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의 '정년'과 홍성흔의 도전
OSEN 기자
발행 2007.12.19 15: 03

[OSEN=이상학 객원기자] 올 스토브리그 최고의 화두는 역시 홍성흔(30)이다. 포지션 전향을 권유하는 소속팀 두산을 떠나 포수로 뛸 수 있는 팀으로 트레이드가 홍성흔의 목표다. 두산에서는 이미 포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김경문 감독이 현역시절 포수 출신으로 배터리코치까지 지냈다는 점에서 이는 의미하는 바가 더욱 남다르다. 하지만 포수에 대한 눈높이가 높은 김 감독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홍성흔은 포수로서 자신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수로서 정년에 도달한 건지, 재기할 가능성이 있는지가 향후 홍성흔의 트레이드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 포수의 정년 포수는 고된 포지션이다. 경기 내내 쪼그려 앉아 공을 받고 던지기를 반복하는 육체적 노동이다. 그러나 포수는 육체적 노동만큼이나 정신적 노동이 필요하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로 평가되는 SK 박경완(35)이 만성적인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리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경완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포수로 유명하다. 이처럼 포수는 단순히 육체라는 하드웨어만 좋아서는 결코 안 된다. 머리라는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육체적으로 포수의 정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스포츠의학의 발달로 선수생명은 보다 길어졌다. 또한 야구가 날로 섬세하게 발전하고 연구 체계가 자리잡히면서 포수의 소프트웨어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포수는 가장 많이 혹사당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부상에 대한 노출이 높고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인 노쇠화가 빨리 진척될 수 밖에 없다. 2000년대 이전까지 리그를 대표할 만한 베테랑 포수가 많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골든글러브 5회 수상에 빛나는 이만수도 34살까지 주전으로 활약한 이후 급격한 노쇠화를 겪었다. 메이저리그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포수는 30대가 정년’이라는 정설이 생겨났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로 포수 정년 30대라는 정설은 과거의 오래된 선입견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동수(39) 박경완, 미국에서는 이반 로드리게스(36) 호르헤 포사다(36) 등 30대 중후반 포수들이 맹활약 중이다. 어느덧 내년이면 불혹이 되는 현대 김동수는 여전히 주전 안방마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최다수상(7회)에 빛나는 김동수지만 그도 한때는 고비가 있었다. 2000년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 3년간 방황했다. 공교롭게도 30대 초중반대의 나이였다. 하지만 김동수는 고비를 넘긴 이후 굳건함을 이어갔다. 20대 시절에 비해 어깨가 약해지고 체력이 떨어졌지만, 대신 노련한 볼 배합과 투수리드 그리고 적절한 견제와 같은 관록으로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불혹 포수’가 됐다. 비록 몸은 쇠했지만, 정신은 더욱 투명해지고 온몸의 세포는 잘 벼린 칼날처럼 돋아났다. 김동수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지배하는 포수 포지션을 입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다. 비단 김동수뿐만 아니다. 올해 7년 만에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박경완도 고비를 넘긴 이후 더욱 굳건해진 사례가 된다. 사실 박경완은 지난해 심각한 노쇠화 조짐을 보였었다. 도루저지율은 데뷔 후 최악인 2할2푼까지 떨어졌고, 시즌 중 부진을 이유로 2군에도 다녀왔다. 2004~2005년 연속해 오른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탓인지 부상 후유증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올 시즌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경완의 경우에는 잦은 부상으로 블로킹과 도루저지에서 문제점을 나타냈으나 1년 만에 회복했다. 짧은 위기였지만, 슬기롭게 잘 극복했다. 김동수와 박경완처럼 포수에게 몸의 고장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고비만 슬기롭게 넘기면 포수의 정년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 홍성흔의 도전 홍성흔은 최근 몇 년간 질긴 부상 악령에 시달렸다. 지난해에는 시즌을 마치고 오른쪽 발목과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올해도 허리부터 손가락과 허벅지까지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 다쳤다. 포수가 부상에 대한 노출도가 높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홍성흔이 건강한 포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무릎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한 2003년을 제외한 나머지 7시즌 동안 모두 110경기 이상 출장한 포수가 바로 홍성흔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여러 군데 복합적으로 다치며 부상이 고질화되자 더 이상 예의 건강한 홍성흔은 찾아볼 수 없어졌다. 2년 전 김경문 감독은 마치 이를 예상이라도 한듯 홍성흔에게 포지션 전향을 권유한 바 있다. 홍성흔의 신체적 노쇠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역시 송구 능력. 팔꿈치 부상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홍성흔의 도루저지율은 올해 1할9푼5리까지 추락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할대 도루저지율이다. 홍성흔의 도루저지율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할대 중반이었으나 지난 2년간 2할대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올해 1할때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쳤다. 도루저지가 꽤 괜찮았던 포수에게 닥쳐온 시련이라 상실감은 더하다. 한 때나마 홍성흔은 송구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이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 홍성흔이 포수로서 경쟁력을 잃은 결정적 원인이 바로 송구였기 때문에 송구 문제만 극복하면 포수로서 경쟁력이 뒤질 게 없다는 것이 홍성흔의 판단이다. 실제로 송구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도루저지율이 겨우 2할2푼에 불과했던 박경완은 올해 도루저지율 3할7푼6리로 이 부문 전체 1위에 올랐다. 지난해 도루저지율 2할7푼3리에 그치는 등 통산 도루저지율이 2할6푼8리밖에 되지 않았던 한화 신경현(32)은 올해 도루저지율 3할7푼4리를 기록하며 박경완에 이어 이 부문 전체 2위를 차지했다. 신경현은 고질적인 팔꿈치 통증으로 송구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올해 이를 완벽하게 극복해냈다. 어깨에 큰 문제가 있지 않는 한 포수의 도루저지능력은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 홍성흔도 부단한 연습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송구와 블로킹 같은 수비적인 면만 보완한다면 ‘포수 홍성흔’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홍성흔의 포수로서 재기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특히 현역시절 포수 출신 지도자들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용득 전 롯데 감독은 “부상만 어느 정도 극복하면 계속해 포수 자리를 훌륭하게 소화할 능력이 있는 선수”라고 전망했다. 유승안 전 한화 감독 역시 “포수로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는 선수다. 앞으로 4~5년 정도는 잘 뛸 선수”라고 내다봤다. 유 전 감독은 “홍성흔은 너무 열심히 하려다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극복하기는 쉬운 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성흔의 성실성이 되려 화를 부른 셈이다. 실제로 홍성흔은 두산이 자랑하는 ‘허슬 베이스볼’의 심장과 같은 존재다. 포수로서 몸을 사리지 않다보니 부상에 대한 노출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홍성흔도 이제는 자신이 30대라는 것을 인지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청한 지 한 주가 지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협상 진전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홍성흔이 워낙 덩어리가 큰 선수라 트레이드 조각을 맞추기 쉽지 않다. 하지만 홍성흔은 잔류 배제를 선언하면서까지 두산을 떠나려 한다. 오직 ‘포수 홍성흔’이 되기 위해서이다. 홍성흔에게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트레이드 요청과 잔류 배제는 ‘포수 홍성흔’을 되찾기 위한 홍성흔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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