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에서 올해 LA 다저스로 옮긴 메이저리그의 명장 조 토레(68) 감독은 “오늘 이겨야한다. 승리야말로 모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야 구단주에게 구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승부세계에서 살아가는 지도자의 속성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조 토레 감독은 기자들을 상대할 때 질문에 가장 알맞고 적확한 답변을 하는 지도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설자로서도 경험이 있는 그는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한다. 즉 미디어에 종사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듣고 싶어하는 지를 어느정도 알고 대답을 내놓는다”고 한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끈 조 매든 감독(54)은 독특한 색깔을 지닌 지도자이다. 매든 감독의 프로야구 선수 경력은 애너하임 에인절스 산하 싱글A에서 4년간 지낸 것이 고작이다. 통산타율은 2할6푼7리, 홈런 5개. 에인절스에서 10년간 벤치코치를 맡은 경험이 있던 그는 2006년 레이스의 제 4대 감독으로 발탁됐다. 그런 인물이 팀을 맡은지 3년만에 리그를 제패하고 월드시리즈로 이끈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메이저리그 경험이 전혀 없는 매든 감독은 비록 2008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1승4패로 져 우승은 좌절됐지만 2007시즌 맨꼴찌팀이자 올해 최저연봉팀을 아메리칸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평소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즐겨 마시는 그는 와인감정사이자 원정 때는 분해해간 자전거를 재조립해서 사이클링을 즐기는 독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독서광인 그는 심리학이나 철학서를 탐독하고 의 작가인 까뮈의 사상을 선수들에게 설파하는 괴짜이기도 하다. 그는 상식의 틀을 깨는 감독이다. 지난 8월17일 텍사스 레이저스전에서는 4점을 앞서 있던 9회 말 2사만루 상황에서 상대의 주공격수 해밀턴을 볼넷으로 걸려내보내는 보기드문 장면을 연출(결국 7-4로 이겼다)하는가 하면, 10월25일 필리스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는 9회 무사 만루의 위기 상황에서 우익수를 내야로 불러들여 5명이 내야 그물수비를 펼치는 기발한 수비 시프트를 펼쳐보이기도 했다(이 경기는 4-5로 졌다). 고정관념에 구애 받지 않는 매든 감독은 남의 험담을 절대로 하지 않고 좀체 선수들을 비판하는 일도 없지만 그라운드에서 느슨한 주루플레이를 한다든지, 선수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특유의 설교로 선수들을 가르친다. 그는 지난 7월26일 일본인 선수 이와무라가 전력질주를 하지 않자 “실수는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노력하는 것은 다르다”고 질타한 바 있다.(10월21일치 일본의 ) 승부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도자들의 세계관을 정형화시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그렇지만 평소 기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감독들의 성향이나 색깔은 드러난다. 작년에 이어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SK 와이번스의 김성근(66) 감독과 두산 베어스의 김경문(50) 감독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지도자로 지휘방침 또한 선명하게 엇갈린다. 어떤 면에서 김성근 감독은 조 토레 감독과, 김경문 감독은 조 매든 감독과 유사한 점이 있다. 평소 기자들에게 어눌한 우리 말투로 상황 설명을 잘 해주는 김성근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국면을 아주 잘게 썰어가면서 상대방을 질리게 만드는 ‘현미경 야구’를 구사한다면, 김경문 감독은 어디까지나 공격적인 성향이 짙은 통큰 야구를 구사한다. 김성근 감독은 큰 경기를 앞두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적이 많다. 이번 한국시리즈 들어서도 매일 새벽 3, 4시가 돼야 잠자리에 들었다. 지난 경기를 머리 속으로 복기하고 경기 녹화 테이프를 반복해서 틀어보거나 다음 경기의 선수기용 문제 등 이런저런 구상에 빠져 ‘잠못이루는 밤’이 지속되는 것이다. 마치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공명이 중원 정벌을 앞두고 오장원에서 전략구상에 몰두하느라 날밤을 지새운 것과 흡사하다. 지난 27일 한국시리즈 2차전 시작 2시간 전, 인천 문학구장 SK 감독실에서 만난 김성근 감독은 무언가 자료를 쌓아놓고 일일이 체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감독방으로 찾아든 기자들을 맞이한 김 감독은 1차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1000승 달성 기념 사인공을 기자들에게 건네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질문에 답해 나갔다. 그 공에는 ‘일구이무(1球二無)’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 뜻을 묻자 김성근 감독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오늘 승리해야만 한다’고 역설한 조 토레 감독의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김성근 감독은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한국시리즈 4차전(20월 30일)에서 두산에 이긴 다음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제 명에 못살겠다”고 짐짓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오늘(4차전) 게임은 기대안했는데 투수가 잘 막아줘 6회에 승부를 걸었다. SK다운 야구를 했다”는 자찬을 곁들이며 승자의 여유로운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백전노장의 풍모가 여실히 전해지는 장면이었다. 조 토레는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다”고 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손으로 일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1:1 과외를 즐기는 그는 이를테면, 이번 시리즈 들어서도 1차전 후 최정과 이진영, 2차전 후 조동화 등 문제점이 발견된 선수들을 직접 붙잡고 교정작업을 벌였다. 특정 선수에 대한 족집게 과외식 개인훈련은 김성근 감독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렸다. 김경문 감독의 특장은 대타작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2008베이징 올림픽에서 신들린 듯한 대타작전이 번번이 맞아떨어져 한국을 사상 첫 우승 고지에 올려놓았던 그는 이번 한국시리즈 들어서도 1차전에서 최준석의 대타작전 성공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김경문 감독은 대타의 선택기준으로 “어떤 상황에서 기용할까 미리 생각해 두고, 타자의 컨디션을 사전에 체크하고 데이터를 참조해서 활용한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굳이 덧붙이자면 아마도 승부사 특유의 동물적인 직감도 작용할 것이다. 이번 한국시리즈 성패와 상관없이 김경문 감독은 한국야구판에서 고정관념을 깬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 1차전 경기초반 두 차례의 무사 1, 2루 기회를 보내기번트가 아닌 강공으로 밀어붙였던 그는 이번 시리즈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4차전에서도 뚝심좋게 강공작전으로 일관했다. 김경문 감독의 지휘성향은 일견 상대방이 알고(번트작전은 하지 않는다는 것) 대처하기 때문에 편하게 해주는 면이 있지만 선이 굵은 일관된 작전을 고집한다는 점에서는 아주 남다르다. 당장 실패하더라도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맡기는 점 또한 김경문 감독의 특이한 행동 양태이자 미덕이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