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프로야구가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라는 사실은 이제 삼척동작도 알 만한 일이 되어버렸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금 큰 위기에 처해있다. 12년 전 무려 470억 원을 호가하던 프로야구단은 이제 60억 원까지 가치가 하락했다. FA(프리에이전트) 한 명의 다년 계약 몸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프로야구단의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다. 도대체 프로야구는 왜 이렇게 적자만 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됐을까. ▲ 프로야구의 위기 미국의 경제전문지 는 매년 경기력·연고지·브랜드·경기장 등의 가치를 합산해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를 평가한다. 지난해 7월 도 한국 프로야구 8개 구단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가치를 산출,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프로야구단 8개 구단의 평균 가치는 646억 원이었다. 최고가치는 삼성의 914억 원, 최저가치는 현대의 292억 원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가치는 1년이 지난 후 60억 원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삼성의 가치도 914억 원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의 평가 기준이 되는 메이저리그는 규모와 시장이라는 면에서 우리나라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야구는 태생적으로 경제적인 관념보다는 정치적인 이해득실에서 비롯됐다. 1981년 프로야구 출범 준비과정에서 6개로 나눠진 연고지 선정 원칙은 ‘재무구조가 튼튼한 대기업 중 그 기업 총수의 출신도별’이었다. 애초부터 프로야구는 기업과 정치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스포츠라는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나머지 드러나지 않았던 프로야구의 마각은 결국 IMF 경제위기와 함께 파탄나고 말았다. 경제위기 다음에는 다양한 여가문화 컨텐츠의 발전이 프로야구를 외벽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프로야구단은 모그룹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수세적인 자세를 보였다. 1980~90년대와 다를 바 없었다. 프로야구단의 한 시즌 운영비는 대략 150억~200억 원 정도. 시즌 운영비뿐만 아니라 경기장을 비롯해 선수단 숙소와 훈련장과 같은 기반시설을 마련하고 증원하는 데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일반적인 운영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은 선수들의 계약금 및 연봉이다. FA 몸값 거품은 최근 몇 년간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는가 싶었지만 올해 다시 한 번 폭등세를 보였다. 프로야구의 가치가 하락하는 1990년대 후반부터 프로야구에는 FA 제도가 도입됐다. 프로야구는 점점 더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데, FA 제도의 기형적인 발전으로 굳이 해외에 진출하지 않아도 국내에서 스포츠재벌들이 등장했다. 결과적으로는 FA 제도 도입으로 선수들의 선택폭과 편익이 대폭 늘어났을지 모르나 프로야구의 수익구조는 썩어가고 있었다. 배보다 큰 배꼽이 되고 만 것이다. 문제는 과연 누가 FA 몸값 폭등을 불렀냐는 것이다. 비단 FA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신인선수 계약금과 외국인선수 뒷돈 문제도 전체적인 몸값 인플레를 야기했다. 실제로 올해 프로야구 개막일을 기준으로 삼을 때 8개 구단 전체 1군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무려 1억2514만 원이었다. 억대 연봉자는 무려 89명에 달했고, 신인선수와 외국인선수를 제외한 전체 평균 연봉도 8472만 원이었다. 평균의 함정을 건너가면 프로야구의 양극화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적자생존의 프로세계에서 연봉의 양극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 모르나 문제는 고액 연봉자들이 프로야구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이 받고 있다는 데 문제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수들에게 막대한 돈을 지불한 이들은 다름 아닌 구단들이었다. 선수들의 욕심을 문제 삼기에는 구단들의 이기주의가 극심했다. 구단들은 선수 몇 명을 영입하는 데 구단 1년 예산의 상당 부분을 써버리는 현실을 성토한다. 그러나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를 부추기고 부채질한 건 당장의 성적이 눈이 멀어진 나머지 몇몇 선수에 거금을 쏟아부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들이었다. ▲ 프로야구의 현실 현대를 모태로 프로야구단 창단을 준비한 KT는 지난 30일 ‘기존 구단들이 반대하면 창단 추진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KT의 입장 발표로 프로야구계에는 다시 한 번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KT가 창단 추진 작업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강경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기존 구단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KT는 서울 무혈입성을 고수하고 있다. 매년 200억 원에 가까운 적자 폭을 감안하고 위기의 프로야구에 뛰어든 만큼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두산과 LG 등 서울구단들이 공동성명서를 발표, KT의 서울 무혈입성에 반기를 들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일방통행식 일처리도 문제였다. 두산과 LG를 비롯해 나머지 구단들은 8개 구단 체제라는 대전제에는 백만 번 동의하고 있으나 헐값에 프로야구단을 내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제 프로야구단은 공짜로 주려고 해도 거절하는 매력없는 상품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진짜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KT의 창단 추진 과정에서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구단들이 과연 떳떳할 수 있느냐 여부다. LG는 삼성과 함께 FA 시장에서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두산은 FA 몸값 거품이 빠져들고 있는 시점에서 선수 한 명에게 62억 원 보장이라는 비이성적인 계약안을 제시했다. 프로야구의 제살을 깎아먹는 일들을 서울 구단들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구단들로서는 KT가 창단 특혜 그 이상의 특혜를 누리며 프로야구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7년 전만 하더라도 250억 원을 투자해 프로야구단을 사들인 SK나 그 이듬해 210억 원을 투자한 KIA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프로야구단의 가치를 불리지 못한 것은 구단들이다. 프로야구단의 적자 폭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이 보여준 움직임은 전무했다. 올해 SK가 내건 ‘스포테인먼트’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컸다. 그러나 대다수 구단들은 구단의 자산가치가 깎이는 동안 스스로 적자 폭을 줄이고 수익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보다 눈앞의 성적에 눈이 먼 나머지 암을 키우고 말았다. 프로야구 시장 몰락은 그저 남의 일일뿐 제 배 불리기에만 급급했다. 뉴욕 양키스의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지난 1973년 CBS에서 1000만 달러에 구단을 인수했다. 지금 양키스의 구단가치는 무려 10억3000만 달러다. 30년 동안 10배 이상이나 구단가치가 뛰어올랐다. 메이저리그의 성장이 결정적이지만, 자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케이블방송 ‘YES 네트워크’의 힘도 컸다. 는 아예 ‘YES’의 가치를 무려 5억 달러로 산정했다. 비단 양키스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대다수 구단들이 방송사에 중계권을 팔아 스스로 수익구조를 창출했다. 일본프로야구 역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관중증대를 중심으로 중계권과 스폰서라는 수익구조를 만들었다. 제 아무리 시장이 작다고 해도 국내 최고의 프로스포츠라는 한국 프로야구가 동시간대 방송되는 일본 프로야구에도 시청률이 밀리는 것은 구단들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가 처한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프로야구의 돌파구 사실 시장이 작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8개 구단 모두가 흑자를 내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구단도 하나의 기업적인 생각에 입각한다면 적자 폭을 줄이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프로야구는 비용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비용 대비 수익의 기회도 많을 수 있다. 당장 시즌이 돌입하면 일주일 중 6일간 매일 4경기가 펼쳐지는 프로야구만큼 자주 언론에 노출되고 관람할 수 있는 스포츠는 국내 어디에도 없다. 최고로 인정받는 구단들이 가진 권리를 비싸게 팔고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를 벌이는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교할 것도 없다. 한국식 수익구조의 개선을 통해 궁극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돌파구의 시작점이 바로 8개 구단 체제 유지다. KT의 서울 무혈입성은 향후 프로야구에 잘못된 선례로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8개 구단이 다시 7개 구단으로 가는 것만큼 나쁜 선례도 없을 것이다. 구단 하나가 줄어들면 단순히 구단 하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프로야구 시장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당장 2007년 프로야구가 11년 만에 400만 관중을 돌파한 데에는 구단이 8개이고 팀당 126경기를 치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7개 구단으로 치렀던 1991년 당시 프로야구는 팀당 120경기씩 치렀으나 관중은 318만 명 밖에 되지 않았다. 프로야구가 1990년대 초중반 최절정기를 누린 힘은 8개 구단이었다. 만약 KT가 창단 작업에 손을 뗀다면 프로야구는 결코 8개 구단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현대가 공중분해되고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그야말로 공멸이다. 지금은 전력적인 측면에서 멀쩡한 팀 하나가 매물로 나온 만큼 창단협상이라도 벌일 수 있으나 7개 구단으로 되돌아간다면 제대로 된 창단협상도 없어질지 모른다. 이는 곧 실력이 좋은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모조리 사장되고, 아마추어 야구는 물론이고 유소년 야구의 저변약화로 전이될 것이 분명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너무나 큰 피해들이다. 프로야구를 넘어 한국야구 전체에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 같은 일들이 지금 당장 KT에게 주어지는 특혜보다도 더 큰 피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구단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는 서울구단들의 기득권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일이 잘못되어 7개 구단이 되면 야구역사에 죄짓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K 김성근 감독도 “일단 8개 구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단간 이해협상은 그 다음 일”이라고 동조했다. 당장 7개 구단이 된다면 야구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5일 선발 로테이션과 같은 프로야구의 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1990년대 프로야구에 선발 로테이션이 생긴 것 역시 8개 구단 체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 7개 구단 체제는 프로야구의 공멸이자 퇴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 현재로서는 모두가 KT의 창단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급선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프로야구의 만성적인 적자구조처럼 일을 크게 키운다면 다시는 치유할 수 없는 환부로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올해 11년 만에 400만 관중동원으로 수익구조 개선 및 창출의 토대가 되는 인기를 회복, 제2의 프로야구 부흥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는 만큼 8개 구단과 야구계 전체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KT 창단에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현대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야구 전체의 일”이라는 김시진 감독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설득력있게 들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