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이 막 열리기 직전인 1988년 9월 13일, 최동원을 회장으로 내세운 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대전 유성에서 창립총회를 기습적으로 열었다.
사전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7개구단은 선수협의 노조화를 우려한 나머지 ‘선수협 참가 선수와 재계약 거부’에 이어 ‘팀 해체 불사’라는 초강경조치를 들고 나왔다. 주동자를 야구판에서 몰아내겠다는 구단들의 서슬푸른 으름장에 결국 선수들은 백기를 들었고, 선수협 파동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뒤 선수들이 다시 선수협의회 구성을 외치고 나섰다. 1999년 11월 일본에서 열렸던 한-일 슈퍼게임 기간 중에 선수협 결성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2000년 1월21일 서울에서 선수협의회 창립 총회를 열었다. 긴 파동의 시작이었다.
구단들은 송진우 회장을 비롯 마해영, 심정수, 양준혁, 박충식, 최태원 등 선수협 핵심 인물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공시하는 한편 이들을 구단들이 받아들이지 않기로 짬짜미,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태는 2000년 3월 10일 문화광광부 중재로 겨우 봉합이 됐고, 2000년 1월 20일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의 중재 아래 프로야구선수협의회 태동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다시 흘렀다. 이번에는 프로야구선수협회가 정식 노동조합 설립 기치를 내걸었다.
선수협은 지난 4월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합 추진을 천명했다.
손민한 선수협 회장은 그 자리에서 “2000년 1월 선배, 동료들의 피땀어린 희생에 힘입어 탄생한 선수협이 어느덧 1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우리 프로야구는 이제 올림픽 금메달과 WBC대회의 준우승이라는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수들이 처한 환경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그간, 선수협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구단에 프로야구 운영과 선수 권익과 관련한 많은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하고, 또 제도 개선을 제안해 왔으나 철저히 외면당했다. 2008년 11월 25일, 선수협 대표와 KBO, 구단 대표자 간의 회담을 통해 전달된 11개 사항의 제도개선안에 대해서도 아무런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 우리는 KBO나 구단으로부터 소중한 파트너로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500여명의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시켜 나가기 위해 현행 법률에 근거한 노동조합을 설립할 때가 되었다. 임의단체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단체협상권과 행동권을 보장받는 한국프로야구선수노동조합으로 전환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선수협이 내세운 노동조합 전환의 표면적인 이유는 제도개선에 대한 KBO와 구단의 무반응에 대한 실망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그 배경에는 상호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 선수협 파동 이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제도 개선이나 선수 권익 관련 주장들을 묵살해온 데 따른 반감도 그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비활동기간 훈련 금지 같은 사안은 선수협이 꾸준히 규정 준수를 외쳐온데 반해 일부 구단과 지도자들은 성적 우선을 내세워 12월과 1월 중에도 훈련을 강행해온 것이 사실이다. 선수협이 내세운 요구조건에는 당연히 구단측과 선수들간에 이해가 상충되는 사안들이 포함 돼 있다. 구단은 구단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나름대로의 논리적 타당성과 이유가 있는 사안들이다. 타협과 양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쉽게 풀 수 없는 난제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프로야구 단장들이 지난 4월30일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아마추어 유망주 해외 진출 원천 봉쇄책’을 내놓아 야구계의 원성을 자초했다. 유망주의 해외 진출에 따른 자원 부족이나 고갈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한다손치더라도 구단의 이기주의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조치라는 게 야구계 주변의 시각이다.
이를테면 구단이 1년에 많아야 10명, 그것도 태반은 계약금도 없는 신고선수로 생색내면서 받아들이는 판에 꿈나무들의 해외 진출길마저 막아버리는 것은 원천적인 진로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문제는 사전에 KBO와 구단들이 여론 수렴절차라도 거쳐서 합리적인 안을 충분히 내놓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결국 선수협의 강경 대응을 부른다는 소리를 구단들은 귀담아 들어야한다.
선수협의 노조전환 선언 이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구단 사장단이 선수협과의 대화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는 점이다.
유영구 KBO 총재와 8개 구단 사장들은 4월30일 2009년도 제2차 이사회를 마치고 선수협과 적극 대화를 통해 선수권익 보호 및 증대에 나서기로 의견을 같이 했다.
이사회 후 이상일 KBO 총괄본부장은 “이사회는 선수협의 노조 설립은 적절치 않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만 선수협이 요구하는 사항(9가지) 중에서 대화를 통해 개선할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 채널을 가동해 노조 없이도 해결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의견을 통일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KBO와 구단들이 선수협 노조 전환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더 이상 임의단체로는 대화가 어렵고 노조설립을 통해서 법적구속력을 갖는 협의를 추구하겠다는 선수협과 자칫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상일 본부장은 “작년 11월 KBO와 구단 단장 등 4명, 선수협측 4명 등이 선수관계위원회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선수협의 9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나 이후 진척이 없었다. 2차례 정도 단장회의에서 토의를 했지만 선수협과 본격적인 협의가 없었다. 이번에 노조 설립 추진 이유로 KBO와 구단측이 요구사항에 대해 수용하지 않아서 비롯됐다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이사회에 보고했다”면서 “사장단은 종전 보다 오픈 마인드를 갖고 선수협과 대화를 통해 요구사항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하필이면 시즌이 이미 열려 프로야구판이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노조 설립을 들고 나온 선수협측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자칫 프로야구판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인 것이다.
이와 관련, 선수협 권시형 사무총장은 “WBC 1라운드를 마치고 지난 3월 12일 손민한 선수협 회장의 명의로 선수협의 요구사항들이 담긴 문건을 하일성 사무총장을 통해 유영구 KBO 신임 총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WBC가 끝난 후 구체적이고 상세한 답변을 달라고 했는데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도 제도 개선 등에 관해 전혀 답변이 없었다. 그래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이런 상황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한 후 KBO에 중대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미리 말씀 드렸다”고 주장했다.
선수협은 KBO의 대화 제의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노조 출범 방해를 위한 물타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권시형 사무총장은 “대화 자체는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권 총장은 “대화는 하되 임의단체가 아닌 법적 구속력을 갖는 노동조합으로 협약을 맺어야 한다”면서 “이번 시즌에는 단체 행동으로 피해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행동은 피할 것임을 밝혔다.
2000년 선수협 사태 당시 우리는 선수협과 구단들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들을 지켜보았다. 1982년에 출범, 이제 30년 가까운 연륜을 쌓았으면 선수협과 구단 모두 성숙한 자세로 진정한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8개 구단을 대표해 협상 창구로 나서는 KBO와 선수협은 핵심 쟁점 사안을 놓고 지리한 줄다리기를 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윽박지르기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는 곤란하다. 순리로 처리해야한다. 합리적 대안과 협의로 풀어나가 ‘상생의 길’을 같이 열 수 있어야 한다.
한 포털사이트의 누리꾼 의견조사에 의하면 선수권익 보호를 위해 노조를 설비해야한다는 의견이 시기상조론에 비해 6:4정도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우선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 신뢰는 성의 있는 대화로 쌓아가야 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선수협 회의 장면(선수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