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지난 12일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은 한화에 여러 모로 뜻 깊은 경기였다. 삼성에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패배를 설욕하는 데 성공했고 프로야구 사상 첫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사상 최고의 좌완 트로이카’로 기억될 송진우(41)-류현진(20)-구대성(39)이 차례로 등판해 승리-홀드-세이브를 따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페넌트레이스에서 3차례나 있었던 승리공식이었지만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경기에서 사상 최고의 좌완 트로이카가 승리를 합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화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 최고령 투수의 최고령 승리 송진우는 최고령 투수다. 신체 나이 노쇠화와 상대 분석이라는 지뢰밭을 뚫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지금까지 현역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개막 전부터 잦은 부상으로 기대보다 저조한 활약을 했지만, 막판부터 중간계투로 팀에 힘을 보탰다. 페넌트레이스 중반까지는 불펜에 좌완 투수가 부족한 팀 사정상 자칫 굴욕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원포인트 릴리프 역할까지 맡았지만, 컨디션을 회복한 막판에는 이닝 수를 차츰 늘려가며 포스트시즌에서 롱릴리프로 출격할 대비를 끝마쳤다. 기대대로 송진우는 3차전에서 2-1로 쫓긴 3사 2사 1·2루 위기 상황에서 선발투수 세드릭 바워스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했다. 첫 타자 진갑용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김한수를 3루 땅볼로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위기를 잘 넘겼다. 이후 4회·5회에는 연속해 삼자범퇴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았다. 이날 경기 최고구속이 137km에 그치는 등 대다수 공이 130km대를 맴돌 정도로 빠르거나 압도적인 맛은 없었지만, 특유의 코너워크와 칼날 같은 제구력에 체인지업이라는 결정구까지 효과 적절히 활용하며 위력을 떨쳤다. 2⅔이닝을 1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된 송진우는 41세7개월6일로 포스트시즌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까지 늘렸다. 이날 한화 선발 세드릭과 함께 송진우에 대한 대비까지 늦추지 않은 삼성은 우타자들을 집중배치하며 승부수를 띄웠으나 결과적으로 두 번째 벽이었던 송진우에게서부터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송진우의 노련미 가득한 피칭은 적장인 삼성 선동렬 감독조차 “역시 베테랑다운 캐리어가 느껴졌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 20살 투수의 투혼의 홀드 송진우의 바통을 이어받은 투수는 그보다 무려 21살이나 어린 20살 투수 류현진이었다. 이미 1차전에서 6⅔이닝 동안 128구를 던지며 8피안타 2볼넷 8탈삼진으로 선발승을 거둔 류현진은 김인식 감독의 공언대로 3차전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한화 불펜에는 안영명이라는 승리카드가 있었지만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김 감독의 선택은 류현진이었다. 빙그레 시절부터 20여 년 가까이 팀을 이끌어온 송진우가 향후 20여 년을 책임질 류현진에게 에이스 자리를 승계하듯 주자를 남긴 채 마운드와 공을 넘겼다. 3-1로 근소하게 앞서던 6회초 1사 1·2루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첫 타자였던 대타 박정환을 3구 삼진으로 처리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후속 대타 강봉규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송진우의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등 9회초 2사까지 3⅓이닝을 던져 솔로 홈런 하나 포함 4안타 2볼넷을 허용할 정도로 투구 내용이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차전에서 128구를 던지고 불과 이틀을 쉬고 등판한 것을 감안하면 가히 투혼의 피칭이라 할 만했다. 1승1홀드 방어율 0.90을 기록한 류현진은 당당히 준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류현진의 가장 돋보이는 강점은 어린 투수답지 않은 위기 관리 능력이다.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류현진은 12피안타를 맞고 4볼넷을 헌납할 정도로 위기를 숱하게 자초했다. 하지만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득점권 위기가 무려 15차례나 있었지만, 안타를 맞은 건 2차례에 불과했다. 득점권 피안타율이 겨우 1할3푼3리밖에 되지 않았으며 13개의 득점권 아웃카운트 중 9개가 탈삼진이었다. 류현진 칭찬에 인색했던 선동렬 감독조차 3차전 패배 후 “어린 투수지만 위기 관리 능력이 정말 좋다. 구위도 좋지만 제구력은 더 좋아 보인다”며 이례적으로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 최고 마무리의 관록의 세이브 구대성은 마무리 투수계의 대부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기억될 만하다. 지난 1993년 1차 지명을 받고 빙그레에 입단한 구대성은 2년차 때부터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1994년 12세이브를 올리며 마무리 투수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인 구대성은 1995년 18세이브, 1996년 24세이브, 1997년 25세이브, 1998년 24세이브, 1999년 26세이브, 2000년 21세이브, 2006년 37세이브 그리고 올 시즌 26세이브를 쌓았다. 통산 213세이브로 은퇴한 김용수(227세이브)에 이어 이 부문 역대 2위에 올라있다. 2001년부터 4년간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고 2005년 한 해 동안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활약하는 등 5년간의 공백기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 선발로도 활약한 구대성은 국내에서는 ‘슈퍼 마무리’로 명성을 떨쳤다. 전성기에는 상황에 따라 6회부터 등판하는 등 2이닝을 기본으로 던진 고무팔로 유명했다. 평균 시속 140km대 후반의 위력적인 직구와 슬라이더를 무기로 타자들을 돌려세운 구대성은 마무리 투수로서 배짱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꾸준함에 있어서는 당분간 구대성이 마무리계의 최고로 자리할 것이 확실하다. 구대성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양 팀 핵심투수들 중 거의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 3차전에서 9회초 2사 후 마운드에 올라 박진만을 3구만에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고 세이브를 따냈다. 왼쪽 무릎 상태가 여전히 호전되지 않아 구위가 예년만 못하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구대성은 평균 145km 내외의 빠른 공을 던졌지만, 올해는 140km를 넘기기도 쉽지 않다. 김인식 감독도 “구대성은 올 시즌 내내 부상으로 억지로 던지며 버텼다. 그래도 관록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최고 마무리의 관록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누가 뭐래도 아직 구대성 없는 한화의 불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송진우-류현진-구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