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대세는 수비농구 그리고 분업농구가 되는 것일까. 2007-08 SK텔레콤 T 프로농구가 3라운드로 돌입하며 순위 싸움도 밑그림이 그려졌다. ‘최강’ 원주 동부가 단독 선두를 달리며 확고부동한 1강으로 독야청청하고 있는 가운데 2위 전주 KCC와 3위 안양 KT&G가 나란히 뒤를 잇고 있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수비가 매우 강하고, 선수들이 역할을 분업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비농구와 분업농구가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분업농구란 각 포지션별로 주어진 한정된 고유 역할의 수행이 아니라 선수들간 역할과 부담의 분업을 뜻한다. ▲ 수비농구 동부의 수비는 익히 잘 알려져있다. 2003-04시즌, 2004-05시즌 연속해 평균 실점 부문 1위에 올랐으며 2005-06시즌, 2006-07시즌에도 연속해 평균 실점 2위에 랭크될 정도로 끈끈한 수비를 자랑했다. 올 시즌에도 ‘골밑 파수꾼’ 김주성을 중심으로 해 수년간 다져진 수비 조직력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평균 71.6실점으로 당당히 이 부문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게다가 2점슛 허용률(49.1%), 3점슛 허용률(34.9%) 모두 1위에 올라있다. 김주성뿐만 아니라 표명일-강대협-이광재 등으로 구성된 백코트진 수비도 끈끈하고 위협적이다. 지난 두 시즌과 달리 공격 템포가 빨라졌지만 평균 실점이 더 내려갈 정도로 수비의 깊이가 더해졌다. KCC도 수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1라운드에서 KCC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는 FA 영입듀오 서장훈과 임재현의 부진에 나머지 선수들의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은 영향도 있었지만 무너질 대로 무너진 수비 조직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1라운드 9경기에서 평균 84.8실점으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했던 KCC는 2라운드 이후 10경기에서 평균 75.7실점밖에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공격이 되지 않자 수비에서 그 해법을 찾은 결과다. 골밑에서는 브랜든 크럼프, 외곽에서는 추승균과 제이슨 로빈슨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인 포인트가드 신명호가 상대 주전가드를 틀어막는 스토퍼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하고 있다. ‘돌풍의 중심’ KT&G도 빠른 속공과 공수전환이 돋보이지만 그 이면에 바로 수비가 자리하고 있다. 평균 80.1실점으로 이 부문 전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부(71.6점)-LG(78.9점)-KCC(80.0점)에 이어 4위에 랭크됐지만 KT&G의 공격 템포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평균 실점이다. 2점슛 허용률(49.7%) 2위, 3점슛 허용률(35.7%) 3위에 오를 정도로 내외곽 수비가 탄탄하다. 특히 주희정-은희석-황진원-양희종-이현호 등으로 구성된 국내선수들의 수비력은 상대에게 질식 그 자체다. 골밑 도움수비와 수비 로테이션도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 KT&G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수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 분업농구 동부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평균 득점을 올리고 있는 선수가 5명이나 된다. 팀 내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레지 오코사(18.3점)를 비롯해 김주성(14.8점)·표명일(13.2점)·강대협(10.7점) 그리고 대체 외국인선수로 합류한 카를로스 딕슨(13.0점)까지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이다. 딕슨의 전임자였던 더글라스 렌도 평균 10.3점을 올렸다. 어느 한 선수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공격 옵션이 다양화됐다. 승부처에서는 오코사와 표명일 또는 강대협이 돌아가며 한 방을 터뜨리고 있다. 골밑에서는 김주성·오코사, 외곽에서는 표명일·강대협·손규완 그리고 공격에서는 오코사·표명일, 수비에서는 김주성·이광재 등이 각각 중심이 되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몇 년과 달리 어느 한 선수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구조다. 물론 높이와 수비의 절대적인 핵심, 김주성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한 선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KCC도 마찬가지다. KCC는 주전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다. 이상민-조성원-추승균 등 ‘이조추 트리오’가 오랜 시간 팀을 장악하다보니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허재 감독도 동부 전창진 감독 못지않게 벤치멤버를 활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달라졌다. KCC는 선수교체가 경기당 평균 25.5회로 전체 2위다. 활발하게 선수를 교체함으로써 주전 의존도를 줄이고 전략적인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신명호-박상률-유병재-이중원-정훈 등 젊은 벤치멤버들이 임재현-추승균-서장훈 등 30대 베테랑들로 하여금 충분한 체력 회복의 시간을 주고 있다. 또한, 서장훈과 크럼프의 트윈타워를 바탕으로 로빈슨·추승균 등이 내외곽을 오가는 등 유연한 역할분담으로 어느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다. 추승균이 올 시즌 20점대 이상 고득점을 한 번밖에 올리지 못하는 등 데뷔 후 가장 낮은 평균 11.7점에 그치고 있지만 KCC는 12번이나 이겼고 전체 2위를 달리고 있다. KT&G는 역할의 분업은 뚜렷하지만, 부담의 분업은 뚜렷하지 못한 편이다. 공격에서 외국인선수 마퀸 챈들러와 T.J. 커밍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KT&G는 전체 득점의 49.2%를 두 외국인선수가 책임지고 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이는 곧 외국인선수를 잘 뽑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공격에서도 국내선수들의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수비에서 국내선수들의 역할이 대단하다. 주희정-은희석-황진원-양희종-이현호 등 내로라하는 수비수들이 총집결해 효과적인 도움수비로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KT&G의 수비가 4쿼터에도 지치지 않는 힘은 바로 풍부한 선수층이다. 공격에서 활약이 미진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양희종과 황진원 그리고 이현호와 김일두까지 고비에서 3점슛과 골밑슛으로 포문을 뚫어주고 있다. 확실한 정통슈터가 없다는 것이 KT&G의 약점이지만 어느 선수든 3점슛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강점이다. ▲ 나머지 팀들은 동부-KCC-KT&G를 3강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수비와 분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동부에 이어 평균 실점 부문 2위(78.9점)에 올라있는 창원 LG의 경우에는 수비가 아직 완전치 못한 형편이다. 2점슛 허용률(51.9%)은 전체 3위지만, 3점슛 허용률(37.9%)은 전체 9위에 불과하다. 가드진의 골밑 도움수비는 매우 끈질기고 위협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몇 차례 패스에 외곽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수비 로테이션이 원활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공격에서는 외국인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외국인선수들이 전체 득점의 48.1%를 책임지고 있다. KT&G 다음으로 높은 의존도다. 또한 슈터 조상현이 침묵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어려운 경기를 하게 된다. ‘서울 라이벌’ 서울 SK와 서울 삼성도 막강 화력을 앞세우고 있지만 수비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 시즌 나란히 빠른 공수전환을 바탕으로 한 스피드의 팀으로 거듭난 SK와 삼성은 평균 실점 부문에서 각각 8위(83.5점)·9위(87.1점)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공격 템포가 빨라진 것도 실점 증가의 이유지만, 수비조직력이 무너지는 경우가 잦다. 잘 나가던 SK는 최근 4경기에서 무려 평균 89.8실점을 허용하며 4연패 수렁에 빠졌을 정도. 수비가 무너진 상태에서의 공격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었다. 삼성은 이상민이 있을 때 강혁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다. 울산 모비스와 함께 공동 최하위로 추락한 대구 오리온스는 수비와 분업,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시즌 전 김승현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한 오리온스는 그러나 김승현이 허리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자 이렇다 할 대책조차 세우지 못하며 가는 세월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선수들의 역할 분담도 애매하다. 포인트가드를 맡고 있는 정재호는 경기 중 수시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듀얼가드의 한계를 드러내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이동준이 최근 들어 빅맨으로 자리 잡으며 팀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은 그래도 위안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평균 87.4실점(10위), 61.8%의 2점슛 허용률(10위)은 오리온스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KCC 추승균이 KT&G 은희석의 마크를 받으며 드리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