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제도 시행 9년째인 프로야구 FA 제도는 매년 소리없이 먼지처럼 쌓인 창틀의 찌든 때처럼 되어버렸다. 지난 1999년 선수들에게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 구단들에게는 전력 강화 루트의 다양화를 통해 프로야구판을 키우고 리그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도입된 FA 제도가 이제는 몇몇 스타선수들만 주판알을 튕기는 악의 제도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숱한 희생양을 배출했다. 이제는 그들의 희생으로 드러난 FA 제도의 맹점을 바로 잡을 시점이다.
▲ 송유석·김정수
FA 제도 도입의 궁극적인 취지는 선수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것도 까다로운 FA 자격 취득 요건을 채운 기량과 성실함이 꾸준히 뒷받침된 선수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특혜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FA 제도는 스타선수들만을 위한 잔치가 되고 말았다. 무조건 실력이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프로무대라지만 모두가 최고의 기량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국식 기형적 FA 제도는 그렇게 시행되지 않았다. 처음 제도를 도입해 시행할 때부터 FA 제도는 준척급 선수들에게 선택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자유계약제도가 아니라 모순 투성이 제도였다.
그 첫 희생양이 바로 송유석과 김정수였다. 처음으로 FA 제도가 시행된 1999년 말. 당시에는 10시즌 이상 1군에서 뛴 선수들만이 FA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FA를 신청한 선수는 불과 5명. 장종훈·김경기·이명수 등은 FA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야구 FA 계약 1호 송진우가 한화와 3년간 7억 원에 재계약하고, 이강철과 김동수는 나란히 3년간 8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모두가 FA 제도는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라며 부러운 시선을 보낼 때 유달리 추운 겨울을 보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베테랑 중간계투 요원 송유석과 김정수였다.
송유석과 김정수는 FA 자격을 신청하면 안될 정도로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다. ‘마당쇠’ 송유석은 1999년 LG에서 52경기에서 82이닝을 던지며 5승3패5세이브 방어율 4.72를 기록했다. 당시 나이도 33살이었다. 김정수 역시 1999년 해태에서 48경기에 등판해 35⅓이닝을 던져 4승1패1세이브 방어율 4.58을 기록했다. 나이가 37살로 많았지만, 좌타자 전문 베테랑 스페셜리스트라는 프리미엄이 있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어느 구단으로부터 입질을 받지 못한 채 해를 넘겨 FA 계약 마감일인 2000년 1월31일에 울며겨자 먹기로 원소속구단과 계약했다. 그리고 곧장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하며 각각 한화와 SK로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다.
송유석과 김정수의 처참한 FA 선언 결과는 FA 제도 도입 첫 해라는 특수한 시점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선수들의 몸값 상승을 우려한 몇몇 구단들이 담합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송유석과 김정수를 원하는 팀들이 있었다 치더라도 그들을 영입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에도 FA를 영입한 구단은 원 소속구단에 영입 선수 새 연봉의 300% 또는 200%와 보호선수(20인)를 제외한 1명을 내줘야 하는 천편일률적 보상제도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막대한 출혈을 감수한 채 송유석과 김정수 정도의 성적과 나이의 선수를 데려갈 구단이 있을 리 만무했다.
처음부터 FA 제도는 몇몇 스타 선수들과 부자 구단들을 위한 돈잔치였으며 10년 가까이 흐른 현 시점에도 오히려 보상제도가 완화되기는 커녕 전년도 연봉 450% 또는 300%와 보호선수 18인을 제외한 보상선수 1명으로 더욱 강화됐다. 이는 곧 만성적인 적자구조의 구단들 스스로가 발목을 짓누르는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준척급 선수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며 원 소속구단에 백기투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적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구단에서 고과에 관계없이 예비 FA 선수의 연봉을 높여 돈을 낭비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며, 준척급이 부족한 바람에 대어급만 몸값이 치솟는 것이 바로 한국식 기형적 FA 제도가 낳은 석연치 않은 풍경들이다.
▲ 박정태·유지현
FA 제도 도입 후 몇몇 스타선수들이 돈방석에 앉으며 스포츠 재벌이 되자 프로야구에는 꿈과 드라마가 사라지는 대신 돈과 경제원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혹자들은 프로야구가 땀과 열정이 사라졌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나 FA 제도 도입으로 적어도 선수들의 프로의식은 더욱 강화됐다. FA 대박이라는 뚜렷한 목표와 동기부여가 생김으로써 선수들에게 훈련은 금이요, 게으름은 죄악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FA 제도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성실하고 악바리 같은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FA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무려 9시즌을 소화해야 한다. 처음 제도가 시행된 첫 2년간은 무려 10시즌이었다. 선수협의회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줄어든 것이 고작 1년이다. 메이저리그가 6시즌만 뛰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물론 우리네 사정에서 메이저리그는 결코 절대선이 될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와 비교할 때 선수층이 턱없이 얇고, 저변도 크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병역의무까지 져야 하는 한국에서 선수들에게 9년의 시간은 일년을 하루 같이 보내더라도 열흘 가까이 걸려 너무 길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는 곧 고졸선수들의 프로 직행이라는 문화를 부르는 결정적인 촉매제로 작용했다. 물론 실력 좋은 유망주들의 프로 직행은 문제없지만, 이 바람에 대학야구가 죽어버리거나 아직 실력을 가다듬어야 할 고졸선수들이 프로에서 일찌감치 방출되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리기 일쑤라는 게 문제다. FA 자격 취득까지 걸리는 9년이라는 시간적 압박이 부른 재앙이다. 게다가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 국제대회에서 병역면제 혜택을 얻는 선수들은 대개 스타선수들이다. 조금이라도 더 젊어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프로선수들에게 9년은 너무도 길다.
대표적인 희생양이 ‘탱크’ 박정태와 ‘꾀돌이’ 유지현이다. 두 선수는 각각 롯데와 LG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입단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한 팀에서 활약해 뼈를 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정태는 저돌적인 승부 근성, 유지현은 재치 넘치는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나란히 대졸 출신으로 각각 34살·33살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FA가 됐다면 조금 더 나은 대우에 ‘FA 중박’ 정도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태는 2년간 최대 6억 원, 유지현은 1년간 최대 4억 3000만 원이라는 굴욕적인 계약을 맺고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전성기가 지난 상태에서 FA 선언은 처참한 결과를 부를 뿐이었다.
박정태와 유지현의 계약기간 기록만 놓고 보면 구단들의 선택이 합리적이었을 모르지만 FA 계약 마감일까지 허비한 시간과 마음의 상처가 그들의 추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비단 찬밥 대우를 받은 박정태와 유지현뿐만 아니라 FA 대박을 터뜨리며 부를 얻었지만 먹튀가 되어버리며 명예를 잃어버린 다수의 30대 선수들과 거액을 들여 모셔온 대형 FA로 피를 본 구단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재앙이다. 물론 자격 취득 기간을 크게 줄이면 자칫 선수들의 몸값이 한꺼번에 치솟는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준척급 선수들의 이적을 활발해진다면 몸값 거품을 없앨 수 있다. 보상제도부터 고쳐야 FA 취득기간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 양준혁
‘살아있는 전설’ 양준혁은 대표적인 FA 제도의 수혜자이자 모범생이다. 희생양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지난 2001년 말 FA가 된 양준혁은 삼성과 4년간 최대 27억 2000만 원에 계약하며 FA 대박을 터뜨렸다. 계약기간 4년간 타율 2할9푼8리·88홈런·295타점으로 제 몫을 해냈다. 그러나 문제는 계약기간 마지막 해였던 2005년이었다. 그해 양준혁은 데뷔 후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며 심각한 위기에 몰린 터였다. 결국 양준혁은 2년간 최대 15억 원에 삼성과 FA 재계약을 체결했다.
2년 계약을 한 양준혁은 2년이 지난 만큼 올해 FA 시장에 나와야 마땅하다. 만약 양준혁이 FA 시장에 나왔다면 판도는 또 어떻게 달려졌을지 모를 일이다. 비록 양준혁이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는 노장이지만, 이미 그는 야구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입증했다. 그런 양준혁이 FA 시장에 나왔다면 삼성과 재계약하든, 설령 다른 팀으로 이적하든 최대어 FA 대우를 받았을 것임에는 자명한 일이다. 올 시즌 성적도 타격 전 부문에서 10위권에 안에 들었을 정도로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양준혁은 올해 FA가 아니다. 무조건 4년을 더 뛰어야 FA 자격 재취득이 가능한 기형적 FA 제도 때문이다.
양준혁이 FA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2시즌을 더 뛰어야 한다. ‘FA로이드’를 복용하고 폭주하는 여타 선수들과 달리 FA 자격 재취득을 앞둔 2005년 한 해 부진한 것이 결과적으로 양준혁에게는 적잖은 아쉬움으로 남게 된 것이다.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양준혁은 나머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구단과 연봉협상을 벌여야 한다. 과거 송진우(한화)나 이숭용(현대)과 정민철(한화)처럼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FA가 되기 이전에 FA 자격을 포기하고 다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FA 자격만큼 좋은 것도 없다.
그러나 1군 등록일수 145일 이상으로 4시즌을 다시 더 소화해야 가능한 기형적인 FA 자격 재취득 제도는 대어급 FA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4년 장기계약을 고집하고, 구단들이 당장의 성적에 사로잡힌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계약기간을 4년으로 해 거금의 총액을 퍼붓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FA 먹튀 선수들이 4년 장기계약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FA 재취득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기형적 FA 자격 재취득 조건이 보이지 않게 FA 몸값 거품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양준혁과 같은 30대 중후반 베테랑들은 사실상 FA 자격을 재취득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2년 계약을 했으면 2년 후, 3년 계약을 했으면 3년 후 FA가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한국식 기형적 FA 제도는 오히려 뒤로 가고 있다. 선수는 선수대로, 구단은 구단대로 서로 눈치를 보거나 부담만 커진다. 당초 제도 도입 목적인 자유로운 선수 이적과 구단의 전력 강화 다양화에도 위배되는 일이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자격 재취득 요건은 선수들의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구단들에게도 당장에는 선수를 묶어둘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형 FA를 영입할 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경우다. 근본적으로, 또 순차적으로 FA 제도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롯데 팬들이 박정태의 근성을 현역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현수막을 내건 모습과 유지현(작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