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7월31일 경기를 끝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잠시 일정을 접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팀별로 30게임 안팎을 남겨놓은 현재 올시즌 프로야구는 4강 다툼이 그 어느해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4강권 언저리에 있는 팀의 감독은 그들대로, 하위권에 처져 있는 감독 또한 나름대로 고뇌가 깊은 시점이다. 그렇다고 선두에서 독주하고 있는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라고 왜 번뇌가 없을까.
김응룡(68)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최근 사석에서 만나 “올해는 유난히 연패하는 팀이 많다. 7월 초 선두 SK가 연패에 빠졌던 것처럼 8개 구단이 전체적으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올 시즌 프로야구 흐름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 프로야구사에 통산 10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신화를 남긴 김응룡 사장은 그에 덧붙여 “요즘 젊은 감독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일침도 가했다. 노장 김성근(66) SK 와이번스 감독에게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된데 대한 일종의 견제구 성격을 띤 발언이었지만, 30여년 동안 현장에서 승부사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야구인으로서의 소회이기도 했다.

김응룡 사장은 “나는 5회 2사 후에도 선발투수를 교체했다. 김성근 감독은 5회 1사 후에 바꾸는게 나와 다른 점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요즘 젊은 감독들은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승부사로서의 판단력, 결단력, 과감성에서는 젊은 지도자들이 뒤진다는 듯한 뉴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김응룡 사장은 이런 말도 했다.
“내가 감독으로 복귀해야겠다. 내가 현역 때는 김성근 감독이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지 않느냐”고.
물론 농담삼아 한 얘기지만, 팀 성적과 결부시켜 답답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토미 라소다(81) 전 LA 다저스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으로서 중요한 일은 물론 이기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선수의 기량과 컨디션, 정신 상태까지도. 어느 날 아내나 여자친구와 싸운 후 의기소침해 있는 선수도 나는 알 수 있다.”
이기기 위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승부사의 숙명이다.
투수교체는 프로야구 감독의 능력, 승부와 직결되는 일이다. 자칫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치면 금세 후회할 일이 벌어지는 게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도자로서의 판단이 중요한 대목이다. 잘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결과가 나쁠 때면 꼭 군말이 뒤따르는 게 바로 투수 교체이다.
오죽했으면 로이스터 감독조차도 지난 7월 29일 잠실 두산전에서 전에 없던 마운드 운용을 보여줬을까.
선발 송승준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5회 이전에 가차없이 강판시키고 김일엽을 투입해 급한 불을 껐고, 그 후에도 로이스터 감독은 과감하게 투수를 바꿨다. 특히 9회말 김사율이 2사 후 안타를 얻어맞자 좌타자 김현수 타석에서 곧바로 좌완 강영식을 내보내는 발빠른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강영식의 구위가 좋다고 판단한 로이스터의 판단은 적중했고, 강영식은 31일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도 3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롯데 4연승의 주역이 됐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지도자로 공인받은 김응룡 사장은 감독 시절 투수교쳬에 관한한‘냉혹한 지도자’로 정평이 났다. 그런 그도 투수교체에 따른 어려움을 겪곤했다. 실례를 한 번 들어보자.
김응룡 감독에 대한 항명 사건 2제(題)
(1)한국 최초의 ‘노히트 노런’ 주인공 방수원의 항명사건
방수원이라면 우리나라 프로야구사상 최초로 노히트노런(1984년 5월 5일)의 대기록을 남긴 투수다.
그 방수원이 1987년 초반 어느 게임에서 잘 던지다가 위기를 맞이했다. 김응룡 감독이 ‘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향했다. 쓰다달다 아무 말도 없이 김 감독이 손을 쑥 내밀었다. 방수원에게 공을 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방수원이 공을 등 뒤로 감추면서 주춤주춤 물러나는 뜻밖의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김응룡 감독에겐 엄청난 항명이 아닐 수 없었다.
김응룡 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공을 달라는데 방수원이 2루 베이스까지 가는거야. 나원 창피해서.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구심한테 투수교체를 통보하고 들어왔지.”
방수원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경기 후 감독실로 불려 들어간 방수원은 ‘별명이 있을 때까지 그라운드에 나오지 말라’는 불호령을 들었다. 그리고 기약없는 2군 강등 통보를 받았다.
(2)임창용의 항명
2001년 6월 2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한화전. 1-2로 뒤져 있던 8회 2사 후 삼성 김응룡 감독이 선발로 나섰던 임창용에게 한화 좌타자 이영우를 고의 볼넷으로 내보라는 사인을 보냈다. 임창용은 지시를 묵살하고 일어서서 공을 받으려는 포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명백한 항명이었다.
유남호 코치가 황급히 마운드로 올라가 뒷걸음치려는 임창용의 손에서 공을 빼앗았다. 로진백을 걷어차면서 마운드를 내려온 임창용은 김응룡 감독이 앉아 있던 덕아웃 앞에서 글러브를 내팽개쳤다.
해태 시절같으면 용서받지 못할 항명이었을 이같은 사태에 대해 김응룡 감독은 의외로 조용하게 넘어갔다. 그 다음날 감독을 찾아와 용서를 빈 임창용을 향해 “앞으로 잘해”하는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임창용은 하지만 구단 자체 징계를 받아 벌금 220만 원을 물어야 했다.
그 이듬해 삼성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숙원을 풀었고 김응룡 감독은 10번째 정상에 섰다.
스파키 앤더슨(74)은 볼품 없었던 선수생활을 거쳐 메이저리그 명장의 반열에 든 지도자였다.
그는 하위권에 맴돌던 팀들을 일약 우승시킨 화려한 전력의 소유자로 신시내티 레즈(1970~1978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79~1995년) 등에서 월드시리즈 3차례 우승(1975, 1976, 1984년), 리그 우승 5회, 지구우승 7회의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스파키 앤더슨은 “팀을 재건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팀을 똑똑히 이해할 것, 이해하지 못하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어째서 (팀이)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가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재건의 출발점이다”고 말했다. 상위권에 있는 팀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위권에 처져 있는 팀의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조언이다.
“젊은 감독들이여, 정신 차려라”는 김응룡 사장의 말을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흘려듣지 말아야한다. 자칫하면 농담이 진담으로 바뀔 수 있다. 야구판의 일은 알 수 없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김응룡 사장 모습. 김 사장은 그 때 카리스마가 넘쳐 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