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삭감 통보' 김태균, '위기의 계절'
OSEN 기자
발행 2008.01.05 11: 21

[OSEN=이상학 객원기자] 귀를 의심했지만 들려오는 말은 분명했다. 연봉 삭감이었다. 내심 동결 또는 인상을 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황태자였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단에서는 7년차 최고연봉을 주며 자존심을 세워줬다. 구단 또한 예부터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대접은 확실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명한 칼바람이자 찬바람이었다. 반듯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걷던 그에게도 이제는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찾아왔다. 위기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한화 4번 타자 김태균(26) 이야기다. 연봉 한파 김태균은 지난 2001년 천안 북일고를 졸업하고 1차지명을 받고 한화에 입단했다. 올해 대전고 출신 신인 박상규가 한화에 입단하기 전까지 김태균은 한화의 마지막 1차지명 야수였다. 신인 때 연봉은 여느 신인들처럼 2000만 원이었다. 데뷔 첫 해 후반기부터 붙박이 4번타자를 꿰차며 2년차 때 연봉은 4000만 원으로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은 후 3년차 때 연봉이 3500만 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3년차 시절 당당히 31홈런을 때려내며 1억500만 원으로 4년차 연봉이 올라갔다. 이후에는 탄탄대로였다. 2005년 5년차 1억5500만 원, 2006년 6년차 2억4000만 원, 2007년 7년차 3억1000만 원을 받았다. 사실 김태균이 데뷔 7년간 쌓아온 누적기록들은 놀라운 수준이다. 7년간 821경기에서 타율 3할6리·138홈런·547타점을 올렸다. 현역선수를 기준으로 데뷔 첫 7년간 김태균보다 타율·홈런·타점에서 더 나은 실적을 올린 선수들은 이승엽·양준혁·마해영·박재홍·김동주 등 단 5명밖에 되지 않는다. 현역 최고의 오른손 거포 심정수도 데뷔 첫 7년간 성적은 타율 2할8푼9리·126홈런·418타점으로 김태균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연차가 아니라 나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김태균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낸 선수는 이승엽이 유일하다. 분명 누적성적만 놓고 볼 때에는 ‘친구이자 라이벌’ 이대호조차 함부로 김태균에게 명함을 내밀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성적이 하락하거나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특히 장타가 점점 감소했다. 데뷔 첫 해였던 2001년에만 하더라도 김태균은 12.25타수당 하나꼴로 홈런을 날리는 가공할 만한 홈런 생산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6년간 김태균은 21.42타수당 하나꼴로 홈런을 치는 데 그치고 있다. 장타율도 0.572를 찍은 2003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다. 최근 2년 연속 장타율 5할대 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홈런은 2003년 딱 한 번 30홈런을 넘기곤 30홈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있다. 김태균이 데뷔 첫 7년간 담장 밖으로 날린 홈런과 이종범이 데뷔 첫 7년간 넘긴 홈런(135개)도 겨우 3개 차이에 불과하다. 긴 슬럼프 김태균이 고졸 3년차 때 31홈런을 기록하고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자 모두가 김태균을 ‘포스트 이승엽’ 후보로 지목했다.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으로 3할-20홈런-100타점을 넘기며 4번타자로서 해결사 능력을 발휘한 김태균은 그러나 2005년부터 원인모를 침체에 빠졌다. 타율은 2할9푼대를 계속해 유지했으나 홈런과 타점이 뚝 떨어졌다. ‘투고타저’ 바람이 부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김태균이라면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바람이었다는 점에서 팬들의 실망이 커져갔다. 때마침 동기생 이대호가 껍질을 깨고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김태균과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김태균의 곁에는 언제나 강타자들이 함께 했다는 점에서 체감 실망은 두 배였다. 김태균의 부진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방망이 무게를 놓고 정체성을 찾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2006년 첫 슬럼프에 빠졌을 때 김태균은 시즌 전 방망이 무게를 950g짜리로 늘렸다. 일종의 이승엽 따라하기였다. 그러나 방망이가 무거워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자 타격부진이 시작됐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 여파로 훈련량이 부족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지만, 홈런타자로의 변신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도 없지 않았다. 2006년 전반기 72경기에서 단 4개 홈런에 그친 김태균은 후반기부터 880g짜리로 방망이를 바꿨고 이후 52경기에서 9홈런을 쳤다. 이듬해 김태균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아예 990g짜리 방망이를 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시즌 초반 김태균은 다시 침묵했고 방망이를 930g짜리로 줄였다. 이후부터 홈런포가 폭발, 시즌 초반 홈런레이스를 주도했다. “시즌 초반에는 홈런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다. 홈런왕을 하겠다고 선언해서인지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 김태균의 말이었다. 하지만 전반기 77경기에서 17홈런을 때려낸 김태균은 후반기 41경기에서 겨우 4개 홈런을 때리는 데 그쳤다. 마치 2006년 전반기와 후반기를 뒤집어 놓은 듯했다. 방망이도 이것저것 바꿔가며 썼고 무게도 자주 바꿨다. 오히려 문제는 마음가짐이었다. 후반기 내내 김태균은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는 팀 성적에 대해 자책감에 시달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4번 타자로서 남다른 고뇌를 느끼며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이다. 김태균의 긴 슬럼프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시즌 초반 크루즈가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거지다. 크루즈가 앞에서 타점을 다 가져간다”며 볼멘소리를 한 김태균은 “슬럼프만 없었으면 좋겠다. 꾸준하게 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태균과 꾸준함은 과거에만 하더라도 이음동의어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었다. 김태균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어버렸다. 부진이 심각할 때 김태균은 “때로는 4번 타자가 아니라 6~7번 타자로 치고 싶기도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김태균이 한창 성장할 때 한화는 야수진 세대교체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한화는 포스트시즌 단골 손님으로 격상됐고, 자연스럽게 김태균이 해결해야할 부담도 커졌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치는 적극성도 사라지고 말았다. 타격은 기술만큼이나 심리적인 요인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 김태균은 한창 커가던 3~5년차 시절에 대해 “멋모르고 스윙할 때”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볼 때 그 시절 김태균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신중하고 침착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 시절 김태균은 속으로 겁도 없었고 맘껏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야구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는 오래된 속설처럼 연차가 쌓이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김태균이 4번 타자로서 느끼는 고뇌도 깊어졌다. 그 와중에도 김태균은 찬스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2006년 득점권 타율은 3할6리였으며 2007년에는 득점권 타율 3할7푼을 기록했다. 기대치만큼은 아니었지만, 4번 타자로서 해야 할 몫은 해낸 김태균이었다. 시행착오를 겪는 와중에도 김태균은 한 팀의 4번 타자로서 어느 선수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포스트 장종훈 김태균은 ‘포스트 이승엽’ 후보 1순위였다. 하지만 김태균에게는 이승엽보다는 장종훈이 되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통산 340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올라있는 장종훈은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자 한화의 전설이며 4번타자의 전설이다. 그 장종훈이 2005년 은퇴를 선언하고 비워둔 정든 라커를 차지한 이가 다름 아닌 김태균이었다. 장종훈은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기뻐했다. 한때나마 자신을 밀어낸 경쟁자였지만, 향후 팀을 이끌어나갈 후배 4번타자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종훈의 라커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곧 4번타자라는 중책을 완전하게 물려받는 것을 뜻했다. 김태균은 만 19세부터 4번타자라는 중책을 맡았다. 리그 최연소 4번타자였다. 그리고 장종훈의 자리를 물려받는 그 순간부터 김태균에게 4번은 완전한 운명이 됐다. 그러나 한화는 1992년 장종훈이 홈런왕에 오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홈런왕을 배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엄연히 말하면 1992년 장종훈도 빙그레 소속이었다. 1994년부터 한화가 된 뒤에는 홈런왕이 없었다. 규모가 가장 작은 대전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실망스럽다. 김태균은 한화의 첫 홈런왕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마음고생도 누구보다 크다. 팬들은 김태균의 그릇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보다 더 많은 질책과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타자지만 지금보다 두 배로 더 잘할 수 있는 타자가 바로 김태균이다. 그런 김태균이 헤매고 있으니 지켜보는 팬들도 김태균 본인만큼이나 답답하고 안타깝다. 구단의 연봉 삭감 제안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구단 입장에서도 김태균의 지금 성적은 성에 차지 않는다. 더욱이 올해에는 김태균이 팀 내 최고 거포로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시점이다. 외국인 타자도 중장거리형 덕 클락을 뽑은 만큼 김태균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연봉 한파와 긴 슬럼프로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김태균이지만 그는 이제 겨우 26살이다. 젊은 날 고뇌와 고생은 훗날 더 나은 김태균을 위한 성장통이 될 것으로 팬들은 믿어의심치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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