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 ‘야구를 알고 보자’ …기록강습회 열풍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3.04 07: 30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는 긴 겨울 동안 프로야구는 수면 아래에서 새로운 신화창조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지만, 기록위원들에겐 그 어느 해보다 상당히 분주했던 겨울이었다.
지난해 11월말 제주지역 출장 기록강습회를 필두로, 12월에는 첫 문을 열게 된 제1기 베이스볼 아카데미 전문기록원 과정(서울대) 신청자 접수와 수업준비에, 1월 한 달과 2월 중순에 걸쳐서는 4주 동안의 전문기록원 과정 진행에, 2월 중순 이후에는 2011 기록강습회(건국대) 접수와 강의 준비에, 비 시즌 기간의 대부분을 강습회 관련 행사에  쏟아 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시행키로 결정된 전문기록원 과정을 앞두고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단기간이 아닌 수업일수 8일을 꼬박 채워야 하는 한 달여의 강습과정에 뛰어들 야구팬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수업의 집중력과 희소성, 여기에 시장성과 교실의 수용규모를 감안 정원을 50명으로 일정부분 한정해 놓기는 했지만 일찍이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 낙관은 금물이었다. 
그러나 접수 하루 만에 정원의 2배를 넘는 100명 이상의 신청자가 몰렸고, 정해진 신청접수 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수강신청자 수가 정원의 8배인 400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애초 공지사항에 수강신청자가 많을 경우 서류전형으로 선별한다는 내용을 담기는 했지만,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이 많은 신청자를 가려야 할 지 일견 암담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기록강습회처럼 신청자 모두에게 수강기회를 드리고도 싶었지만 여건상은 무리. 
전문과정 수료식(2월 13일)이 있기 이틀 전, 연례행사인 2011 정기 기록강습회(제30회) 접수를 시작했다. 공식기록원의 등용문을 전문과정으로 방향설정을 해놓은 터라 과거와 같이 기록원 채용에 관한 내용을 담지 않고 공고를 띄워 전문과정 때와 같은 수강신청자의 폭발적인 반응이 재현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또 한번 빗나갔다. 접수 첫날 창이 열리자마자 신청자가 쇄도하기 시작했고 이후 하루가 다르게 수가 늘어 급기야 접수시작 4일만에 사상 처음으로 접수마감 안내와 감사공지를 동시에 올려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강습회장으로 수 년째 사용해 오고 있는 건국대 새천년관 내의 우곡 국제회의장은 1, 2층을 통틀어 대략 260석 정도의 수용규모를 가진 대단위 공간이어서 과거 전례로 볼 때 수강신청자 모두를 소화할 수 있었고, 좌석 정원을 일정 범위 넘었다손 치더라도 접수 마감일까지 크게 넘친 적이 없어 약간의 예비 좌석을 마련하는 정도로 대처가 용이했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봇물이 터지듯 일시에 몰린 신청자들로 포화상태를 넘어 수용이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 위험(?) 수위에까지 다다름에 따라 강습회장 정규 좌석 수보다 대략 100석 정도를 긴급 공수해 자투리 공간 구석구석을 이용, 부족한 좌석 수를 대폭 늘리는 등 전례 없는 부산을 떨어야 했다.
야구장이 아닌 기록강습회장에 이렇게 많은 야구팬들이 몰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이용 기록강습회를 신청하게 된 연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현장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의 거수 대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연히 강습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신청한 팬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기록원에 뜻이 있어 강습회를 찾은 팬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기록강습회가 열린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다가 때를 맞춰 수강신청서를 냈다는 야구팬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기다림…….’
근래 몇 년간 야구팬들이 크게 늘어난 것을 두고 이제는 승패를 떠나 팬들이 경기 자체를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고,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문화평론가들의 시평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닌 주변의 야구관련 이벤트에까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 분명 과거와는 다른 시류 속에 프로야구가 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결론적으로 요즘 강습회를 찾는 팬들의 진정한 바람과 욕구는 먼 곳에 있지도,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단지 애정 어린 야구에 대한 소박한 지식이면 그만이다.
야구기록법과 규칙이 물질적으로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수단도 되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도 거리가 있지만 팬들은 야구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는 야구를 좀더 깊이 알고 싶어 한다.
물론 전문과정을 신청했지만 수강기회를 얻지 못해 대신 기록강습회를 찾았다는 분들, 반대로 기록강습회 수강에 만족하지 않고 제2기 전문기록원 과정을 꼭 수강해 보고 싶다는 분들, 전문과정 수강기회가 주어진다면 공식기록능력 등급 인증(1급 또는 2급)서 취득을 위해 열심히 야구기록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분들 등, 나름의 목표의식을 갖고 다가온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비록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은 아니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 하나로 팬들의 마음 속에는 그 어떤 자격증이나 인증서 못지 않게 강습회 수료증과 인증서에 대한 사심 없는 욕심이 어느새 깊게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우체부 손에 들려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이 되기 위해 다가가고 있을 작은 종이 한 장. 
강습회 성적 우수자에게 발송되는 수료증 우송을 위해 부정확한 주소 확인 차  연락을 취했는데, 전화를 걸게 된 사유를 말하자 수화기 저편에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진다. 
“정말이예요?”
그 한 마디가 타임머신처럼 세월을 28년 전(1983년)으로 돌려놓는다. 기록강습회(제2회)가 끝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난 뒤 집으로 날아온 수료증 한 장. 비닐로 된 파일에 소중히 끼워놓고 길지도 않은 수료증 문구를 읽고 또 읽었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사진>2011년 기록강습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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