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전사'의 아들 한정수, '마르크스, 체 게바라 그리고'
OSEN 기자
발행 2007.06.23 07: 08

칼 마르크스, 체 게바라 그리고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 연기자가 이런 이름을 줄줄 말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파도처럼 젊은 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학창시절의 혜택을 누린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매료될 만한 사상가들이다.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심취해 있던 젊은이가 ‘메소드 연기론’(극중 배역에 몰입해 배역과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을 주창한 스타니슬라프스키까지 가게 된 과정이다.
‘늦깎이’ 연기자 한정수(33)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한정수의 이름은 아직은 낯설다. 한정수는 최근까지 4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튜브’에서 테러리스트 강기택(박상민 분)의 오른팔 봉호 역을 맡으며 연기자로 데뷔했고 ‘얼굴 없는 미녀’에서는 김혜수와 김태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 과거의 남자 장서 역을 맡았다. 이어 김래원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에서는 엉뚱한 조폭 ‘창무’ 역을 열연했다.
세 편의 영화 뒤에 첫 드라마를 했는데 엄태웅 주지훈 신민아가 주연한 KBS 2TV ‘마왕’이었다. ‘마왕’에서는 주인공 오수(엄태웅 분)의 친구이자 사채업자인 대식 역을 연기했다. 죽음을 암시하는 타로카드를 받고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인물이었다.
네 편의 작품에서 한정수는 매번 죽음을 맞아 중도에 빠졌지만 하나같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내달 9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KBS 2TV 8부작 미니시리즈 ‘한성별곡’에서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 같다. 조선 후기 정조 독살설을 모티브로 궁궐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권력다툼과 음모를 그려나갈 ‘한성별곡’에서 한정수는 서얼 출신의 한성부 형방 주부 서주필 역을 맡았다. 드라마 초기 스토리 전개를 주도하다가 4회에 죽음을 맞지만 서주필이 파헤쳐 놓은 의문들은 이후 박상규(진이한 분)가 이어받을 중요한 단서들이 된다. 형방 주부는 오늘날 사복 경찰쯤 된다.
‘54년 스위스 월드컵 전사’ 고 한창화의 아들
한정수의 연기자 이력은 이처럼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한정수의 인생 이력은 드라마나 영화의 그것만큼이나 극적이다. 한정수가 “다방면에서 쌓은 여러 경험들과 다각도에서 느낀 생각들이 연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방황 아닌 방황을 하게 된 시간들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세월들이다.
일단은 가족사부터가 눈길을 끈다. 한정수의 아버지는 작년 4월 향년 84세로 타계한 원로 축구인 한창화다. 고인은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흔에서 채 아물지 못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참가한 월드컵이기도 했던 스위스 월드컵에서 고인은 조별리그 2차전인 터키전(0-7패)에서 미드필드로 뛰었다. 선수를 은퇴한 뒤에는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한국대표팀 감독도 역임했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한정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재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 선수를 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축구를 즐겼지만 한정수는 “선배들에게 매 맞는 게 싫어서” 축구를 그만뒀다. 갑자기 인생항로가 바뀐 한정수는 방향타를 잃고 방황하다가 한영고를 졸업할 무렵 록음악에 심취한다. 록밴드를 결성해 한 동안 음악인으로 살아가던 한정수는 배움에의 갈증을 느껴 1993년 경원전문대 시각디자인과, 1994년 경원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수학하게 된다.
그러나 운동선수도, 음악인도, 미술학도도, 경제학도도 한정수가 갈 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학로 극단에 들어가 연기 맛을 보더니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해야겠다며 1999년 서울예전에 들어가 마침내 졸업까지 했다. 딴은 그 모든 인생을 다 합쳐놓은 것이 연기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 체 게바라, 스타니슬라프스키
경원대 경제학과 재학시절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은 한정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고 기억했다. 록 음악에 심취하던 그 기운 그대로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는 눈이 만들어졌다. 학문적 욕구는 닥치는 대로 밀려왔다. 미학에 빠져드는가 하면 프로이드에 젖어들기도 하고 언어기호학을 파고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한정수를 자꾸만 연기자의 길로 이끌었고 결국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기론을 공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학문으로서의 연기에 입문한 한정수는 “자본론을 읽을 때처럼 띵한 충격이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남다른 이력이 있는 탓에 연기관도 유별나다. ‘한성별곡’을 연출한 곽정환 감독과의 2년 전 대화를 들려줬다. 곽 감독이 “왜 연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당시 한정수가 한 대답, “나는 나를 연기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계의 게릴라요 테러리스트다. 대중 문화계의 체 게바라가 되고 싶어 연기를 한다”였다.
이런 대답을 들은 감독이 배우로 기용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남자 경찰과 여자 공무원이 우연히 살인 사건에 얽히게 되고 둘이 단서를 찾아 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4부작 초미니시리즈의 주연배우로 한정수를 점 찍게 된다. 그러나 이 기획은 당시에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고 2년 뒤 ‘한성별곡’을 통해 약속이 지켜지게 됐다.
몇 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 한정수의 연기관도 많이 현실적이 됐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난해,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CM송으로 유명한 모 카드광고의 모델로 상업성의 한가운데에도 섰던 한정수다. 여느 배우들처럼 대중적인 드라마에 출연해 인기를 얻고 싶어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마음은 뚜렷하다. “대중에 끌려가는 배우는 되지 않겠다. 적어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 연기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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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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