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홍성흔 트레이드 자청에 '딜레마'
OSEN 기자
발행 2007.12.14 08: 20

[OSEN=이상학 객원기자] 두산은 전통적으로 포수 자원이 풍부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대형 포수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활약한 ‘수비형 포수’ 김태형을 비롯해 1994년 이도형(한화), 1996년 최기문(롯데), 1997년 진갑용(삼성)이 차례로 입단했다. 이도형은 1995년 OB의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 중 하나였고, 최기문과 진갑용은 모두 국가대표 출신 특급포수였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더 어려운 한국 양궁처럼 두산에서는 주전포수가 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이 같은 두산의 적자생존 포수 경쟁에서 최후에 웃은 자는 다름 아닌 1999년 후발주자로 두산에 입단한 홍성흔(30)이었다. 그러나 그 홍성흔이 이제는 두산을 떠나려 한다. 최근 홍성흔은 김경문 감독에게 정중하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두산의 심장’ 홍성흔 1999년 두산의 라커룸에서는 쉴 새 없이 이야기보따리와 웃음소리가 터졌다. 강병규·정수근·홍성흔이라는 막강 ‘오버 트리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을 믿고 자율을 부여했다. 김 감독은 오버 트리오의 어떤 장난에도 특유의 시큰둥하고 뚱한 반응으로 넘겼다. 감독은 선수를 믿고 신뢰했고 선수들은 그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그라운드에서 몸을 다바쳤다. 그리고 오버 트리오는 그 중심에서 팀 분위기를 돋우며 팀워크를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비록 강병규가 1년 뒤 선수협 사태로 팀을 떠나고, 정수근이 2003시즌을 끝으로 역시 두산을 떠났지만, 홍성흔이 있었기에 지금도 두산만의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안경현이라는 고참도 있지만 홍성흔이 중간관리자로 팀 분위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두 말할 필요할 없다. 두산의 심장과도 다름없다. 홍성흔은 언제나 쾌활하고 시끄러우며 동작도 크다. 포수로는 더없이 좋은 성격이다. 포수는 선수들의 투정을 받아들일 정도로 마음이 넓고 정감 있으며 파이팅이 넘쳐야한다. 괜히 안방마님이 아니다. 홍성흔은 결정적일 때 안타를 치고 나가면 두 팔을 치켜들며 덕아웃과 관중들을 향해 포효했고, 삼진을 잡은 뒤에는 투수를 검지로 가리키며 사기를 북돋았다. 그런 홍성흔이 처지면 팀 분위기는 가라앉을 수 밖에 없다. 2003년 두산이 7위로 추락하며 무기력한 경기를 보인 것도 팀 분위기를 주도하던 홍성흔과 정수근이 나란히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팀 전력적인 면도 크지만 분위기 면에서도 홍성흔의 존재감은 크다. 특히 투수들과 호흡하는 ‘포수 홍성흔’의 존재는 홍성흔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2004년 포수로는 최초로 최다안타(165개)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정도로 타격이 좋은 홍성흔은 방망이 실력으로 자신을 어필할 만하지만 언제나 ‘포수 홍성흔’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포수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홍성흔은 한때 수비보다 공격으로 자신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포수가 타격에만 집중하면 좋아할 투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한, 홍성흔은 안타를 치고 타점을 뽑아도 자신의 타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투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천상 포수였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던, 그렇지 않던 홍성흔은 언제나 자신을 포수라고만 생각하는 선수다. ‘포수 홍성흔’ 딜레마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홍성흔은 오른쪽 발목과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도하 아시안게임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도 부상 악령은 홍성흔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허리부터 시작해 손가락·허벅지까지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몸이 부상으로 얼룩졌다. 결국 시즌이 한창인 7월초에는 2군으로 내려가야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5월에 복귀한 채상병이 서서히 경기 감각을 찾아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홍성흔의 2군행은 프로 데뷔 3번째였다. 프로 데뷔 초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간 이후 2003년 5월5일 무릎 부상으로 2군에 갔다. 그리고 올해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홍성흔이 빠진 29경기에서 두산은 15승1무13패를 거두며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채상병은 포수로서 누가 보더라도 기대 이상으로 홍성흔의 공백을 메웠다. 당초 후반기 시작과 함께 돌아올 것이라던 홍성흔의 복귀는 8월15일에야 이뤄졌다. 심신을 추스르고 완전한 몸 상태로 복귀하게끔 한 김경문 감독의 배려였다. 홍성흔은 복귀 후 29경기에서 타율 2할7푼1리·5홈런·20타점으로 나름 활약했다. 2군으로 내려가기 전 51경기에서 타율 2할1푼5리·0홈런·19타점에 그친 것을 감안할 때 타격에선 각성의 결과가 충분히 나타난 듯했다. 그러나 포수 자리는 더 이상 홍성흔의 것이 아니었다. 홍성흔이 2군으로 내려가기 전부터 ‘홍성흔의 포수 생명은 다했다’는 소문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미 2005년에도 김경문 감독은 홍성흔으로 하여금 1루수 또는 지명타자로의 전향 가능성을 내비쳤었다. 홍성흔의 도루저지율도 2005년(0.279)·2006년(0.292)·2007년(0.195)까지 최근 3년간 3할대를 넘지 못해 이같은 설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현역시절 포수 출신인 김경문 감독은 배터리코치 시절부터 홍성흔을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홍성흔이 줄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바 있다. 1루수 또는 지명타자 전향설이 나온 것도 홍성흔의 선수생명과 장래를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홍성흔은 오직 포수를 원한다. 더욱이 투수를 이끄는 안정적인 투수리드와 미트질 그리고 블로킹에서 홍성흔은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 송구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졌지만 자발적인 훈련을 통해 극복 중이다. 홍성흔은 ‘홍포’다. 두산팬들은 홍성흔을 그렇게 부른다. 그만큼 포수로서 홍성흔의 이미지가 오랜 시간 축적됐고 또 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과 송구능력의 상실은 홍성흔으로 하여금 포수로의 재기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김경문 감독은 이미 그렇게 판단했다. 두산 ‘깊어지는 고민’ 홍성흔의 트레이드 요청이 결코 쉽지 않았음은 자명한 일이다.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스스로 팀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심장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떼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스런 일이다. 자신의 성장을 지켜본 팬들 그리고 보장된 길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도전정신 없이는 있을 수 없다. 물론 홍성흔에게 2008년은 사활을 걸어야 할 해다. 내년 시즌을 온전하게 마치면 FA가 되는 홍성흔은 수준급 타자보다는 공격형 포수일 때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올 시즌 바닥을 친 홍성흔이지만 올해 조인성의 경우처럼 한 해 동안 바짝 끌어올려도 가치를 다시금 인정받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프로야구는 여전히 포수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홍성흔이 포수 포지션에 목을 매는 것은 포수에 대한 애착심·자부심이 가장 큰 이유지만 시장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제 공은 두산 구단에게 넘어갔다. 리오스와 김동주 그리고 김선우 문제를 채 매듭짓지 못한 두산에게는 때 아닌 숙제가 떨어져버렸다. 구단은 “홍성흔의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팀 전력 면에서 두산이 홍성흔을 대체할 자원은 충분하다. 포수에는 채상병, 1루수에는 안경현, 지명타자에는 최준석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두산 특유의 팀 분위기는 홍성흔의 대체재를 찾을 수 없다. 물론 야구는 분위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실적이 없는 선수가 팀 분위기를 좌우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KIA 이종범의 리더십이 예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은 것도 그만큼 이종범의 실적이 떨어진 탓이다. 하지만 홍성흔은 여전히 타격에서는 쏠쏠한 실적을 올릴 수 있고, 유일하게 두산의 오랜 팀 분위기를 전승시키기고 있는 일종의 인간 문화재와 같은 존재다. 홍성흔이 프랜차이즈라는 점도 두산에게는 굉장한 걸림돌이다. 두산은 1990년대 자체적으로 길러낸 스타들을 대다수 잃었다. 심정수·강병규·진필중·정수근·박명환 등 1990년대 풋내기에서 스타가 된 선수들이 지금은 모두 두산을 떠났다. 특히 심정수와 강병규는 선수협 문제로 구단에서 강제적으로 트레이드시켜 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이 때문에 두산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동주와 함께 홍성흔은 1990년대 두산이 지키고 있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존재다. 두산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리를 생각하면 홍성흔의 뜻대로 트레이드를 추진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명분을 고려하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성공적으로 세대교체에 성공한 두산이지만 팀 내 확실한 중간관리자가 없다면 허점을 드러낼 수 있다. 홍성흔은 중간관리자로는 최고의 선수다. 횃불의 전수가자 되어 열정을 전파해가는 실질적인 허슬 베이스볼의 리더이기도 했다. 두산은 올 스토브리그에서 산더미 같은 숙제를 떠안고 있다. 홍성흔의 갑작스런 트레이드 요청으로 두산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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