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야구 인생 전환점에 선 추신수, 그의 선택은
OSEN 기자
발행 2009.11.16 08: 18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우익수 추신수(27)가 이번 겨울 한국에서 2000년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09시즌, 추신수는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정확히 3할 타율, 156경기 출장, 20홈런, 86타점 등 메이저리그 A급 외야수로 손색이 없는 성적을 기록한 뒤 말 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한 것이다. 귀국을 하니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광고 계약 섭외가 이어지고 있으며 방송 출연 요청도 부쩍 늘었다. 귀국 공식 기자회견과 허남식 시장 초청 부산 시청 방문, 스타일 아이콘 어워드에서 레드 카펫 등의 행사가 쉴 새 없이 열렸다. 필자가 흥미롭게 지켜 보고 있는 것은 현재 추신수의 행보가 박찬호(당시 24세)가 LA 다저스 시절인 1997 시즌을 마친 후와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기아자동차로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SUV와 오피러스 등 차를 후원 받은 것까지도 같다. 1996시즌 처음으로 풀 타임 메이저리거가 돼 주로 불펜 투수로 48경기(선발은 10게임)에 출장해 5승5패, 방어율 3.64을 기록했던 박찬호는 이듬 해인 1997년 LA 다저스의 5선발 투수로 자리잡으며 14승8패, 방어율 3.38의 성적을 냈다. 불과 한 시즌 동안 단숨에 메이저리그 A급 선발 투수로 발돋움 했다. 그 후 박찬호는 연봉의 몇 배가 넘는 엄청난 광고 수입을 올렸다. 컴퓨터, 스포츠 용품 등, 건당 광고 계약금만도 특급 연예 스타들보다 훨씬 많은 5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로써 박찬호는 국민적 스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부(富)와 명예(名譽)의 상징이 됐다. 물론 현재 추신수의 인기는 과거 박찬호의 가히 열광적이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메이저리그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메이저리그 측에서 지나친 중계권료를 요구해 한국의 팬들로부터 스스로 멀어져 나간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어쨌든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출신 타자로서는 최초로 ‘제2의 박찬호’가 될 기회를 보장 받은 것은 확실하다. 과연 언제 어떻게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흘린 땀과 성공에 대한 결실을 맺을 것인가만 초미의 관심사로 남아 있다. 박찬호도 현재의 부(富)의 대부분을 연봉 수입에서 일궈냈다. 그 배경에 자유 계약 선수가 돼 텍사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에 장기 계약한 것이 결정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에이전트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는 추신수의 이번 재계약에 특히 관심이 집중된다. 박찬호는 텍사스와의 5년 계약을 통해 편의상 1달러를 1000원으로 환산해도 연간 13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그 시기에 박찬호는 서울 강남에 빌딩을 지었다. 추신수의 현재 상황은 메이저리그 풀 타임 3년을 불과 한 달도 채 안 되는 등록일수 부족으로 첫 조정 신청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조정 신청 자격 여부가 변수이기는 하지만 박찬호도 조정 신청 자격이 없었던 1997시즌 후, 풀 타임 2년을 마친 시점에서 2년 다년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이 스프링캠프 기간 중 미국 플로리다 베로비치 다저타운에서 협상을 펼쳐 2년간 총액 300만 달러(1998년 70만 달러, 1999년 230만 달러)를 받아 냈다. 이 계약이 박찬호가 처음으로 베벌리 힐스에 저택을 사는 바탕이 됐다. 박찬호는 그 무렵 마라톤 협상에서 2년 300만 달러 조건을 이끌어내고 나온 스티브 김을 자신의 숙소 방에서 만났을 때 대뜸 “왜 300만 달러이냐?”고 물었다. 그 시점에서 나온 언론 보도에서 2년 500만 달러가 가능하다는 기사가 있었고 이를 박찬호의 부친도 읽어 보고 아들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때 박찬호가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처지였던 것도 추신수와 동일하다. 결국 클리블랜드 구단이 다년 계약에 대한 계획과 의지가 있고 추신수 측이 이를 받아들이면 박찬호의 선례로 볼 때 2년 300만 달러도 가능한 것이다. 더욱 비슷한 점은 당시 LA 다저스의 박찬호, 그리고 올시즌 추신수의 성적은 모두 소속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에서 일찌감치 멀어진 상태에서 부담 없이 플레이를 해 나왔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외부적인 차이는 있다. 박찬호의 에이전트가 안정을 선호하는 우리 한국인 성향의 동포 스티브 김이었던 것과는 달리 추신수의 에이전트는 랜디 존슨 등이 소속된 미국 에이전시 CSMG의 앨런 네로이다. 앨런 네로는 추신수와 클리블랜드 간 1년 계약을 한 뒤 조정 신청 자격을 얻게 되는 2010 시즌 후 빅딜을 노리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여건들을 모두 종합해볼 때 추신수는 드디어 자신의 야구 인생과 미래가 결정되는 중대 시점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찬호의 경우는 이런 분석도 나왔다. 만약 자유게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1년 무리하지 않았다면 그는 선발 투수로 더 롱런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것은 결국 2년 계약 마지막 해였던 1999시즌 초반 스티브 김이 LA 다저스와 추진했던 다년 계약이 끝내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약 LA 다저스와 조기 장기 계약을 맺고 다저스 선수로 남았다면 2001시즌 허리 이상이 왔을 때 FA를 의식해 강행한 무리한 등판을 포기하고 휴식과 재활 기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위상과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되돌아 보면 단 10초 동안의 전화 통화에서 박찬호의 야구 인생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당장 이듬 해, 혹은 2년 후, 3년 후에 박찬호의 미래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를 누구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2002시즌 박찬호의 텍사스 이적 첫해 스포츠전문 유선 TV방송인 'ESPN'이 메이저리그 연봉 체계, 유 계약 선수 시스템 등 파업과 관련해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에서 땀을 닦고 있는 화면과 함께 박찬호를 예로 들었다. 평균자책점이 7점 대인 투수, 박찬호가 5년간 6500만 달러를 보장받고 있다고 비꼬았던 것이다. 그 때 필자는 TV를 보며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를 매우 가슴 아파했다. 사람이 항상, 영원히 잘 나가라는 법이 없고 세상이 공평하다고는 해도 박찬호의 추락은 너무 끝이 없었다. 당시 확실하다고 판단했던 것은 텍사스 구단이 박찬호에게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5년 계약 기간 내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운 팀이었다.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홈런 공장’인 알링턴 구장의 여건, 팀의 구성원 등을 고려한다면 박찬호는 텍사스 유니폼을 입지 않았어야 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LA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로 가서 정말 고생을 했고 본인도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시절 텍사스로 함께 가 옆에서 그가 힘겨워 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필자는 1999시즌을 생각 했었다. 아! 그 때, 1999년 5월의 어느 날 박찬호가 OK 사인을 했으면 당시 텍사스에 있지 않을 것이고, 또 모든 면에서 그의 삶이 적어도 분명히 더 좋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1999년 당시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은 박찬호가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자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장기 계약을 추진했다. 스티브 김의 생각은 투수의 경우 자칫 부상을 당하면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보장을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당시 박찬호가 LA 다저스로부터 보장 받은 금액은 4년간 3800만 달러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그 상세한 액수는 철저히 비밀로 돼 있으나 5년째, 6년째는 각각 1400만 달러, 1500만 달러의 연봉으로 재계약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구단이 갖는 것이라고 전해졌다. 그 때 메이저리그 풀 타임 3년을 지나 겨우 조정 신청 권리를 처음 가진 선수에게 총액 67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안겨준 것을 보고 취재를 하던 필자도 놀랐었다. LA 다저스 구단이 그렇게 많은 액수를 박찬호에게 투자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물론 총액 부분에 대해 후일 박찬호의 최 측근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보장된 액수는 아주 적었다. 그래서 계약이 안 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 최종 조건이 확정된 순간, 전화 한 통화로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스티브 김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피터 오말리 다저스 구단주를 비롯해 당시 단장, 변호사 등이 함께 했던 회의실에서 선수 라커룸에 있는 박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종 합의가 됐으니까 사인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박찬호는 조금의 고민이나 망설임도 없이 “안 할래요”라는 한 마디로 거절을 했다. 그 대답에 스티브 김은 전화를 끊고 말았고, 피터 오말리 구단주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많이 놀랐다고 한다. 파격적인 조건에 대한 박찬호의 거절이 뜻 밖이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분위기가 주위에 전해졌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때 박찬호가 조기 장기 계약을 했으면 돈도 더 많이 벌었고, 마음도 편하게, 여건도 좋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올해도 열심히 뛰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당시 박찬호가 자신의 야구 인생을 결정하는 장기 계약 거부를 한 배경에는 시즌 후 새로운 에이전트로 등장한 스캇 보라스의 설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박찬호의 선례를 되짚어 보는 내용으로 길어졌다. 공교롭게도 추신수가 박찬호와 비슷한 처지라는 점을 필자는 주목했기 때문이다. 계약에 있어서 투수와 타자의 차이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추신수에게 자신의 야구 인생을 결정할 순간이 드디어 다가 왔다는 사실이다. 무작정 ‘돈’을 따라가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결단이 추신수와 에이전트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팬들의 관심에 부응하는 행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추신수가 내년 시즌을 차분하게 준비하기를 기대한다. /LA에서, 장윤호(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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