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2경기 19실점.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을 준비하고 있는 대표팀 투수진의 2차례 평가전 성적이다. “평가전을 통해 경기 감각을 올리는 것이지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는다”는 선동렬 수석코치의 말처럼 평가전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대표팀을 이끌 만한 확실한 에이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특히 대만전 선발로 예상되는 류제국의 2차 평가전 부진은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역대 국제대회에서도 에이스의 존재와 활약에 따라 성적도 크게 엇갈렸다. 어딜 가나 에이스가 중요한 것이다. ▲ 에이스의 힘 한국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서 투타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마운드에는 전성기를 앞둔 LA 다저스의 박찬호가 버티고 있었다. 대만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5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선발승을 챙기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는 데 앞장선 박찬호는 13-1 콜드게임승을 거둔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7이닝 1실점 완투승으로 금메달을 직접 확정지었다. 당시 3경기에서 박찬호는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13⅔이닝을 소화하며 2선발승에 방어율 1.32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1할6푼7리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첫 경기와 결승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경기를 잡았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사상 최강의 국제용 투수’ 구대성이 에이스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가장 많은 19⅓이닝을 던진 구대성은 승수는 1승밖에 되지 않았지만 방어율이 1.86에 불과했으며 피안타율도 1할6푼9리밖에 되지 않았다. 탈삼진은 이닝수보다 많은 23개였다. 1승도 가장 중요한 3·4위전서 일본을 상대로 따낸 천금같은 완투승이었다. 9이닝 동안 무려 155구를 뿌리며 5피안타 11탈삼진 1실점으로 3-1 승리를 주도, 한국의 동메달에 일등공신이 됐다. 구대성은 4강 진출의 고비였던 일본과의 예선에서도 선발 정민태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구원등판해 6이닝 3실점으로 역투하며 승리의 디딤돌을 놓은 터였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서재응이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서재응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도 박찬호와 함께 사실상의 원투펀치로 활약한 전력이 있었다. 당시 3경기에서 2승 방어율 1.23을 기록했다. WBC 예선에서 박찬호가 마무리투수로 전환한 가운데 서재응은 실질적인 에이스로 위상이 격상됐다. 기대대로 서재응은 대만-멕시코-일본 등 3경기에 선발로 등판, 최다인 14이닝을 투구, 2선발승 방어율 0.64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이 1할4푼6리, 9이닝당 볼넷이 1.93개밖에 되지 않는 완벽한 피칭이었다. 서재응의 국제대회 성적은 6경기 4승 방어율 0.84로 거의 언터처블에 가까운 수준이다. ▲ 에이스의 부재 2003년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겸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예선은 한국야구에 ‘삿포로의 치욕’으로 기억된다. 당시 대표팀은 대만과 일본에 연이어 패하며 예선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에이스의 부재였다. 당시 대표팀이 자신있게 내세운 에이스는 선발 21연승과 한국시리즈 MVP에 빛나는 정민태였다. 대만과의 첫 경기에 선발등판한 정민태는 4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으로 선방했으나 조기강판됐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얻은 허벅지 부상이 도진 것이 그 이유였다. 일본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도 선발등판한 ‘탈삼진왕’ 이승호(LG)는 4⅓이닝 1실점으로 선전했지만 4피안타 2볼넷으로 다소 고전했다. 치욕을 넘어 참사로 명명되는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가장 크게 두드러진 문제가 바로 에이스의 부재였다. 특히 결승전과 다름없는 대만과의 예선 첫 경기에서 믿었던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이 4이닝 동안 홈런만 2방을 맞는 등 5피안타 3실점으로 기대에 못 미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결국 2-4로 분패하며 금메달이 일찌감치 좌절됐다. 손민한과 함께 원투펀치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됐던 ‘괴물’ 류현진마저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을 상대로 2⅓이닝 6피안타 4볼넷 5실점으로 난타를 당하며 충격적인 7-10, 끝내기 역전패의 단초를 제공했다. 원투펀치의 붕괴와 함께 한국야구의 자존심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 2007 대표팀 에이스는 현재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는 모두 12명. 이 중 구대성이 무릎 수술을 이유로 대표팀에서 자진 탈락했다. 상비군 장원삼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아직 보직이 확정된 투수는 없다. 류현진이 일본전 선발투수로 잠정 확정됐지만, 이마저도 아직 확실치는 않다. 현재로서는 예선 첫 경기인 대만전에 나설 선발도 불투명하다. 대표팀 멤버 중 선발 요원은 박찬호를 비롯해 류제국과 류현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어차피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선발은 3명 정도로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관심사는 예선 첫 경기인 대만전에 과연 누가 선발로 등판할지 여부다. 박찬호는 1차 평가전에서 세 번째 투수로 구원등판,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시속 145km였다. 2차 평가전에 선발등판한 류제국은 3이닝 동안 홈런 하나 포함해 5피안타 3볼넷 4실점으로 부진했다. 류현진은 국내 평가전에서는 등판하지 않은 채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다.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볼 때에는 에이스로 낙관할 수 있는 투수는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신 대표팀은 불펜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 오승환을 비롯해 한기주·송진우·권혁·정대현 등이 불펜 요원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상태다. 1999년 서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은 구대성·문동환·임창용·진필중 등의 효과적인 이어던지기로 팀 방어율 1.47과 함께 5전 전승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도 선발 요원들이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하거나 다소 못 미더울 경우에는 결국 불펜의 효율적인 활용으로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히 투수코치를 겸하고 있는 선동렬 수석코치가 투수 교체의 달인이라는 점은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전서 우승을 확정지은 박찬호가 포수 조인성과 포옹하는 모습-2006 WBC 대회 8강리그서 멕시코를 꺾은 뒤 구대성과 서재응이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