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처음부터 그는 배척 대상이었다. 2005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현장은 이 선수 때문에 파장 일보 직전까지 갔다. 울산 모비스에 전체 2순위로 지명된 김효범(25·195cm)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순간부터 김효범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갈렸다. 교포 출신으로 과대 평가된 거품이라는 평가, 기량과 화려함을 겸비한 풍부한 차세대 농구스타라는 극단적인 시선으로 갈렸다. 지난 2년은 전자였다. 제대로 된 선수 구실도 못하는 과대 평가된 선수라는 평가가 다수였다. 하지만 3년차로서 맞이한 올 시즌 김효범은 리그 최고의 식스맨으로 재탄생하며 반전의 서막을 열었다. ▲ 과분한 기대 김효범이 처음 한국에 알려진 것은 브라이언 김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동영상 때문이었다. 화려한 덩크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농구팬들을 열광시켰다. 무엇보다도 동영상 속 주인공이 한국계 캐나다 교포라는 점이 팬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탄 김효범은 2004년 7월 경희대에서 공개훈련을 가지며 본격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2순위로 지명됐다. 그러나 김효범에 이어 또다른 교포 출신 한상웅이 전체 3순위로 서울 SK에 뽑히자 대학팀 감독과 선수들이 집단 퇴장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처음부터 좋지 않은 징조였다. 데뷔 첫 해부터 김효범에게는 악재가 겹쳤다. 예기치 못한 허리 부상으로 전지훈련에도 제외됐다. 한창 한국농구에 적응해 갈 시점에서 허리를 다쳐 드러누워야 했다. 뒤늦게 복귀했지만, 좋은 실력을 보일 리 만무했다. 데뷔 첫 해였던 2005-06시즌 30경기에 출장했지만 평균 3.3점·1.3리바운드에 그쳤다. 미국식 개인농구 스타일을 버리지 못하는 등 공격에서 개인플레이로 일관해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수비도 의욕은 넘쳤으나 파울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조직력에 해를 끼치는 플레이와 요령없는 수비를 누구보다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유재학 감독이다. 유 감독에게 김효범이 듣는 것이라고는 호통밖에 없었다. 2년차였던 2006-07시즌에도 김효범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41경기에서 평균 3.4점·1.3리바운드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겼다. 보여지는 기록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 모비스는 우승을 목표로 뛰는 팀이었고, 같은 포지션의 이병석·우지원·김동우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에게 가려야 했다. 하지만 김효범으로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하나의 과제였다. 줄곧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농구를 한 선수가 한국에 오자마자 당장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없었다. 충분한 적응기간이 필요했으나 화려하게 포장된 동영상으로 졸지에 김효범에 대한 기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불운이었다. ▲ 절치부심 유재학 감독이 김효범을 꾸지람하는 장면은 모비스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유 감독도 김효범이 농구선수로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자질은 높이 평가한 사람이었다. 김효범을 전체 2순위로 뽑은 장본인이 바로 유 감독이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심리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을 해소하고 한국농구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김효범은 겨우 1983년생 젊은 피였다. 모두가 잃어버린 2년이라고 생각한 기간 동안 김효범은 몸소 배우며 한국농구에 적응해갔다. 김효범은 지난 2시즌을 되돌아보며 “내가 봐도 별로였다. 플레이가 너무 거칠었다”고 털어놓았다. 김효범은 절치부심하며 오프시즌 동안 훈련에 매진했다. 때마침 모비스는 정규리그-플레이오프 통합우승을 달성한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핵심멤버들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특히 양동근과 김동우가 빠져나가며 김효범에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유 감독도 다른 시즌과는 달리 김효범을 붙박이 주전으로 박아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프시즌 동안 김효범은 하루 500개가 넘는 3점슛을 집중적으로 연마하며 부족한 슈팅력을 길렀다. 교포 출신 선수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팀플레이와 수비력을 보강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과분한 기대 속에 접혀진 날개를 다시 한 번 펼치기 위해 의지를 다졌다. 두드리니 문은 열렸다. 대구 오리온스와의 시즌 공식 개막전에서 주전으로 출장, 데뷔 후 가장 많은 20점을 쏟아부었다. 바로 다음 경기였던 서울 SK전에서 다시 개인 한 경기 최다득점을 29점으로 늘리며 방성윤과의 맞대결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후 다소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보였으나 적응기간이었던 지난 2시즌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결과물을 나타냈다. 시즌 초반 모비스는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지만 함지훈과 함께 김효범의 성장은 모비스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지난 2시즌과 비교할 때 슈팅력이 눈에 띄게 안정됐으며 경기를 보는 시야도 훨씬 넓어졌다. 김효범의 재발견이었다. ▲ 최고 식스맨 김효범은 시즌 첫 17경기에서 모두 주전으로 출장, 경기당 31.1분을 뛰며 평균 11.5점·2.1리바운드·1.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비교적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12월부터 유재학 감독은 우지원을 주전으로 기용하는 대신 김효범을 식스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12경기 중 11경기에서 벤치멤버로 기용된 김효범은 경기당 24.2분으로 출전시간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10.6점·1.8리바운드·1.1어시스트로 크게 떨어지지 않은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다. 벤치멤버로 출전한 11경기 가운데 9경기에서 팀내 최다 벤치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돋보이는 벤치 활약상이다. 식스맨으로 변신한 이후 김효범이 가장 달라진 부분은 기복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벤치에서 기용된 11경기 중 무려 8경기에서나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최근에는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 중이다. 데뷔 후 처음있는 일이다. 게다가 식스맨으로 출장한 11경기에서 야투성공률이 47.8%로 주전으로 출장한 18경기 야투성공률(40.4%)보다 훨씬 높다. 주전으로 뛸 때에는 경기당 6.0개의 3점슛을 시도했으나 식스맨으로 나올 때에는 경기당 3.4개의 3점슛만 던지고 있다. 외곽슛보다 골밑 돌파로 득점루트를 창출했다. 주전으로 뛸 때에는 경기당 1.22개의 자유투를 얻는 데 그쳤으나 식스맨으로는 경기당 2.55개의 자유투를 얻어낸 비결이다. 식스맨 김효범은 주전 김효범보다 확실히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선수임을 기록이 증명하고 있다. 김효범이 식스맨으로서 고비 때마다 기용돼 보여주는 특유의 돌파력은 팀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록 식스맨으로 신분이 하락됐지만 4쿼터 승부처에서 코트를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김효범이다. 김효범의 1대1 공격은 승부처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최근에는 득점과 공격에서뿐만 아니라 수비와 리바운드에서도 팀에 보탬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SK전에서도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를 펼치며 팀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도 일조했다. 김효범의 새로운 진가였다. 이제 김효범은 확실히 ‘선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리그 전체 식스맨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성적을 내고 있다. 보직은 식스맨이지만 그 이상의 실적을 내며 3년차에야 성공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다. 그야말로 김효범의 재발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