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심각하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부상이라는 악재가 쇠사슬처럼 맞물려 이어지며 점점 궁지로 몰려가고 있다. 프로농구 사상 최다인 6시즌 연속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빛나는 대구 오리온스 얘기다. 오리온스는 최근 9경기에서 고작 1승을 거두는 데 그치는 등 올 시즌 11경기에서 3승8패를 마크하며 10개 구단 중 9위로 처졌다. 특히 홈경기 7연패 수렁에 빠지며 대구팬들을 철저히 실망시키고 있다. 이충희 감독의 부임으로 새로운 팀컬러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도 산산조각 나고 있다. ▲ 총체적 난국 오리온스는 빠른 스피드와 폭발적인 외곽슛을 무기로 한 대표적인 공격농구의 팀이었다. 지난 4시즌 연속 평균 득점 1위에 오르는 등 김승현이 입단한 2001-02시즌부터 평균 득점에서는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러나 올 시즌 오리온스는 평균 80.5득점으로 전체 5위에 그치고 있다. 야투성공률(47.1%)과 3점슛 성공률(34.3%) 모두 전체 8위에 그치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속공도 3.9개로 5위에 불과하며 오히려 속공허용이 5.5개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다. 3점슛도 경기당 평균 6.27개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리그 최하위다. 공격 모든 부문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최대 원인은 역시 허리 부상으로 장기 결장 중인 포인트가드 김승현의 부재로 풀이된다. 특유의 코트 장악력으로 경기 전체를 이끌어나갈 조타수를 잃으면서 팀 전체가 방향타를 찾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물론 지난 시즌에도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차출과 부상 등으로 결장한 18경기에서 9승9패를 거두며 5할 승률을 올렸지만, 피트 마이클이라는 역대 최고의 득점기계가 있었던 덕이 컸다. 그러나 올 시즌 오리온스는 철저히 김승현을 중심으로 짜여진 팀이기에 그 공백이 훤하게 나타나고 있다. 비단 공격뿐만 아니다. 수비에서도 오리온스는 예년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평균 85.6실점으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실점을 헌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대팀 2점슛 성공률이 무려 61.3%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비 구멍을 드러내고 있다. 10개 구단 중 상대팀 2점슛 성공률이 60%를 넘는 팀은 오리온스가 유일하다. 정재호·김영수·김병철의 백코트 라인은 물론 리온 트리밍햄이 지키는 골밑까지 수비에서 상대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간 공격 실패가 역습 허용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 무방비 벤치 비난의 화살은 7년 만에 프로무대로 복귀한 이충희 감독에게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충희 감독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즌 전부터 트라이아웃-드래프트에서 뽑은 마크 샌포드와 코리 벤자민이 차례로 부상으로 짐을 쌌다. 시즌 개막 후에는 김승현마저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1라운드 말미에는 대체 외국인선수로 영입한 백인센터 로버트 브래넌마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전열에서 이탈했다. 팀을 이끌어나갈 핵심선수들만 골라서 픽픽 쓰러지니 이충희 감독으로서도 답답한 마음이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위기를 대처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다. 이충희 감독은 최근 9경기 동안 이렇다 할 대책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김병철·트리밍햄 등 몇몇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만 커지면서 후반만 가면 흐름을 놓치는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무기력한 경기를 반복했다. 공격에서는 볼이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한 쪽에서만 정체되다 단발성 짙은 슛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으며 수비시 백코트에서마저 선수들이 마크맨을 놓치는 우를 수 차례 범했다. 팬들에게 가장 큰 재미를 주는 농구를 한 오리온스였지만, 선수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답답하고 무기력한 플레이가 결국에는 팬들로 하여금 짜증을 나게 만들고 있다. 과거 창원 LG 시절부터 이충희 감독은 몇몇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농구를 펼쳤다. LG 시절에는 빈약한 선수구성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오리온스는 다르다. 가드진이 다소 약하지만 포워드나 빅맨들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이 감독의 선수 활용폭은 극히 좁다. 개막 2연승을 달릴 때에는 초반 승수를 쌓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지만 계속된 패배로 명분을 잃었다. 오리온스는 경기당 평균 선수교체도 불과 11.7회로 최하위다. 물론 선수교체가 많다고 전략이 다양한 것은 아니지만, 팀이 연패를 거듭하는 가운데도 선수 교체가 극히 적은 데다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벤치가 무방비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분위기 쇄신 시급 지난 16일 서울 SK와의 홈경기에서도 오리온스는 68-86으로 완패했다. 3~4쿼터 내내 SK의 지역방어를 깨지 못하는 모습은 오리온스가 처해있는 위기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김병철과 트리밍햄이 시즌 초반부터 분전하고 있지만,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재호와 오용준도 외곽슛이나 개인 공격력은 좋지만, 여전히 경기 전체를 이끌어나갈 리딩력이나 패스워크에서 문제점을 노출하며 팀 동료들과 좀처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각자 개성을 살려주며 팀에 상생 효과를 일으키는 김승현의 거침없는 경기 조율과 코트 장악력이 더없이 그리운 시점이다. 하지만 현재 모습만 놓고 볼 때에는 김승현이 부상에서 돌아온다 하더라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팀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고 반등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팀 분위기에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며 한국농구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이동준이 있지만, 아직은 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는 않다. 오리온스로서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단순하지만 고전적으로 선수단 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것밖에는 정답이 없다. 설령 경기를 패하더라도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현재의 오리온스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지난 3일 오리온스-KTF의 대구 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