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빙성은 물론 설득력도 떨어지지만 ‘일본 야구계’가 오는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제16회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을 사실상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엉뚱한 ‘설(說)’이 나돌고 있다. 근거는 간단하다. 일본이 국가 대표팀을 사회인 야구 선수 위주로 구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처음에는 사회인 야구로 했다가 한 때 프로를 포함한 최강팀 구성을 하겠다고 바꿨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사회인 야구 중심으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2가지 해석이 나왔다. 일본은 프로 대표팀이 출전한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을 어렵게 누르고 제1회 대회에 이어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따라서 일본 야구 수준이 세계 정상급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국은 1회 대회 4강, 2회는 준우승이었다. 마지막 순간 모두 일본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1회 대회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오 사다하루 감독이 이끈 일본과 격돌했으나 0-6으로 완패했고, 2회는 결승에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지휘한 일본에 3-5로 졌다.
한국대표팀은 일본과는 달리 1, 2회 대회 연속 김인식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불편한 몸으로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이어진 시즌에서 소속팀 한화의 부진으로 야인이 된 김인식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으로서 이번 대표팀 선발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야구계의 현재 분위기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자세로 숙적 일본을 꺾고 반드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에서는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면 한국 일본 대만이 메달을 나눠 가질 것이 분명하다. 프로 경기 도박 문제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대만은 다소 처진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의 금메달 싸움이 되는데 일본은 아마야구 주축이고 한국은 해외파까지 포함되는 실력 위주의 최강 전력을 구성한다. 금메달을 땄을 경우에 주어지는 병역 혜택을 고려한 선발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KBO의 단호한 방침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일본 야구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금메달을 따면 최상이지만 못 따도 손해 볼 것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프로까지 포함해 최상의 대표팀을 구성해 나갔다가 혹시 한국에 패한다면 망신만 당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1, 2회 WBC 성적을 고려하면 한국에 이기면 당연한 본전이 될 뿐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일본은 국가 대표팀에 전임 감독 제도까지 도입해 호시노 센이치 전 한신 감독에게 지휘를 맡기고 프로 올스타 급으로 팀을 구성했으나 김경문 감독의 한국에 2번이나 패해 노 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 일본이 사회인 야구 주축으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뒷얘기가 또 있다. 좋게 말하면 한국야구를 일본의 ‘팜(farm, 선수 공급원)’으로 만든다는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식민지화(植民地化)’하는 전략이다.
제2회 WBC에서 한국 대표팀의 공격을 주도했던 김태균과 이범호가 지난 시즌 후 일본 프로야구로 떠났다. 이범호는 WBC 때 현재 소프트뱅크 구단 회장을 맡고 있는 오 사다하루 전 감독의 낙점을 받아 소프트뱅크 유니폼을 입게 됐다. 지바롯데 마린스로 간 김태균은 일본 프로야구에 빠르게 적응해 현재 퍼시픽 리그 정상급 타자로 떠오르고 있다. 슬럼프에 빠진 요미우리의 ‘국민타자’ 이승엽, 부상 중인 야쿠르트 마무리 투수 임창용과 함께 일본프로야구에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현재 한국 최고의 투수는 한화의 좌완 류현진(23)이다. 류현진은 5월11일 청주에서 LG를 상대로 17개의 삼진을 잡아 내 1경기 정규 이닝(9)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작성했다. 종전은 한국야구 투수 계보의 전설인 최동원과 선동렬 감독이 작성한 16개였다. 그는 25일 넥센전에서 시즌 7승째를 따냈을 때 2-0 완봉승을 기록했다. 20승과 1점대 방어율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형 투수이다.
그런데 류현진이 <스포츠 조선>의 10대1 인터뷰에서 해외 진출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일본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갈게요.’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일본 선수들이 한국 야구를 얕보니까 한번 혼내주고 그 다음에 최고의 무대로 가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2006년 한화에 입단한 류현진은 구단의 허락 하에 일종의 입찰 방식인 포스팅 시스템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7시즌을 2012시즌에 채울 수 있다. 9시즌을 마치는 2014 시즌 후에는 완전한 자유계약선수(FA) 된다. 몇 년 후의 일이 되겠지만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류현진이 또 일본 프로야구로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일본인 코치들이 한국프로야구에 지도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한국의 특급 선수들은 일본 프로야구로 가 용병이 되는 현상이다.
일본 진출 시기를 결정적으로 앞 당기는 것이 바로 병역 혜택이다. 임창용은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김태균과 이범호의 조기 일본 진출도 2006년 제1회 WBC 4강으로 받은 병역 특례 덕분이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면 대표팀 가운데 일본 프로야구에서 탐을 내는 선수들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 더욱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야구계에 떠도는 설은 일본이 아시안 게임 정도의 금메달은 포기하고 병역을 해결한 한국 스타 선수들을 조속히 일본으로 데려가는 전략을 쓴다는 것이 요지이다.
물론 한국이 프로 최강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긴다는 법은 없다. 2006년 도하에서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과 대만에 져 동메달에 그치기도 했다.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 올림픽은 동메달 이상 병역 혜택이 주어졌는데 이제 올림픽에서는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그래도 1998년 LA 다저스의 박찬호가 출전한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확실하다.
현재 한국 야구계는 고교 등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마 스타들은 메이저리그, 프로는 일본 프로야구로 가는 움직임이다.
황당한 설(說)에서 안타까운 한국 야구의 현실이 잘 나타나고 있다.
/보경 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