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K리그 전설' 김기동,"20년 채우겠다"
OSEN 기자
발행 2007.01.22 10: 07

17년째 프로 밥을 먹고 있는 선수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K리그에서 뛴 다른 선수들처럼 화려한 대표 경력을 자랑하거나 큰 상을 타면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K리그 팬들의 마음에 살아숨쉬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김기동(35).
그는 포항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지난 시즌 7개의 도움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동계 훈련에 여념이 없는 그를 지난 19일 포항 송라 클럽하우스에서 만나보았다.
▲ 축구선수로서는 환갑을 넘긴 나이
72년 1월 12일생이니 만으로 35세다. 우리네 나이로는 서른 여섯이다. 축구 선수로서는 환갑을 이미 넘긴 나이다. 예전 중국의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사람 나이 60이면 '귀에 거슬림 없이 들으면 모든 이치를 깨닫다(耳順)' 고 했다.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그러하듯 김기동 역시 축구선수로서 이치를 터득했다.
"체력적으로 좋았던 20대 초중반과 비교해서 뛰는 양은 비슷해요. 하지만 덜 힘들어요."
얼핏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답이다. 뛰는 양이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가 피로 회복 속도가 더 좋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 하지만 김기동은 자연의 법칙과 정반대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선택과 집중' 이라는 원리를 들어 설명했다.
"경기 하면서 머리를 쓴다고 해야 할까요? 무조건 냅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선택하고 선택된 것에 대해 집중을 하지요. 경기의 흐름을 알면서 뛰면 체력도 그만큼 아낄 수 있고 집중력도 높아집니다".
노련한 플레이가 자신의 장수 비결이라고 설명한 김기동은 자신이 깨우친 또 하나의 진리를 설파했다. 바로 고비를 즐겁게 넘기라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하루에 훈련을 3~4번씩 했죠. 지금보다 훨씬 훈련양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참 힘들었는데 그 때부터 가진 생각이 바로 '지금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다른 것도 못 넘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축구에서 고비가 찾아왔다고 넘기지 못하면 은퇴 후 다른 일을 할 때도 고비를 못 넘기겠죠. 따라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합니다. 물론 즐기기도 하구요. 그 한계, 그 고비를 뛰어넘으면 자신이 한 단계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요".
이같은 마음가짐 때문일까? 김기동은 여전히 20대 선수들보다 좋은 체력을 자랑한다. 그는 1월 18일 실시한 셔틀런(20~25m의 거리를 휘슬에 따라 반복해서 달리는 것, 일명 '삑삑이')에서 165회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30여 명이 넘는 선수단들 중 6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강철 체력의 비밀에 대해 김기동은 '규칙적인 생활' 이라고 밝혔다.
"총각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을 했어요. 숙소에서 지내지 않고 밖에서 나와 살았는데 밤 10시만 되면 집에 들어가서 잤습니다. 지금 제 아내와 연애할 때도 집까지 데려다주지도 않고 10시만 되면 그냥 들어갈 정도였으니까요. 지금도 그것 때문에 아내한테 한 소리 듣기는 하지만요. 후배들에게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는 조언을 항상 하고 있고 하고 싶습니다".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또 하나의 비결은 멀티 플레이 능력이다. 니폼니시 감독의 지도를 받던 부천 시절 김기동은 중앙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사이드 어태커까지 소화하며 자신의 수명을 늘렸다. 당시 니폼니시 감독은 선수들에게 멀티 플레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많은 선수들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내며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당시 멀티 플레이 능력을 길러 아직까지 현역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로 김기동을 비롯 이을용(FC 서울) 등이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김기동이 잡고 있는 목표는 바로 김병지(37, FC 서울, 92년 데뷔)가 보유하고 있는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현재까지 390경기를 뛴 김기동은 김병지가 보유하고 있는 427경기 출장에 근접해있다. 또한 그는 20년을 채우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주위에서 나이가 그만큼 되었으니 은퇴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제게는 큰 자극이 됩니다. 꼭 프로 경력 20년을 채우고 은퇴하고 싶어요".
▲ 잊지 못할 경기, 2006년 수원과의 플레이오프
김기동은 충남 신평고를 졸업하고 91년 포항제철에 입단한 뒤 93년 유공(부천 SK의 전신) 소속으로 1군 경기에 데뷔했다. 포항으로는 2003년에 돌아왔다.
16년간의 프로선수 생활 동안 김기동에게 있어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일까? 단 한 번의 우승도 하지못했던 그가 꼽은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바로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경기였다. 당시 포항은 이동국이 장기 부상에서 복귀했고 시즌 내내 꾸준한 전력을 보여주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우승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경기에서 후배들에게 미처 이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바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기 것만 하라는 것이죠. 큰 경기일수록 냉정하고 침착해야 하는데 그것이 좀 아쉬웠어요. 소위 말해서 오버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런 큰 경기일수록 또한 많은 관중들이 들어찰수록 선수들도 흥분을 하거든요. 자신이 뭔가를 보여주면서 영웅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수비에서 허리를 거쳐서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한 번에 바로 공을 올린다거나 다른 선수가 좋은 찬스가 있음에도 자신이 직접 슈팅을 해서 찬스를 무산시킨다거나 그런 것들이죠. 이 말을 왜 미처 하지 못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경기 후에 몇몇 선수들과 얘기했는데 이미 늦었죠".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던 이 경기에서 포항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도 후반 9분 백지훈에게 통한의 중거리슛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이날 경기에서 김기동은 김남일 백지훈 이관우 등 국가대표급 미드필더들과 맞대결을 펼치면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0-1로 뒤지던 후반 18분 이동국의 패스를 받아 날린 회심의 중거리슛을 잊지 못했다. 당시 이동국은 로빙볼을 트래핑했고 수원의 수비수 네 명이 달려들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공을 컨트롤한 후 뒤에서 달려오던 김기동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박호진의 선방으로 이 슛은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아마도 제 인생에 있어서 계속 생각이 날 겁니다. 동국이가 공을 내주던 당시 골대 구석이 보이더라구요. 공을 차면서도 느낌도 왔습니다. 슈팅이 영화처럼 눈 앞에서 슬로모션으로 골문을 향하는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저는 '골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주먹을 위로 쳐들면서 기쁨을 표현하려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손이 하나 나타나면서 공을 쳐내더라구요. 하늘 위로 쳐올려야 하는 제 주먹이 땅을 치는 순간이었구요".
▲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 이동국, 분명히 성공할 것
이 상황에 대해 얘기하던 김기동은 이동국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스트라이커들과 호흡을 맞추어왔지만 위치 선정과 패스 능력 등에 있어서는 이동국 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위치 선정과 패싱력, 창의적인 능력에서는 현재 이동국을 능가하는 국내 스트라이커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 동국이랑 함께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했죠. 동국이가 광주에서 제대하고 저도 포항으로 오고 난 후 한 2년 정도 맞추어봤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공을 잡으면 의식적으로 동국이를 보게 되요. 공을 주기 좋은 위치에 있고 그 쪽으로 달려가니까요. 지난 시즌에도 동국이 덕분에 저 역시 포인트도 많이 올렸습니다".
김기동은 이동국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잉글랜드서 잘할 겁니다. 2001년 브레멘에 갔을 때는 어렸지만 지금은 플레이 측면이나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했어요. 또한 아내도 곁에 있으니 든든한 힘이 될 겁니다. 며칠 전 동국이가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 '영국이냐?' 라고 물어보니 '형, 촌스럽게 영국이라뇨? 유나이티드 킹덤이예요' 라면서 농담을 던지더라구요.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이죠. 몸도 많이 올라왔다고 했어요. 남산에서 체력 훈련한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구요. 분명히 성공할 겁니다".
▲ K리그 많은 발전이 있었다
김기동은 K리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데뷔했던 91년도에 비해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 특히 경기장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늘었다고 밝혔다.
"경기 템포가 정말로 빨라졌습니다. 90년대 초중반에 비해 전술적으로 공수 전환 속도를 강조하고 있지요. 그 덕분에 선수들의 체력도 상당히 좋아졌구요. 물론 TV에서 보여주는 유럽 정상급 클럽의 경기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직접 보시면 빠르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김기동은 선수들의 기량과 경기의 질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쉬운 점도 밝혔다.
"여전히 경기장에서 쓰러져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런 것만 없어져도 훨씬 좋은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선배들이 많이 강조하고 있고 선수들도 자정 노력을 하면서 많이 좋아지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팬들의 기대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거기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각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올 시즌 각오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우승을 목표로 잡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시즌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감독이나 선수들 모두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다른 클럽들처럼 유명한 선수들을 영입하지도 못했죠. 하지만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드리겠씁니다. 또한 우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팬들에게 우승컵을 안겨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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