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발 없는 말]유영구 KBO 총재의 염려스러운 행보
OSEN 기자
발행 2009.07.17 08: 05

지난 7월7일 낮 12시 서울 시내 힐튼 호텔에서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가 원로 체육기자 출신들의 모임인 한국체육언론인회(회장 박갑철)의 임원 22명과 자리를 함께 했다. 유 총재가 그날 오찬 간담회 석상에서 ‘자유스럽게’ 한 발언은, 비록 현안에 대한 편린이지만 그의 생각과 의지와 뜻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것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유 영구 총재가 많은 얘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야구계 현안을 조목조목 설명했고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했다. 그 발언 가운데는 특정 감독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누굴 겨냥하는지 단박에 알아들을만한 비난이나, 돔 구장 관련, 팀 창단 문제, 중계권료에 대한 생각 등 자못 중요한 얘기들이 포함 돼 있었다.
아무리 퇴역 체육기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모임은 명색이 원로 기자출신들이 있는 자리이다. 그런 자리에서 총재가 한 말은 그만큼 무게감이 실려서 들릴 수밖에 없다. 더우기 유 총재는 지난 2월26일 제 17대 KBO 총재직에 부임한 이후 매스컴과 공식 인터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원로기자들에게 친근감을 느낀 탓도 있겠지만 그날 유 총재는 “스포츠 인이 룰을 너무 안 지킨다”, “감독이 정치인 같다”, “여성 관중이 많이 늘어났는데, 광주 구장에는 여자 화장실조차 부족하다”, “KT가 창단을 검토하고 있다”, “케이블 TV 중계권료는 양보할 수 없다”는 등 민감하고,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는 발언을 특유의 달변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이 토로했다. 그런데도 유 총재가 자신이 한 발언을 스스로 묵살하고 7월 8일 광주구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고 사실 자체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KT 이석채 회장한테 요청했다, 돔 구장은 서울 당인리 발전소 자리가 적합하다, 감독이 정치인 같다, 스포츠 인들이 너무 룰을 안지킨다, 케이블 4사 중계권료는 양보할 수 없다’ 등의 민감한 발언들을 작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수가 있었는가. 만약 비판이 두려웠다면, 그런 발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애초에 비보도를 전제한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환담 자리였다고 할지라고 그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는 한국 프로야구의 풍향계나 다름 없는 것이다.
유영구 총재가 ‘KT 창단설’누설에 따른 비판의 소리가 일자, 7월 8일 시상식차 내려간 광주에서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한 해명의 내용은 이렇다.
“KT 창단설은 근거가 없는 얘기이다. 나는 통신사 3곳이 경쟁하면 이상적인 그림이 될 것같아 얘기한 것이다. 원칙적인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지 전체 분위기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능성을 얘기한 것 뿐이다. 기자들이 도와줘야 한다. (기사를 써버리면 창단 움직임이) 위축되지 않겠느냐.”
유 총재의 애매한 해명대로라면, ‘창단설은 한마디로 터무니 없는 얘기인데, 그 비슷한 언급은 했고, 기자들이 쓸 데 없이 보도하면 도움이 안된다’는 것으로 재정리할 수 있겠다.
야구계는 현재 산적한 현안을 안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KBO 총재로 부임한 유 총재가 앞으로 해결사 노릇을 하며 풀어내야할 일들이다. 그 가운데 신생팀 창단 문제는 야구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팬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사실 유영구 총재는 역대 어느 총재보다도 야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닌 인물이다. KBO 고문과 LG 트윈스 구단 후원회장 등을 지냈던 그는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아 이미 야구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던 낯익은 얼굴이었다.
유 총재가 프로야구 수장에 오른다는 소식을 접한 많은 야구인들이 기대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려의 시선도 거두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나라 경제 사정이 워낙 좋지 않은데다 프로야구계가 안고 있는 해묵은 현안들이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난제가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는 실정이다.
유 총재가 어떤 수완과 지혜를 발휘해 숙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시선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유 총재는 그날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스포츠인 들이 너무 룰을 안 지킨다. 감독이 정치인 같다. 룰을 하나도 안 지킨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6월29일 KBO가 규칙위원회를 열고 후반기부터 대회요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일부 구단의 감독이 노골적으로 불만과 비판의 소리를 높인 것에 대한 반응인 듯했다.
KBO가 공표한 것은 경기 스피드 업, 선수단 철수행위, 덕 아웃 인원 정비 등이 그 골자였다. 그 같은 사항들은 사실 대회요강에 엄연히 들어 있는 것으로 그 동안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은 것들이다. 대회요강은 따지고 보면 구단 단장회의와 이사회(사장단 모임)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일부 감독의 볼멘소리는 소속 구단에 대한 침 뱉기나 마찬가지이다.
유 총재는 특히 덕 아웃 전자장비(노트북 등) 사용에 대해 일본과 메이저리그의 실례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유 총재가 일부러 그 실태를 들먹인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클린야구’에 대한 소신 때문으로 보였다.
“일부 감독이 ‘총재가 너무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쓴다, 시즌 중간에 왜 못쓰게 하느냐’고 그러는데 WBC 때는 아예 덕 아웃에 못가지고 들어갔다. 우리 포수가 로진백을 옆에 놓아두자 메이저리그 심판이 제지하는 모습도 봤다”며 “이를테면 핸드폰으로 밖에서 지시를 내리고 망원경으로 외야에서 사인을 훔쳐 전달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통신장비 사용을 당연시하는 지도자들의 자세를 질타하기도 했다.
KBO가 시즌 중에 느닷없이 전자장비 철퇴 론을 들고 나온 것은 현장에서 묵살되고 사문화 된 대회요강을 엄격히 적용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 총재의 ‘클린야구’의 의지와 맥락이 닿는다.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는 관중 520만 명을 돌파했다. 프로야구 르네상스를 예감케 하는 이 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다. 유 총재는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업무보고를 받는데 작년 관중이 ‘대충’ 520만 명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확인해 보니 시즌 티켓판매 분을 모두 구장에 온 걸로 간주하고, 일만 원짜리를 5000원으로 쪼개 두 명으로 계산한 사례도 있었다. 올해부터 그런 일을 못하게 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말 현재 관중이 (작년대비) 2%가 줄었으나 전체 수입은 14%가 늘어났다.”
유 총재는 이 같은 것을 “거품을 빼는 과정”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관심사는 자연스레 돔구장 건설과 신생팀 창단으로 흘러갔다.
경기도 안산시와 서울 고척동에 돔구장을 건립한다는 얘기가 있긴 했지만, 그곳이 과연 적절한 입지인지 등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와 관련, 유 총재는 “서울 당인리 발전소 자리가 돔구장 입지조건에 적합한 것 같다”고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했다.
유 총재는 WBC 대회 도중에 돔구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돔구장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BO는 현재 돔구장 건립 전 국민 서명운동을 전개 중이다.
그에 앞서 유 총재는 지방 구장의 낙후된 실태를 지적하며 “여성 관중이 많이 늘어났는데 광주 구장 같은 곳은 여자 화장실조차 부족하다”고 꼬집기까지 했다.
야구 발전의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신생팀 창단 문제와 관련, 유 총재는 중대한 발언을 했다. “현재 몇몇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다. KT 등이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기업체를 실명 거론,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즌 후 제 9구단 창단 문제가 구체화 될 공산이 커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한 것이다.
유 총재는 “히어로즈가 후반기부터 스폰서를 잡고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창단은 한꺼번에 두 팀이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어서 (순차적으로) 제 9구단이 먼저 생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아울러 유 총재는 “KT가 들어오게 되면 SK, LG와 더불어 3각 경쟁구도로 가는 게 (야구 발전을 위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 과정에서 KT 이석채 회장의 이름도 불거졌다.
유 총재가 목소리를 높인 대목은 중계권료 문제였다.
“이승엽 중계에 90억 원 이상 쓰는 방송이 16억 원의 중계권료를 못 주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4개 케이블방송의 중계권료(방송 당 16억 원씩 총 64억 원)는 양보할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KBO 총재는 야구의 전도사가 돼야 한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이 있더라도 소극적인 부인으로 움츠러들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한다. 더우기 팀 창단 같은 문제는 밀실에서 야합을 한다고 쉽사리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예전에 많이 봐왔다. 이제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창단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슬그머니 얘기를 흘리고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정치권의 못된 악습이 스포츠판에서도 일어나서는 안된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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