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국민감독’김인식, 연패…그 아픔의 기억을 넘어
OSEN 기자
발행 2009.07.03 07: 41

가슴 속 어디엔가, 몹시 가려운데 긁을 방도가 없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비유컨대, 요즈음 한화 이글스의 모습이 그러하다. 어느덧 11연패.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 시절을 포함 창단 이후 팀 최다연패 기록이다. 하릴없다. 김인식(62) 감독의 속이 절로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 2일 점심무렵,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김인식 감독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다.
“3개월마다 건강 검진을 하는데, 모든 수치가 다 좋아졌대. 그런데 팀이 한꺼번에 여러가지가 겹쳐 야구가 안되니, 느지막히 이 무슨 망신이야. 그저 끌탕만하고 있지.”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김 감독의 푸념에 덩달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무한 경쟁의 프로 세계에서는 승리만이 모든 걸 말해주는 법. 험난한 프로야구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 감독이지만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아주 이상하게 꼬였다”고 자책하는 말에선 그늘이 짙게 드리운다.
한화는 지난 6월 21일 히어로즈와의 더블헤더 1차전부터 7월 2일 SK 와이번스전까지 11게임을 치르는 동안 내리 쓴잔을 들었다. 1986년에 창단한 빙그레 이글스가 10연패(1993년 6월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더블헤더 2차전부터 6월 16일 태평양 돌핀스와의 2차전까지)를 당한 흐름과 어딘지 닮은 꼴이다. 김태균, 이범호 등 주포의 부상 결장, 세대교체 미흡, 노, 장, 청의 불균형과 부조화 등을 한화 추락의 근본요인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 누구보다 김인식 감독이 팀의 그런 약점과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는 터. 그래서 더욱 시름이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김인식 감독은 “투, 타, 용병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발투수가 5, 6회는 버텨줘야 하는데, 3, 4회에 이미 투구수가 75~80개니, 안바꿔줄 수도 없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 신경쓰냐고 선수들을 다독거리지만 어쩔 수 없이 부담이 가는 모양”이라며 “역시 투수가 문제”라고 핵심을 꼬집는다.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의 혁혁한 전과를 안고 새삼 지도력을 높이 평가받았던 김 감독은 미처 선수단을 돌볼 겨를조차 없이 시즌을 맞는 바람에 주위의 우려를 자아냈던 것이 사실이다. 초반 잘 나가던 타선이 주포 김태균과 이범호의 불의의 부상으로 휘청거리면서 덩달아 투수진도 부조에 빠진 것이 깊은 침체의 주요인. 1, 2군간의 전력차가 큰 것도 한화의 고민스런 현실이다. 대체요원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 감독은 WBC와 한화의 성적 부진을 연계 시키는 시각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김 감독은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어. 쌍방울 시절엔 원체 선수가 안돼서 그렇다치고, 두산 막바지 때도 부상 선수가 많아 그랬는데(2002년 10월 18일~2003년 4월13일. 10연패) 이 건 더하네. 안 될 때는 남들 눈에 성의 없이 보일 수도 있는데”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연패를 끊기 위해선 에이스인 류현진이 등판했을 때 타격이 터져줘야하는데 그마저도 침묵을 지키니 어려움이 가중된다.
옛일을 들춰보면, 컴퓨터 제구력을 자랑하던 이상군이 1993년 6월 5일 삼성과의 대구 더블헤더 1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이후 빙그레는 연패의 긴 터널에 들어갔고, 10연패를 탈출할 때도 이상군이 지긋지긋한 고리를 끊고(6월17일 청주 태평양전) 팀을 구출해냈다.
연패의 와중에 당시 김영덕 감독은 6월17일 구단에 사퇴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그에 앞서 연패 탈출 의지의 표현으로 ‘파르라니 깎은 머리’로 나섰지만 별무신통이었다. 삭발은 자기 정화의식.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각오의 절실한 표현이었지만 좀체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그 해에 결국 5위에 그쳤다.
당시에도 주전들의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계약만료해였던 김영덕 감독의 레임덕 현상까지 겹쳤다. 1991, 1992년 거푸 타격왕에 올랐던 이정훈의 부상과 3년 연속(1990~1992년) 홈런왕에 빛났던 장종훈의 침묵이 팀 연패를 거들었다. 게다가 주포 이강돈마저 허벅지부상으로 개막전부터 결장하는 등 특유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실종이 팀 약화를 부채질했다.
한 때 한물간 선수들을 훌륭하게 재기를 시켜 ‘재활 공장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김인식 감독은 “언젠가 세대교체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형으로 언급했지만, “송진우도 나이를 먹어 전성기를 지났다. 문동환도 은퇴해서 지도자 생활을 해야한다. 걔들도 이젠 망신당해선 안된다”고 말한 대목에선 구체적인 팀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게 했다. “구대성도 그렇고 정민철도 안된다”는 예시에선 노장들에 대한 실망감도 묻어난다. 이젠 세월의 큰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인식도 엿보인다.
아픔과 시련은 희망과 동전의 양면이다. 희망은 있다. 김 감독이 말했듯이“부상에서 돌아온 타자들이 아직 완전치는 않지만 좋아지고 있고, 투수진이 안정되면 타격도 살아날 것이다. 이제는 조금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2일 SK 전에서 돌아온 4번타자 김태균이 모처럼 홈런포를 가동했고, 클린업 트리오를 이루고 있는 김태완도 홈런을 기록했다. 타선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악순환 속에서도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다고 치부하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소설가 박민규는 에서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성적을 놓고 이렇게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6위 삼미 슈퍼스타즈: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스: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박민규식의 뒤집어진 표현법을 사용한다면, 2009년 7월 2일 현재 8개 구단의 성적 비유는 어떻게 될까.
‘아아, 실로 무서운 프로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고 16살의 나는 생각했다. 그럼 평범한 삶보다 못하거나 더 떨어지는 삶은 몇 위로 기록할 것인가? 몇 위라니? 그것은 야구로 치자면 방출이고, 삶으로 치자면 철거나 죽음이다. 그런 삶은 순위에 낄 자리가 없다. 평범한 삶을 살아도 눈에 흙을 뿌려야 할 만큼 치욕을 당하는 것이 프로의 세계니까’라고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은 절규했다.
박민규는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을 바쳤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승부를 겨루고 있고, 경쟁에서 뒤처진 자에겐 잔인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기록(85년 3월31일~4월29일)은 여전히 살아 남아 추억을 갉아 먹고 있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이범호(왼쪽)와 김태균의 훈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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