈볼이나 상대팀 약올리기 등으로 야기되는 프로야구 난투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회장님’ 송진우가 2단옆차기를 하고 얌전한 김동수는 후배 뺨을 몇 번씩 때리고 흥분한 호세는 투수를 주먹으로 때리고 야구 방망이를 관중석에 집어던지고, 브리또는 상대팀 덕아웃 뒤로 찾아가 방망이 시위를 하는 등 평소 다혈질 선수뿐 아니라 점잖은 선수들도 흥분하면 볼썽 사나운 모습을 관중과 팬들에게 보여 줍니다.
선수들간의 집단 패싸움은 우리보다 메이저리그에서 자주 일어나는 편이고 빈볼로 인한 시비와 몸싸움은 야구장의 일반화된 해프닝 정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의 3차전 때 난투극이 일어났습니다. 23일 2차전에서 김동주-채병룡이 빈볼 시비로 한 차례 격돌한 데 이어 3차전에서 김재현-이혜천이 빈볼을 둘러 싸고 거칠게 맞붙어 양팀 선수단이 그라운드에서 집단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난투극을 본 몇몇 기자들은 이성을 잃은 행위라고 질타하는 글을 썼습니다. 어느 기자는 "…두산 김동주와 다니엘 리오스, SK 김원형 등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참급 선수들이 지나치게 흥분, 빗속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아끼지 않은 팬들을 실망시켰다. 과도한 승부욕에 사로잡혀 철저하게 무시되는 동업자 정신. '가을 잔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들린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어떤 기자는 "이게 무슨 추태인가. 전국에 공중파로 생중계되는 한국시리즈에서. 2007 한국시리즈에서 빈볼 시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가을 축제의 장'이 과열되면서 '아수라장'이 돼가고 있다. 연일 빈볼 시비를 벌이는 추태가 연출된다면 모처럼 다시 불붙은 야구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더욱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한국시리즈를 지켜보는 팬들 특히 어린이 팬들에게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전체 프로야구 선수들의 자제와 양보를 당부했습니다.
사건 다음 날인 26일 4차전이 벌어지기 직전 잠실구장에선 주장을 맡고 있는 SK 투수 김원형과 두산 포수 홍성흔이 전날 사건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악수를 나누고 가벼운 포옹을 교환하며 깨끗한 매너로 선전을 펼치기로 다짐했습니다. 양팀 선수들이 덕아웃 앞에 도열한 가운데 주장이 전날 몸싸움에 대해 팬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사태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입니다.
윤동균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도 이날 김성근 SK 감독, 김경문 두산 감독을 찾아 과열된 승부욕을 가라 앉히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쳐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 하일성 KBO 사무총장 중재로 이날 오후 5시 잠실구장 인터뷰 룸에서 명영철 SK 단장과 김승영 두산 단장이 배석한 가운데 페어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맹세했습니다. 하 총장은 "야구팬에게 대단히 죄송하다. 축제 한마당인데 그라운드에서 팬들이 원치 않는 모습이 연출됐다. KBO 사무총장으로서 야구인을 대신해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그런데 KBO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어느 기자는 다음과 같이 KBO의 개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벌어진 빈볼 시비와 벤치클리어링 사태에 대해 KBO와 프로야구선수협회가 '오버액션'을 취했다.야구를 하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SK 명영철 단장과 두산 김승영 단장을 잠실구장 인터뷰룸으로 불러 화해를 유도한 뒤 '3차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선수는 물론 구단도 징계하겠다'고 경고했다.KBO가 끼어들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날 오전 선수협은 '야구장의 불미스런 사태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두산과 SK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놓칠 수 없는 목표를 놓고 치열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선수와 감독은 물론 단장도 우승을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면서 팀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이런 마당에 KBO가 구단의 실무책임자인 단장을 불러 경고를 하고, 감독들을 찾아가 집중력을 흐트려놓아야 옳단 말인가.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면 KBO는 징계를 하면 된다.과장된 '팬서비스'가 과연 현장의 실질적인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한 선수의 말대로 '야구는 1회부터 9회까지 전쟁이고, 충돌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다.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화해는 무슨 화해인가.각 팀의 수장들이 스스로 알아서 화해를 했다면 모를까 KBO가 끼어들어 중재할 일은 적어도 아니다. 한국시리즈 무대가 양팀의 우정과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야유회'가 아니지 않은가.
야구는 자율적인 게임이다. KBO가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억지로 개입해서는 안된다.집단 대치 상황은 일부 선수의 지나친 행동이 있었지만 '야구의 일부'다. 양팀 감독이나 선수들은 기를 표출하기 위해 으르렁거리다가도 다음 상황에서는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빈볼을 던지고, 기싸움을 위해 덕아웃을 뛰쳐나온 선수들은 KBO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마치 범죄자처럼 돼 버렸다. 그라운드 위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흙과 땀이 뒤범벅된 유니폼을 입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있는 선수들이 과연 '죄인들'이란 말인가".
필자의 생각도 KBO가 나서서 처리할 사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난투극에 대한 팬들의 보는 눈이 어느때보다 싸늘하자 앞장 서 중재에 나선 KBO의 충정도 이해가 갑니다. 차라리 신상우 KBO 총재가 나서서 사과의 말을 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양 구단의 사장과 단장, 감독,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사과했어야 할 낯뜨거운 장면이 많았고 그동안 난투극 중 가장 저질스런 모습이 많았습니다. KBO는 그날 사건의 가해자, 가담자를 가려내 징계를 주고 구단에 페널티를 주었어야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KBO는 이번 사태서 빈볼을 던져 퇴장당한 두산 투수 이혜천 한 명에게만 벌금 200만 원과 함께 20시간의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명령을 내렸을 뿐입니다.
지난 2000년 5월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LA 다저스 선수들이 포수 채드 크루터의 모자를 빼앗아 달아나는 컵스 팬을 관중석에 쫓아가는 사건 때문에 박찬호를 포함, 다저스 코치와 선수 등 모두 19명이 메이저리그 사상 최대 규모(합쳐 84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는 텍사스-LA 에인절스전에서 빈볼 시비를 벌인 양 팀 감독과 선수들 등 총 10명에 대해 징계를 결정한 일이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면 감독을 포함해 무더기로 징계를 주는 게 우리와 다릅니다.
그러나 KBO의 개입을 질책한 기사 중 ‘범죄자…선수들이 죄인이란 말인가’라는 부문은 글 자체가 흥분한 것 같고 이번 사태에서 선수들 모습을 보는 팬들의 시각을 대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느 네티즌의 글을 소개합니다.
‘물론 아무리 억울하고 분하다 해도…말그대로 가을잔치 홈구장에 수 만 관중 모아두고 더군다나 공중파 저녁방송 축제의 자리에서 아무리 분하다 한들 어찌 쌍욕을 카메라 앞에서 계속 내뱉고 배트를 집어 던지고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더 많은 빈볼의 피해를 입은 두산으로써 억울하고 분할 수 있지만. 아무튼 에스케이와 두산 양 팀 모두 참 실망스럽습니다. 티비를 보며 낮뜨거워 할 말이 없더군요. 18을 연발하며, 어찌 공중파와 팬들앞에서….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번 일들은 두 팀 선수들 모두 반성해야 할듯. 그동안 이런 시리즈가 있었던가요? 올해 1, 2위팀 참 실망입니다’.
프로축구도 얼마 전 2007 삼성 하우젠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울산과 대전 경기 도중 관중들이 물병을 던지자 관중석을 향해 물병을 던지며 비신사적인 행위를 했던 울산 골키퍼 김영광에게 6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600만 원의 징계가 내리고 대전 구단에 대해서는 충돌의 원인을 제공한 대전 서포터들에 대한 책임을 간접적으로 물어 엄중 경고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 FA(축구협회)컵 4강전에서 퇴장 판정에 불복, 상의를 벗고 항의하는 추태를 벌였던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방승환에게 1년간 출전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방승환을 말리는 과정에서 주심과 물리적인 접촉을 한 인천 주장 임중용과 경기를 지연시킨 코치 2명에 대해서는 ‘엄중 경고’를 했고, 인천 구단에는 벌금 500만 원을 부과했으며 당일 경기 주심이었던 배재용 심판에 대해서도 심판위원회를 통해 ‘1년 활동정지’의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우리 프로야구는 어딘가 너무나 안이하게 팬들을 대하고 있는 듯합니다.
OSEN 편집인 chunip@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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