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국민 감독’이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로 불리는 김인식(62) 전 한화 이글스 감독에 대해 잊혀지지 않는 두 가지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 순간들은 지금도 머리 속에 생생하게 각인 돼 있어 떠올리는 순간 언제나 가슴이 아려온다. 기억 1 1994년 어느 날 김해 공항에서였다. 1992시즌 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 ‘야인(野人)’이 된 김인식 감독은 곧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구단이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러나 1993시즌이 끝나도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언제나 ‘내가 김인식인데’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4시즌에도 그는 모 스포츠 전문지의 해설위원으로 전국을 떠돌았다. 그날은 부산에서 열린 롯데전 해설을 마치고 필자와 동행해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아온 날이다. 옷 가방을 어깨에 둘러 메고 택시를 타러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무엇인가 패배자 같은 느낌이 묻어 났다. “나도 상상도 못했지. 내가 2년 째 놀게 될 줄은. 쌍방울 나올 때만 해도 자신 있었어. 원하는 팀도 있었고. 그런데 현실은 달랐어.” 당시 김인식 감독과 나눈 얘기다. 모아놓은 재산도 없는 상태에서 가장의 실직은 가족들의 생활고로 이어졌다. 여러 안타까운 소문들이 돌았다. 필자는 ‘천하의 김인식’의 축 처진 어깨를 처음 보았다. 기억 2 지난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4강전이 열린 LA 다저스타디움에서였다. 그곳의 기자 회견장은 좌측 외야 관중석 끝 지하에 위치해 있다. 감독들은 선수 클럽하우스에서 나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회견장 연단이 유난히 높았다. 안타깝게도 감독이 나오는 쪽은 반대편에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물론 연단이 높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조금 힘쓰면 가뿐하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다들 사양한 한국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승부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안 그래도 불편했던 몸이 더 심해진 김인식 감독은 정말 힘겹게 연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연단 높이에 당황해서 얼굴까지 붉어지고 겨우 올라 서서는 가빠진 숨에 힘겨워하던 그 모습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필자는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에게 반대편의 계단을 알려주고 다음 회견 때부터는 연단을 돌아 그 계단을 이용하도록 했다. 그 같은 역경 속에서도 김인식 감독은 2006년 제1회 WBC 4강에 이어 2회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서 일본에 3-5로 패한 것이 뼈아팠다. 그는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말을 남겼고 귀국해 “위대한 도전 정신”이라는 찬사를 들었으며 국민들을 감동 시킨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명실상부한 ‘국민 감독’이 됐다. 고민은 김인식 감독이 사령탑인 한화 구단이었다.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는 책임 의식을 가진 감독을 대표팀에 내 줬던 한화는 2009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내내 최하위권을 맴돌았고 12연패를 당하는 수모끝에 일찌감치 꼴찌가 확정됐다. 이에 야구계에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는 김인식 감독을 과연 한화 구단이 재계약 할 것인가에 대한 말들이다. 총감독, 혹은 구단 부사장 등의 얘기가 있었지만 감독으로 단기간이라도 한 번 더 기회를 줘 1000승을 달성하고 명예롭게 마무리하도록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LG 김재박 감독보다 먼저 교체가 결정됐다. 비슷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9월24일 통보를 받고 25일 삼성 라이온즈 전을 마지막으로 한화 구단의 ‘고문’으로 물러났다. ‘고문’이라면 통상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 중역에게 예우 차원에서 일정 기간 대우를 보장 해주며 쉬면서 다음 일을 찾아 보라는 자리이다. 마지막 날 삼성 선동렬 감독과 환담하며 이제는 러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자랑한 김인식 감독은 ‘국민 감독’의 반열에 올라 엉뚱하게 지도자 인생에서 3번째 야인이 됐다. 통산 1000승 달성을 목전에 둔 김인식 감독이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지금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한화는 김인식 감독 대신 전 삼성 한대화 수석 코치를 3년 계약 기간에 신임 감독으로 영입했다. LG는 박종훈 전 두산 2군 감독과 5년간 계약을 맺었다. 그 후 김인식의 재계약 불발과 한화, LG의 신임 감독들에 대해서 평가와 논란이 일었다. 먼저 김인식 감독이 유니폼을 입고 구단 고문으로 물러난 것을 놓고 모 야구인은 ‘야구팬들과 우리 모두가 그 분을 국민 감독이라 불렀다면 적어도 한국 프로야구계는 그분에게 걸맞은 예우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한화 구단에 국한 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화가 팀을 재건하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면 유영구 총재가 이끄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차원에서 김인식 감독을 빠른 시일 내 명예로운 자리에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09시즌 프로야구가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한 배경에는 김인식 감독이 이끈 국가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이 크게 작용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아직 KBO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한화와 LG는 일찌감치 한대화 삼성 수석 코치와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을 모두 우선 후보로 정하고 움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이 한화, 한대화 삼성 수석코치가 LG 감독이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여러 야구 인들이 후보로 오르내렸다. 누가 누구를 민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일부 전문가들의 사이에서는 LG 감독으로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이 낙점된 것에 대해 뜻 밖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한화는 김태균 류현진 등이 있다고는 해도 힘겨운 세대 교체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팀을 재건해야 하는 임무를 한대화 감독에게 맡겼다고 보고 있다. 계약 기간인 3년 안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LG는 팀 전력 상으로 한화와는 위상이 다르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현재 LG의 전력이 4강권에서 멀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봉중근 박용택 이진영 등이 포진해 있는 LG는 도전 정신으로 선수단을 통합해 같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당장 내년에도 4강 진입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강력하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왜 LG가 적어도 성적에 관한 한 능력이 검증된 김인식 감독의 영입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LG의 신임 박종훈 감독은 두산 2군 감독을 맡고 있는 동안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점을 인정 받았다. 그런데 LG는 팀을 재건하는 과정에 있는 팀은 아니다. 물론 박종훈 감독은 팀 성적과 명가 재건을 동시에 이룰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거 경력만을 놓고 분석해보면 팀 재건은 몰라도 당장의 성적에 관해서는 김인식 감독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한대화, 박종훈 감독은 모두 오랜 기간 노력해 준비를 마친 감독임이 분명해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취재 중에 만난 모 야구인은 LG가 김인식 감독과 계약했다면 내년 시즌 4강권 진입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인식 감독이 상대 벤치에 앉아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압박감을 주고 LG 선수들도 그의 지도력에 하나가 될 것이며 ‘국민 감독’이 사령탑이 되면 LG 팬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줘 프로야구 전체의 흥행과 발전이 계속 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한화가 김인식 감독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LG가 전혀 예상하지 못해 너무 일찍 박종훈 감독을 결정했고 나중에 번복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나 믿기는 어려웠다. 이제 결정은 났다. 전문가들은 물론 야구 팬들은 LG와 한화의 감독 교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누군가 한국 야구계에서 김인식 감독에게 빚을 진 관계자들은 반드시 그 것을 갚아야 한다. ‘국민 감독’을 이렇게 쓸쓸하게 그라운드에서 퇴장 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장윤호(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