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인사이드 베이스볼]2010 프로야구, 어느 팀 감독이 해고될 것인가
OSEN 기자
발행 2010.02.15 08: 24

NFL 슈퍼볼이 끝난 미국 스포츠계는 대학 농구가 펼치는 ‘3월의 광란’과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개막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지난 2월8일 출국해 LA와 세인트 루이스로 이동하면서 프로 스포츠의 천국인 미국 현지의 분위기를 살펴 보았다. 다저스타디움과 부시스타디움이 항공기 창 밖으로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에도 따뜻한 LA의 다저스타디움은 잔디가 푸른 빛을 띠었고 부시스타디움은 흰 눈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차이였다. 세인트 루이스 야구 팬들은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가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올해가 토니 라루사 감독이 세인트 루이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토니 라루사 감독은 지난 해까지 14년 째 세인트 루이스를 이끌고 있다. 시즌 후 연장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년만 더 할 것이 유력하다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토니 라루사 감독은 한 팀에서 15년을 하게 된다. 만약 그가 올 시즌 성적과 상관 없이 세인트 루이스를 떠난다면 자진 사퇴일까, 잘린 것일까. 여행 중 신문 스크랩을 뒤지다가 오래 전 MLB 특파원 시절이었던 2006년 10월 ‘USA 투데이’지 스포츠 면을 잘라 꽂아 놓았던 기사를 읽어보게 됐다. 그런데 유명 스포츠 칼럼니스트, 할 보들리가 기고한 메이저리그 기사를 읽다가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만났다. 그 문장이 마치 격언(格言)과도 같이 가슴에 다가와 문득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 떠올랐다. 물론 오래 전부터 승부의 세계에서 흔히 해온 얘기이기는 하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해 불편한 몸으로도 조국을 위해 국가대표팀 사령탑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아 한국야구를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국가 대표 훈련과 WBC 경기 일정 때문에 제대로 팀 훈련을 관리하지 못한 탓인지 소속 팀 한화가 결국 꼴찌를 하자 김인식 감독은 경질이 됐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계약 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하지 못한 것이지만 사실상 경질과 다름 아니다. 한화 구단은 건강 상의 문제도 고려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한화가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면 김인식 감독은 재계약 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격언을 다시 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진리(?)’였다. 할 보들리는 자신의 칼럼에서 ‘감독들은 해고되기 위해 고용된다(Managers are hired to be fired)’며 마치 격언이나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 그는 ‘과연 그 동안 해고 되기 전에 스스로 덕아웃을 걸어 나갈 때를 알고 자신이 먼저 물러난 감독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떠날 때를 결정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칼럼을 시작하며 196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신시내티의 시즌 개막전 후 일어난 일화를 소개했다. 필라델피아의 에디 소이어 감독이 신시내티에 4-9로 패한 뒤 몇 시간이 지나서 자진해 사임을 발표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다. 당시 49세였던 에디 소이어 감독은 “나는 50살까지는 살고 싶다”라고 전격 사퇴의 변을 밝혔다. 감독들은 때로는 정말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 속에서 하루하루 줄타기를 하듯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1982년 출범해 지난 해까지 28년이 된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감독 직에서 자진 사퇴한 경우가 있었는가? 현 김응룡 삼성 사장이 제자 선동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용퇴한 것이 가장 근접한 사례이다. 김응룡 감독은 덕아웃을 떠나 감독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구단의 최고 경영자로 변신을 해 성공적으로 구단을 이끌고 있다. 2006 시즌 후 최대의 관심사는 포스트 시즌에서 디트로이트에 패해 월드시리즈 무대도 밟지 못하고 2000시즌을 마지막으로 무려 6시즌 동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뉴욕 양키스 조 토리 감독의 거취였다. 그런데 분위기상 잘리는 것이 유력해 보였던 조 토리 감독은 2007년까지 계약 기간을 채우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2007년에도 실패하자 결국 조 토리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1년 계약을 하려면 하고 안 해도 상관없다는 모욕적 대접을 받은 끝에 떠밀려서 LA 다저스로 팀을 옮겼다. 뉴욕 양키스의 감독 자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버티기 힘든 직업 중의 하나로 꼽힌다. 월드시리즈를 우승해야 ‘당연하다’는 소리를 겨우 듣는다. 한국 프로야구는 감독의 영입에 있어 아주 특이한 부분이 있다. 야구단의 경영진은 감독을 선임할 때 우승이 아니라 가장 먼저 ‘팀을 4강에 들게 해 포스트시즌에 진출 시킬 수 있는가’를 예상하고 분석한다. 모 감독 출신은 ‘8팀 중에서 4등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구단의 경영진은 일단 팀이 포스트시즌에만 나가면 모 그룹의 수뇌부로부터 팀 운영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과거 삼성은 예외였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옛날 삼성의 감독 자리는 뉴욕 양키스 이상이었다. SK는 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2006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을 영입해 2007, 2008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당시 김성근 감독은 한국 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으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도자로 평가 받아 SK 유니폼을 입게 됐다. 김성근 감독은 일본 지바롯데 마린스 코치를 하면서 2005시즌에는 보비 밸런타인 감독을 도와 이승엽과 함께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끌었다. 그 경험이 개인적으로 김성근 감독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가능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한국 프로야구에서 모 감독은 계약을 하면서 ‘팀을 4강에 진출시키면 계약 기간을 보장받고, 못하면 1년 후에 잘려도 남은 연봉 등을 모두 포기하고 떠난다.’는 조건을 달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만큼 한국 프로야구에서 8팀 중 일단 4등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챔피언은 보너스이고 4등이 우선적인 의미가 있는 프로야구를 한국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인지 지난 해 7위 LG 김재박 감독, 최하위 한화 김인식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야인이 됐다. LG는 준비했다는 듯이 즉시 두산에 몸담고 있던 박종훈 코치, 한화는 한대화 삼성 코치를 영입해 프로 무대에서는 초보 감독으로 만들었다. 대조적으로 삼성 선동렬 감독은 5년 재계약을 성사시켜 10년 삼성 감독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KIA 조범현 감독은 3년 재계약을 했다. LG 박종훈 감독은 계약 기간이 선동렬 감독과 같은 5년, 조범현 감독과 한대화 감독은 같은 3년이다. 모 감독은 구단과 대우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는데 사실 그는 무엇보다 우승으로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확인시켜준 만큼 계약 기간 5년을 보장받고 싶었으나 그게 안됐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이 3년 재계약 기간의 2년째가 된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인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계약 마지막 해이다. 그러나 ‘감독들은 해고되기 위해 고용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계약 기간이 갖는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 다행히 최근 들어 시즌 중 경질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LA에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세인트루이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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