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구원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 대체 외국인선수 얼 아이크가 합류했다. 그러나 아이크마저 지난 11월 30일 경기서 상대 외국인선수 레지 오코사에게 공수 양면에서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애초 구원자의 등장 타이밍이 애매했다. 이날 상대는 단독 선두 원주 동부였다. 모비스는 다시 한 번 패했고, 연패는 어느덧 '11'로 불어났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달성한 울산 모비스에게 이제 디펜딩 챔피언의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패배의 그늘은 어느덧 모비스를 충격과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 예고된 몰락
이렇게 한 순간에 몰락한 챔피언은 결코 흔치 않다.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것 만큼이나 가능성이 극히 낮은 몰락이다. 역대 프로농구에서 전 시즌 우승팀이 2연패에 성공한 경우는 1998-99시즌 대전 현대(현 KCC)가 유일하다. 반대로 6강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한 경우는 2000-01시즌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이 유일하다. 당시 삼성은 우승멤버 중에서 문경은이 트레이드를 통해 우지원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큰 전력 누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삼성의 추락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올 시즌 모비스는 당시 삼성과 달리 어느 정도 예견된 몰락이었다.
모비스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핵심선수들이 대거 빠졌다. 양동근과 김동우는 각각 상무와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입대했고, 외국인 듀오 크리스 윌리엄스와 크리스 버지스는 외국인선수 선발제도 변화에 따라 재계약이 불가능했다. 실질적으로 지난 시즌 주전 4명이 한꺼번에 빠졌다. 특히 양동근과 윌리엄스는 모비스 전력의 절대적인 존재들이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모두 양동근와 윌리엄스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윌리엄스의 공백이 뼈아팠다. 지난 시즌 양동근이 도하 아시안게임에 차출된 14경기에서 9승5패로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윌리엄스라는 든든한 보루의 존재가 컸다.
올 시즌 모비스는 양동근과 윌리엄스의 대체재를 찾지 못하며 급격하게 무너졌다. 양동근의 빈 자리를 잘 메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김학섭은 고교시절 천재 포인트가드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코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만 매몰된 답답한 경기 운영을 하다 결국 서울 SK로 트레이드됐다. 윌리엄스의 공백은 애초부터 메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도 그 공백이 너무 크다. 키나 영이 나름 분전하고 있으나 동료들을 이용할 줄 모른다. 결정적으로 골밑이 휑하니 비어버렸다. 케빈 오웬스는 ‘오웬수’라는 불명예스런 별명과 함께 퇴출됐고, 대체로 들어온 에릭 산드린은 본의 아니게 ‘철심 은폐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제대로 된 메디컬 테스트도 거치지 않을 정도로 일처리가 미숙했던 모비스 구단의 잘못도 컸다. 코트 안팎에서 그야말로 최악의 나날이었다.
▲ 최악의 상황
올 시즌 모비스는 평균 76.2득점(10위)·83.7실점(8위)으로 공수 양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4.5어시스트(9위)·32.4리바운드(9위)로 주요 부문에서 모두 하위권이다. 야투성공률도 53.4%로 전체 7위에 그치고 있고 3점슛 성공률도 33.9%로 전체 9위에 머물러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자유투 성공률은 66.8%로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60%대에 그치며 최하위로 처졌다. 지난 11월3일 인천 전자랜드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마지막으로 무려 11경기에서 패배를 당했다. 이 가운데 외국인선수 한 명으로 치른 경기가 무려 8경기가 됐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처지에 악재까지 겹치니 좋은 성적이 날 리 만무했다.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해주면 감독은 할 일이 없다. 하지만 너무 못 해도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유재학 감독 심정이 그렇다. 물론 유 감독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11월 15일 김학섭과 이병석을 SK에 내주는 조건으로 전형수와 김두현을 영입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5경기 출장정지를 감수하고 산드린 영입을 확정지었다. 전형수와 산드린을 중심으로 올 시즌 화두가 되고 있는 빠른 농구를 펼치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산드린의 부상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전형수의 활용도도 떨어졌다. 아이크를 영입했지만 정통센터라 빠른 농구와 2대2 플레이에는 약하다. 전형수와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양동근과 윌리엄스 그리고 외국인 센터를 제외하면 지난 2시즌 동안 따로 주전을 정하지 않은 모비스로서는 팀을 지탱한 양 쪽 기둥이 무너지니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몸의 구석구석을 잇는 실핏줄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모비스 팀컬러 특성상 이들의 공백은 치명타일 수 밖에 없었다. ‘저격수’ 이병석이 올 시즌 초반 모비스에서 부진을 보인 것도 돌파로 상대 수비를 끌어모은 양동근과 오픈 찬스를 놓치지 않고 패스로 빼준 윌리엄스의 공백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조직력에 목숨을 거는 모비스에서 새얼굴이 많아진 것도 조직력을 가다듬는 데 시간과 애로를 요했다. 공수 양면에서 조직력이 흐트러졌다.
▲ 대책은 없나
모비스의 11연패는 프로농구 역대 3번째로 긴 연패다. 가장 긴 연패는 잘 알려진 대로 1998-99시즌 대구 동양(현 오리온스)이 기록한 전대미문의 32연패. 다시는 나와서도, 또 나올 수도 없는 대기록 아닌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다음으로 2005-06시즌 인천 전자랜드가 기록한 12연패다. 올 시즌 모비스는 2000-01시즌 동양, 2004-05시즌 창원 LG와 같은 11연패를 기록함으로써 프로농구 최다연패 부문 공동 3위에 랭크됐다. 게다가 1일 현재, 모비스는 17경기에서 2승15패로 승률 1할1푼8리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32연패를 기록한 1998-99시즌 동양(0.067) 다음으로 낮은 승률이다. 이밖에 1할대 승률로는 2005-06시즌 전자랜드(0.148)가 있다.
치욕스러운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모비스지만 사실 경기 내용이 심각하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연패 과정에서 선수들이 제 풀에 쓰러지고 있지만, 2라운드 초반까지는 그래도 접전 경기를 많이 펼쳤다. 신인 함지훈과 박구영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핶고, 3년차가 된 김효범도 코트에서 실질적으로 팀에 보탬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젊은 선수들로 구축된 팀이다 보니 경기 막판 한끗 차이로 패하기를 반복했다. 자연스레 자신감이 떨어졌고 패기와 투지마저 사라지며 팀 전체에 패배 의식이 퍼졌다. 한 순간 경기 주도권과 흐름을 내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점수차가 벌어지기 일쑤다.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유재학 감독의 말. 패배 의식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다.
지난 시즌 모비스를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명장으로 군림한 유재학 감독도 최근에는 이기기 위한 경기보다는 지지 않기 위한 경기를 펼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 트레이드와 외국인선수 교체로 승부수를 띄운 가운데 예기치 못한 악재가 터져 이제는 현실적으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유 감독에게는 더욱 더 답답하다. 김효범·함지훈·박구영 등 젊은 피들이 분전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지만, 어디까지나 위안일 뿐 완전하게 치유되지가 않는다. 가드들이 골밑으로 패스를 찔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발적인 외곽슛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재의 모비스다. 그러나 슈터 우지원은 여전히 중용되지 않고 있다.
11연패를 당한 동부전에서 모비스는 승부가 갈린 4쿼터에만 38점을 몰아넣으며 81점을 올렸다. 무려 11경기만의 80점대 득점이었다. 그만큼 공격이 꽉 막혔다. 그렇다고 지난 시즌처럼 수비로 승부하기에는 조직력이 미흡해졌다. 기대를 건 아이크는 복귀전에서 12점·7리바운드를 올렸지만 오코사에게 31점·20리바운드로 유린당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조그마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게 모비스의 현실이다.
지난 10월 18일 모비스-오리온스의 시즌 개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