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롯데 이대호(25)가 대표팀의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에서 지난 20일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호준이 형이 우리 팀에 와야 한다.” 원 소속구단과의 우선협상 마감시한까지 SK와의 계약이 불발된 FA 이호준을 롯데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 달 넘게 감독 자리가 공석이지만 롯데는 지난 19일 밤 이호준과 접촉했다. 협상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으나 이대호의 마음은 굴뚝같다. “(이)호준이 형을 꼭 데려와야 한다고 써달라”고 기자들에게 강조할 정도였다.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모두가 짐작 가능한 이대호의 마음이다. ▲ 집중 견제, 얼마나 왜 받았나 이대호는 감히 2007년 최고 타자라 할 수 있다. 올 시즌 121경기에서 타율 3할3푼5리·29홈런·87타점을 기록했다. 타격 3위, 홈런·타점은 공동 2위였다. 장타율(0.600) 1위에다 출루율 3위(0.453)에 올랐고 둘을 합한 OPS(1.053)는 당당히 전체 1위였다. 득점도 79점으로 전체 3위. 득점권 타율도 무려 3할6푼4리였다. 도저히 흠잡을 데가 없는 활약상이다. 그러나 많은 팬들은 놀라움보다도 아쉬움이 먼저 앞선다. 이대호가 이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대호의 앞과 뒤, 특히 뒤를 받쳐줄 타자가 든든했다면 집중견제의 덫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대호는 올 시즌 고의4구가 무려 25개였다. 2위 양준혁(삼성·15개)과도 무려 10개 차이였고, KIA(7개)·한화(17개)·두산(21개)·SK(22개)·LG(24개) 등 한 팀의 전체 고의4구보다 더 많았다. 이대호의 올 시즌 고의4구 개수는 동기생 김태균(한화)의 통산 고의4구(23개)보다도 2개나 더 많다. 역대를 통틀어서도 5번째로 많은 고의4구였다. 심지어 득점권에서마저 이대호는 볼넷을 42개나 얻었다. 그만큼 지독하게 상대로부터 견제받고 또 견제받았다. 기다려서 걸어나가는 것보다는 치고 달려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이대호에게는 굉장한 고역이었다. 그것도 한창 달아 올라있을 스물다섯의 나이에 당한 고충이었다. 이대호가 집중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뒷타자들이 뒷받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이대호의 뒷타자는 무려 14명이었다. 119경기에서 4번 타자로 선발출장한 이대호의 뒷타자들은 대부분 5번 타자들이었다. 그러나 5번 타자가 자주 바뀌었다는 것은 곧 5번 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70타석 이상으로 범위를 좁혀도 호세, 에두아르도 리오스, 로베르토 페레즈 그리고 강민호까지 4명이나 된다. 호세는 똑딱이 되어버렸고 이는 리오스도 마찬가지였다. 강민호는 5번 타순에서 장타율이 3할7푼1리에 불과했다. 그나마 페레즈가 5번 타순에서 타율 3할1푼6리·5홈런·33타점으로 분투했지만 이미 버스가 떠난 뒤였다. ▲ 군중 속 고독, 심리적 부담감 시즌 초중반 사직구장은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를 띈다. 관중석은 연일 인파로 넘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대호는 군중 속에서 고독함을 느껴야 했다. 열성적인 팬들의 성원과 원성이 연일 뒤바뀌는 가운데 팀 성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 야수로는 팀 내에서 중참이 되는 4번 타자 이대호로서는 큰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야수조를 이끌어나갈 카리스마 있는 고참이 부족하다보니 전체적인 팀 단결력이 떨어졌다. ‘주장’ 손민한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투수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대호는 시즌 중 ‘내 탓이오’를 수없이 외쳐야했다. 4번 타자로서 책임감이 그만큼 컸다. 어깨와 허리·무릎 등 잔부상을 달고 다녔지만 단 한 명의 팬이 오시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 2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덧 7년차로서 야수조에서는 중참이 되는 만큼 후배들을 보호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선수들을 향한 욕설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대호는 “나는 괜찮다. 하지만 후배들이 욕설이 섞인 글을 보면 의기소침해진다”며 방파제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중 속 심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팀 분위기를 따지는 중참 노릇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동반자가 이대호에게는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특히 장타자가 롯데에는 너무 부족했다. 이대호는 롯데 팀 홈런의 38.2%를 차지했다. 올 시즌 롯데의 팀 홈런은 76개로 8개 구단 중 7위에 불과했다. 팀 장타율도 4위(0.377)에 만족해야 했다. 팀 타율 2위(0.270)에도 불구하고, 팀 득점 4위(533점)에 그친 데에는 장타의 부재가 컸다. 이대호 입장에서는 찬스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더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타격감을 조절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대호가 더욱 대단한 이유다. ▲ 이대호의 동반자를 찾아라 롯데가 가을잔치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대호의 동반자가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팀 타선을 함께 이끌어나가며 부담을 나눌 수 있는 파괴력 있는 타자가 절실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안은 외국인 타자다. 그러나 최근 몇 년의 사례를 봤듯이 수준급 외국인 타자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 않아졌다. 일본의 자매구단인 롯데 마린스와 외국인선수 정보를 공유해 우수한 외국인선수를 뽑는다는 것이 롯데의 계획이지만 계획은 실천될 때 빛을 보는 법이다. 당초 계획과 무관하게 한 달 넘게 끌고 있는 감독선임 과정을 볼 때 외국인 타자는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또 하나 대안은 즉시전력감, 즉 FA의 영입이다. 현재 FA 시장에 타자는 김동주·이호준·이재주가 나와있다. ‘최대어’ 김동주가 일본 아니면 두산으로 진로를 정한 가운데 실질적으로 롯데에 힘을 보태줄 타자는 이호준밖에 없는 실정이다. 롯데는 가장 먼저 이호준과 접촉해 협상을 할 정도로 영입의지가 강하다. 이에 이대호도 이례적으로 이호준 영입에 쌍수를 들고 있다. 같은 오른손 타자로 포지션이 겹친다는 걸림돌이 있지만, 이대호가 이호준의 영입을 희망한 것은 당장 힘을 보태줄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 이호준밖에 없는 시장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미묘하다. 몸값 문제가 가장 크지만, 아직 감독조차 선임되지 않은 롯데의 상황은 이호준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는 모습이다. 이호준 역시 “같은 조건이면 SK에 남고 싶다”며 SK에 미련을 두고 있다. 이호준이 좋은 타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포지션 중복 등 전체적인 실효성과 치솟은 몸값을 따질 때에는 롯데도 고민이 커진다. 그러나 이호준이 아니면 또 다시 확신할 수 없는 외국인 타자와 유망주 육성에만 기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대호로서는 답답함이 오래갈지도 모른다. 동반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혼자만 잘해서는 결코 뜻을 이룰 수 없는 냉혹한 현실. 확실한 타선의 동반자가 없는 이대호의 고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