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프로야구 무대에서 혼전과 난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8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올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 기적과 같은 성과를 올리며 야구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선수들은 페넌트레이스에서 전보다 격렬하게 경쟁을 하게 됐고 과열 허슬 플레이로 인해 줄부상이란 부작용이 따랐으며 체력이 쉽게 떨어져 심신이 녹초가 된 상태입니다. 또 엄청난 타고투저 현상이 10년만에 나타나 타자들의 경쟁심이 치열해졌고 투수들은 피곤해졌습니다.
전반기를 마친 7월 23일 현재 각팀은 정규 시즌의 3분의 2 가량인 팀당 90경기 안팎을 소화했는데 1위 SK는 승률이 5할4푼9리에 머물러 역대 리그 1위팀 최저 승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승률 5할을 넘어선 상위 5개팀의 승차는 SK와 2위 두산이 반 게임차, SK와 5위 삼성과 승차도 3게임차 밖에 안돼 후반기에는 체력이 강한 팀이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지러울 정도의 혼전이 진행된 전반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경기로 6월 25일 광주에서 열린 SK-KIA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연장 12회에 타이거즈가 6-5로 신승한 이 경기는 난전에다 괴기스런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이 경기를 5시간 가까이 관전한 필자는 50여년간 야구장과 가깝게 지내면서 이 같은 이해하기 힘든 게임은 처음 봤습니다.
페넌트레이스 3위 안에 든 두 팀은 엎치락 뒤치락거리며 연장전에 들어가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김성근 SK 감독과 조범현 KIA 감독은 투수들을 줄줄이 동원하고 타자와 수비수들도 뻔질나게 교체해 보는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했습니다.
난전과 엽기극의 하일라이트는 연장 12회에 나왔습니다. 김성근 감독이 기괴한 기용법을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12회초 2사 후 타석에 에이스 김광현을 내세웠습니다.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김광현은 "무서웠다"고 소감을 털어놓더군요.
그리고 12회말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놀랍게도 3루수 최정이었습니다. 그런데다 우완투수 윤길현을 1루수로 기용했습니다.
최정은 고교시절 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으나 프로에선 처음 등판했다가 첫 타자 안치홍에게 우중간 3루타를 얻어맞았고 이어 볼넷과 도루로 2, 3루 위기에 몰렸습니다.
KIA의 다음 타자 김형철 타석에서 김성근 감독은 또 다시 괴상한 수비 포메이션을 내놓았습니다. 2루수 윤상균을 유격수와 3루수 사이에 배치한 것입니다. 왼쪽 내야 수비라인에 세 명의 수비수를 배치하는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승부는 끝내기 패스트볼이 나오면서 어처구니없이 싱겁게 끝났습니다. 일부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고 KIA 선수들도 황당한 승리인 탓인지 그리 기뻐하지 않더군요.
"재미있었다" "뜻밖의 장면에 즐거웠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지만 "프로답지 못했다" "스스로 승부를 포기한 것 아닌가" "관중을 우롱한 것이다" "무승부가 곧 패전이 되는 잘못된 규정을 꼬집는 일종의 풍자극" 이라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다음 날 김 감독은 적극 해명에 나섰습니다. "만약 질 생각이 있었다면 11회말이었을 것" 이라며 "정대현이 허리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1회를 더 막았다. 12회엔 쓸 투수가 없었다. 전병두를 괜히 미리 (인천으로) 보냈구나 하며 후회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져주기 논란'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졌다해도 막상 경기에 들어가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수 없을 것" 이라면서 "비겨서 패전을 안는 것과 져서 패전을 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선수를 남겨놓고 진다면 선수들이 나중에 감독을 뭐로 알겠느냐" 며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해 무제한 연장전 방식에서 올해는 12회 무승부 제도로 바뀌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김성근 야구’는 전반기에 가장 많은 11차례 연장전(2승4패5무승부)을 치러 와이번스 선수들의 피로도가 가중됐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강도 높은 훈련과 특별 훈련을 잘 시키기로 유명합니다. 시즌 중에도 경기 개시 시각 4시간 전 쯤에 경기장에 나와 강훈을 시키고 가끔 경기가 끝나고 밤 10시 이후에도 직접 그라운드에 남아서 특훈을 펼쳐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의 야구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시즌이 끝나면 매년 12월 1일부터 다음 해 1월 31일까지 두 달간은 선수들이 휴식기간을 갖기로 야구 규약에 정해져 있지만 선수들이 자율훈련을 원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합동훈련과 전지훈련을 펼쳐 쉬는 기간이 며칠되지 않은 것이‘김성근 야구’입니다. 어쨌든 ‘김성근의 SK 야구’는 2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에 다른 팀도 영향을 받아 강훈과 특훈이 늘어났습니다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이 치솟고 홈런이 양산되는 타고투저 현상은 지난 1999년 최고조였는데 올해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 투수들의 체력 고갈과 부상이 타자들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홈런은 지난 해 정규 시즌에서 총 646개(경기당 1.3개)가 나왔으나 올해는 벌써 788개(경기당 2.2개)가 쏟아졌고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은 4.11에서 4.76으로 치솟았습니다.
SK도 투수력이 떨어져 팀 평균자책점이 재작년 3.24, 지난 해 3.22에서 올해는 3.79로 높아져 2년 연속 선두를 달리던 마운드 랭킹이 2위로 처졌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열흘전 "박재홍은 허벅지가, 박정권은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파 제대로 스윙할 수가 없다. 정근우는 양쪽 발목이 아프고 포수 정상호는 고관절에 통증으로 원바운드 볼을 제대로 잡을 수도 없으며 이호준이도 무릎이 아프고…" 라며 주전선수들이 대부분 다쳐 힘들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더구나 최고 포수로 팀의 조타수 격인 박경완은 한달 전 경기 중 뛰다가 왼발목 아킬레스 건이 파열돼 올 시즌을 완전히 접어 팀에 비상이 걸렸고 대신 나섰던 정상호도 지난 주 경기 중 목을 다쳐 보름간 출장이 어렵게 됐습니다. 그리고 팀내 제2 선발이던 채병룡은 초반부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더니 며칠 전에 팔꿈치 수술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올해 유례없이 늘어난 선수들의 줄부상과 시즌 개시 두어달만에 일찌감치 체력이 떨어져 허덕이는 선수들이 속출한 것은 SK만 아니라 모든 팀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강훈과 특훈이 지나치게 많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여기에 무승부를 패전으로 간주키로 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승률 방식이 선수단의 승부욕을 부추킨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근 감독을 비롯한 각팀의 지도자들은 과다한 훈련량부터 줄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KBO가 규제하기 보다 감독들이 모여 진지하게 훈련량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보는 게 어떨까요. ‘선수들을 다그치고 몰아치면 잠깐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선수 보호를 하는 팀이 가장 좋은 성적을 낸다’는 말은 영구불변의 진리입니다.
천일평 OSEN 편집인
(왼쪽부터)마운드에 오른 최정, 1루수로 나선 윤길현, 타석에 선 김광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