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성, 위기의 KTF '마지막 보루'
OSEN 기자
발행 2007.11.23 08: 40

[OSEN=이상학 객원기자] 부산 KTF는 올 시즌 전만 하더라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다. 최근 몇 년간 매번 약체로 지목됐으나 보란듯이 상위권에 올라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만든 KTF는 올 시즌 모두가 인정하는 우승후보로 당당히 시즌을 출발했다. 그러나 KTF는 초반부터 중하위권으로 처지며 다시 한 번 '청개구리'가 되고 말았다. 시즌 14경기에서 7승7패, 어렵게 5할 승률을 맞추며 7위에 그치고 있다. 수준 이하의 외국인선수들도 문제였지만 주축 선수들이 줄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럴수록 ‘주장’ 신기성(32·180cm)의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 '상전벽해' KTF KTF는 외국인선수 선발제도 변화의 최대 피해자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유계약제 시절 KTF는 3시즌 연속 활약한 ‘터줏대감’ 애런 맥기를 비롯해 게이브 미나케, 나이젤 딕슨, 필립 리치 등 내로라 하는 특급 외국인선수들이 차례로 팀을 거쳤다. 외국인선수 보는 눈이 탁월하기로 소문난 추일승 감독의 안목과 드넓은 정보망은 자유계약제 시절 KTF만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트라이아웃-드래프트제로 바뀌며 이같은 강점을 잃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최하위인 10순위 지명권이 낙착되는 등 불운이 따랐다. 결국 세드릭 웨버와 타이론 워싱턴을 지명했지만 두 선수는 시즌 개막 후 7경기 만에 짐을 싸야 했다. 물론 외국인선수 수준 하락은 KTF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KTF가 외국인선수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KTF는 맥기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선수들이 골밑을 철통처럼 지키며 제공권을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확률 높은 농구를 펼쳤다. 특히 외국인선수에게 더블 팀이 몰릴 때 생기는 빈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팀이 바로 KTF였다. 송영진·김도수·조성민 등이 대표적이었다. 벤치멤버들이 기용될 때마다 팀에 힘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확실한 포스트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결과였다. 여기에는 특유의 외곽슛으로 상대 수비 간극을 벌이며 안정적으로 경기를 조율한 신기성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 외국인선수들은 골밑 장악력은 제로에 가까운 형편이다. 대체 외국인선수로 합류한 제이미 켄드릭과 칼 미첼도 맥기나 리치 정도의 골밑 중량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비 성공 후 이어지는 빠른 속공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시즌까지 전원농구를 표방하며 공수에서 유기적이고 활기찬 팀플레이를 펼친 KTF였지만, 올 시즌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골밑을 꾸준하게 비벼줄 외국인선수가 없다 보니 송영진이나 양희승의 활용도도 떨어졌다. 특히 빈 곳을 찾는 능력이 탁월한 송영진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선수단 물갈이로 조직력이 느슨해진 KTF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기록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 시즌 KTF는 경기당 평균 84.9득점(3위)을 올린 공격팀이었다. 팀 어시스트(20.5개)·속공(5.91개)도 모두 1위였다. 2점슛 성공률(58.0%) 및 야투성공률(51.7%)까지 주요 공격 지표는 대부분 1위였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평균 77.4득점으로 이 부문 전체 9위로 떨어졌으며 팀 어시스트도 15.0개로 이 부문 전체 8위로 추락했다. 2점슛 성공률(49.3%)은 최하위이며 야투성공률(45.9%)도 9위에 불과하다. 속공도 경기당 평균 3.50개로 전체 5위로 떨어졌다. 오히려 속공 허용이 경기당 평균 5.29개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지난 시즌까지 강점이었던 빠른 공수전환도 올 시즌에는 사라진 것이다. ▲ 믿을 건 신기성 외국인선수 전원 교체를 전후로 4연승을 달리며 분위기 쇄신에 성공한 KTF는 그러나 최근 연이은 부상 악재가 겹치며 또다시 궁지에 몰리고 있다. 박상오가 발목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고, 송영진이 허리 부상에서 회복해 돌아오자마자 양희승이 어깨 부상, 최민규가 손가락 부상으로 전력 외가 되어버렸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 메이커’ 조동현마저 지난 22일 대구 오리온스와의 홈경기에서 왼쪽 무릎을 다쳐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외국인선수 교체 후 살아나는 듯했던 팀 분위기가 다시 침체일로로 떨어질 수 있는 위기다. 오리온스전 승리(92-83)는 급한 불을 껐다는 점에서 그나마 의미가 컸다. 현재 KTF가 믿고 기댈 언덕은 역시 신기성이다. 그러나 신기성도 시즌 초반에는 휘청이는 팀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며 함께 휩쓸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올 시즌 성적도 좋지 못하다. 14경기에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경기당 34.8분을 소화했지만 평균 9.9점·5.4어시스트·2.6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신기성의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인 것은 데뷔 후 처음이다. 리바운드도 데뷔 후 가장 낮은 수치이며 어시스트는 데뷔 첫 시즌 다음으로 낮다. 3점슛은 46개 중 25개를 적중시키는 등 3점슛 성공률 54.3%(2위)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지만 2점슛 성공률(34.3%)에서 나타나듯 트레이드마크인 중거리슛이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신기성은 골밑이 강할 때 빛을 발하는 타입이다.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2004-05시즌 원주 TG삼보(현 동부) 시절 김주성과 자밀 왓킨스라는 당대 최고의 트윈타워와 함께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빛을 보았고, KTF 이적 후에도 맥기·딕슨·리치 등 외국인 빅맨들과 환상의 호흡을 과시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중량감 있는 골밑 플레이어가 없다 보니 신기성의 전체적인 행동 반경이 좁아든 느낌이다. 무엇보다 세트오펜스에서 확실한 골밑 공격 옵션이 없고, 믿을 만한 공격 루트가 정해지지 않는 바람에 신기성 스스로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즌 초반 팀 부진과 함께 이렇다 할 플레이를 펼치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점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신기성은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든 선수였다. 또 안주보다 도전을 택할 정도로 승부 근성도 좋다. 과거 경기 운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달고 다닌 신기성이었지만, 2004-05시즌 원가드로서 상대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며 TG삼보의 통합우승을 이끌더니 KTF 이적 후에도 원가드로 팀 전체를 조율하며 경기운영능력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쑥 들어가게 만들었다. 올 시즌 강력한 골밑 공격 옵션이 없어 팀도, 자신도 위기에 몰렸지만 기회로 삼을 여지는 충분하다. “특정 선수의 득점에 치중하기보다는 조금 더 빠른 공수전환으로 오픈 찬스를 자주 만들어 어떤 선수라도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릴 것이다”는 추일승 감독의 계획에도 경기 템포를 조금 더 빨리 가져가며 팀원들에게 오픈 찬스를 만들어줄 포인트가드 신기성의 역할과 임무가 막중하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백업 포인트가드 최민규가 부상으로 상당 기간 전력에서 이탈함으로써 신기성이 져야 할 체력적인 부담이 커졌다. 더군다나 신기성 본인도 손가락과 발바닥이 정상이 아니다. “재활과 경기를 병행하고 있지만, 장기 레이스라 걱정이 많다. 한 경기, 한 경기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앞을 볼 경황이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을 정도. 상대팀들도 이제는 신기성을 집중 견제해 KTF 공격의 시작부터 확실하게 틀어막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신기성도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다. “부상이라서 경기를 포기하거나 그냥 지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저런 악재에 시달리며 아슬아슬한 5할 승부를 벌이고 있는 KTF. 부상병동이지만 현재 데리고 있는 외국인선수와 국내선수들의 조화를 이끌며 돌파구를 찾을 ‘마지막 보루’ 신기성에게 다시 한 번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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