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펑펑 내리던 지난 12월8일 오후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인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서울 장충 구장에서 리틀 야구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옆 자리에는 한국리틀야구 연맹 한영관 회장이 함께 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리틀 야구의 현황을 설명했다.
당시 그라운드에서는 의정부 리틀 팀이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가 ‘리틀’이 아닌 ‘성인’ 같아 보여서 키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이에 리틀 연맹 신현석 전무는 “이름이 이용준인데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런데 키는 192cm”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제대로 성장하면 통산 303승을 거두고 지난 1월 은퇴한 메이저리그의 좌완, 랜디 존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빅 유닛’이라는 별명을 가진 랜디 존슨은 키가 208cm였으며 2004년 5월18일 애틀랜타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17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는 47세의 나이에 은퇴를 하면서 “이렇게 오래 했으니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더 이상 잘 던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필자가 느닷없이 랜디 존슨을 말한 것은 우리 리틀야구에 뛰어난 자질을 지닌 많은 선수들이 야구에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됐다.
김인식 기술위원장은 금년 한국야구의 미래를 좌우할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제도화 시켰다. 2011년부터 고교야구를 주말리그로 전환하는 혁신 작업이었다. 김 위원장은 학교야구 주말리그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거둬낸 성과를 인정 받아 그날 대한야구협회(KBA. 회장 강승규)가 주최한 ‘2010 야구인의 밤’ 행사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우리 야구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에도 노력하고 있는 김인식 기술위원장은 장충 구장에서 리틀 야구가 처한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리틀 시니어 클럽 시스템의 제도화가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리틀 야구는 2006년 취임한 한영관 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 정식 등록된 팀 수가 122개에 선수 수가 2800여명에 달하고 있다. 리틀야구 팀은 시, 군, 구 등 자치 단체를 기준으로 1개 팀만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인가를 받아 해당 체육회에 가입하고 지원을 받는다.
물론 비 등록 팀 수도 엄청나 전국의 리틀야구 선수 수는 4800 여명 정도로 연맹은 잠정 집계해놓고 있다. 초등학교 야구팀이 99개, 중학교 79개, 고교 53개, 대학 33개의 대한야구협회 등록 팀이 있다는 것과 비교해도 리틀야구 팀 수는 최다이다.
전국의 시, 군, 구 수는 256개이다. 내년 상반기 안에는 리틀야구 팀 수가 135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적으로 도저히 야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의 70여개 군 등을 제외하면 리틀야구 팀 수는 전체 시군구의 1/2을 넘어 2/3에 달하게 된다. 한국리틀야구연맹은 리틀야구팀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기 위해 시, 군, 구에 각 1개팀으로 제한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여가고 한 시즌 600만 관중 시대를 목전에 두면서 국민적이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 야구의 뿌리로서 손색이 없는 리틀야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 리틀야구의 새 싹이자 기대주들이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서 좌절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리틀야구는 만 12세, 중학교 1학년까지 활동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야구 팀을 운영하고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된다. 2009년 등록 선수 중 초등학교 6학년생 기준 리틀야구 선수 수는 1200명, 초등학교 99개팀 선수는 553명으로 모두 1753명이 중학교 팀에 입학해야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99개 팀의 2010년 1학년 등록 선수 수는 563명에 그쳤다.
계산을 해보면 리틀과 초등학교에서 1753명이 졸업해 겨우 563명 만이 정상적인 등록 선수로 야구 선수 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야구 선수로서의 진학률이 불과 32.1%에 그쳤다는 결론이 나온다. 리틀야구와 초등학교에서 야구에 꿈을 가진 유소년의 겨우 1/3 만이 그 목표를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리틀 야구 선수들은 막연히 야구를 좋아하기만 하다가 뒤늦게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수가 지닌 잠재력 보다 현재의 실력이 우선적으로 평가 받아 스카우트되는 중학교 진학에 불리하다.
이에 김인식 기술위원장은 한국 야구의 미래를 위해 기존의 중학교와 같은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만 12세~14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리틀 시니어 팀’의 창단과 리그를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고교야구 주말리그제로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주며,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하기로 결정한 대한야구협회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리틀 시니어 제도가 체계적으로 정착되면 대한야구협회 정식 등록화를 추진하고 정부 부처와 협의해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특기자 혜택을 부여할 예정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전국적으로 리틀 시니어 팀이 6개 권역으로 각각 리그를 구성해 최소한 30여 개 팀이 있어야 하고 주말리그로 정식 대회를 치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야구는 사회인 야구와 리틀 야구 분야에서 폭발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의 육성도 필요하지만 특히 유소년 야구에서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클럽 시스템이 필요하다.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의 경우 중학교까지는 학교 야구 팀이 없이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 8개 프로 구단 등 야구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리틀 야구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보경S&C㈜ 대표,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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