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이제 포커스는 2008년 3월로 향하고 있다. 아시아 예선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티켓을 아깝게 놓친 한국은 최종예선을 겨냥하고 있다. 올림픽 최종예선은 내년 3월 7일부터 14일까지 대만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해 대만·호주·남아공·멕시코·캐나다·영국·스페인 등 8개국이 풀리그를 치러서 상위 3팀이 본선에 나간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국내파 위주로 임하겠다. 하지만 이승엽이 참가하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주와 이대호의 뜻하지 않은 부진으로 중심타선에서 난점을 드러낸 한국으로서는 이승엽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울 수 밖에 없다. 이병규-김동주-이대호 이승엽은 올 시즌을 마치고 왼손 엄지 수술을 받아 이번 대표팀에 빠졌다. 김경문 감독은 마지막까지 내심 이승엽의 발탁 가능성을 기대했지만 끝내 무산되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승엽은 “만약 아시아예선에서 탈락해 최종예선에 나가야 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표팀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대표적인 ‘국제용 선수’ 이병규와 김동주 그리고 이대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병규는 일본 프로야구까지 한 시즌 경험했고, 김동주와 이대호는 각각 일본 진출과 병역 문제로 동기가 부여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하게 부진했다. 이병규는 대만전 4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목부상을 이유로 일본전에는 선발 라인업에서도 제외됐다. ‘부동의 4번 타자’ 김동주는 대만전·일본전에서 6타수 1안타 1득점 2볼넷에 그쳤다. 5번 이대호마저 대만전·일본전에서 6타수 무안타 2사구를 기록했다. 세 선수의 도합 성적은 16타수 1안타였고 타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8차례 득점권 찬스에서는 김동주가 얻어낸 볼넷 2개가 전부였다. 오히려 무기력한 삼진 4개와 폭풍 병살타 2개를 합작, 기회마다 찬물만 끼얹었다. 하지만 단 2경기만으로 이들을 재단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이병규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페넌트레이스·포스트시즌·코나미컵까지 포함해 무려 146경기나 뛰었다. 데뷔 후 이처럼 많은 경기를 뛴 것은 처음이었다. 4번 김동주는 상대로부터 철저하게 견제를 받았다. 김동주를 상대한 대만·일본 투수들은 31구 중 몸쪽 승부가 불과 2차례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깥쪽으로만 승부하며 김동주를 견제했다. 일본전에서는 잘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는 불운까지 있었다. 이대호는 대회기간 동안 타격감이 그리 좋지 못했다. 물론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한 것은 이대호의 책임이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야구다. 이승엽만이 대안인가 중심타선의 극심한 부진으로 대만전·일본전에서 국내 야구팬들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승엽만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너무 짙었다. 만약 이승엽이 있었더라면 결과는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이승엽은 그만한 존재감이 있는 거포이자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3번 또는 4번 타순을 지켰다면 그 앞뒤 타자들이 집중적인 견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다. 물론 이승엽이 특별한 선수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1할대 타율에 그친 1999년 서울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결정적 순간마다 홈런을 터뜨리며 이를 상쇄한 승부사가 바로 이승엽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승엽의 상태다. 수술을 받은 후 재활에 돌입한 이승엽으로서는 상태가 완벽해야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 대회 전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해 합류가 늦어진다면 대표팀의 대회 준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또한, “엄지 수술 후 이전 기량을 발휘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수술하게 되면 신경세포가 죽어 배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재일교포 야구인 장훈 씨의 말처럼 이승엽으로서는 일단 재활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입장이다. 올 시즌 엄지 부상 중에도 3년 연속 30홈런을 치며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이승엽이지만 내년에는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몸값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시즌을 앞두고 치러지는 대회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번 대회에서 나타났듯 타격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낸 한국으로서는 이승엽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승엽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종욱과 고영민이 생애 첫 국제대회 무대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지만 이들에게 계속해 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승엽은 왼손 거포라는 희소성이 있다. 최근 2016년 올림픽에서 야구가 다시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분명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이 일단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치러지는 마지막 대회라는 점이다. 의미가 큰 대회인 만큼 어떻게든 출전해야 한다. 이승엽은 타석에 서는 것만으로도 그 필요성은 충분하다. 자국리그가 곧 경쟁력 한국과 일본의 야구 저변과 인프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번 올림픽 예선에서도 철저히 국내파로만 구성된 일본이었지만 투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일본은 필경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큰 곳은 다름 아닌 자국리그였다. 내로라 하는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과 달리 미국 본토 밑바닥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일본 프로야구는 이제 메이저리그로 가는 하나의 통로가 된 지 오래다. 일본야구는 굳이 메이저리거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막강한 대표팀 구성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승엽 타령’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정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사정은 분명 다르다. 오랜 세월 축적되고 내재된 야구 역사와 저변의 차이는 단기간 쉽게 좁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국리그를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자원들을 배출하고 있다. 4000개 이상 고교팀이 있으니 자원이 나오지 않으려야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다르빗슈 유는 제2의 마쓰자카 다이스케, 아오키 노리치카는 제2의 스즈키 이치로로 성장했다. 마쓰이 히데키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후에는 이와무라 아키노리가 등장했고 그마저 빅리그에 진출한 이후에는 무라타 슈이치가 나타났다. 자국리그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쑥쑥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 있다. 우리나라처럼 언제까지나 몇몇 선수에게만 의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야구는 자국리그 경쟁력을 둘째 치고 현상 유지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구단 하나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여있다. 이같은 시국에 리그 경쟁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고교팀이 겨우 50여 개밖에 없는 한국야구의 사정을 비추어볼 때 자국리그 경쟁력 강화는 필수다. 그러나 여전히 투수 쪽으로만 편향된 유망주들의 지나친 쏠림현상과 성적에만 급급한 팀 운영은 스스로 리그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후 이렇다 할 거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이승엽에 대한 의존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대호와 김태균이 포스트 이승엽으로 주목받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승엽은 지금의 이대호와 김태균보다 2살이나 어린 23살 때 54홈런을 때려낸 ‘진짜’ 거포다. 그러나 그를 이을 거포다운 거포가 나오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안 그래도 없는 자원을 균형있게 살릴 수 있는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한국야구는 이승엽이 은퇴한 뒤에도 지금처럼 이승엽 타령만 할지도 모른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