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성공적인 홈코트 복귀전이었다. 대구 오리온스 김승현(30·178cm)이 무려 9개월 2일 만에 대구 홈코트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김승현은 지난 6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의 홈경기에 선발출장했다. 지난해 4월4일 삼성과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이후 첫 대구 홈경기였다. 당시 경기에서 김승현은 38분36초를 뛰며 18점·10어시스트·4리바운드로 맹활약, 오리온스를 4강으로 이끈 바 있다. 하지만 불과 9개월 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상대팀이 삼성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오리온스의 위치는 4강에서 최하위까지 떨어져있었다. 공백 지난해 10월19일 울산 모비스와의 시즌 공식 개막전에서 김승현은 40분을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12점·12어시스트·3리바운드로 맹활약, 서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김승현은 후반부터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허리. 매우 민감한 부위였다. 이전에도 김승현은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이유로 결장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경기 후 김승현은 “아직도 허리가 좋지 않다”며 “그동안 잔부상이 많았다. 올 시즌에는 큰 부상없이 7시즌 연속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승현의 바람과 달리 그는 이후 무려 80일-27경기라는 장기 공백기를 가져야했다. 김승현이 빠진 이후 오리온스에도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빠진 이후 27경기에서 3승24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고 말았다. 김승현 입단 후 하위권과는 담을 쌓았으나 오랜만에 순위표 밑바닥으로도 떨어졌다. 지난 시즌에는 피트 마이클이라는 최고의 득점기계가 있었지만, 올 시즌에는 프로농구 최초로 무려 4번이나 부상을 이유로 외국인선수를 교체할 정도로 악운들이 연이어 겹쳤다. 관중들의 발길도 뚝 떨어졌다.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3023명의 관중을 동원한 오리온스는 그러나 올 시즌 2라운드까지 경기당 평균 2617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데 머물렀다. 지난 시즌보다 15.5%나 줄어든 수치였다. 오리온스는 김승현이 빠진 사이 7년 만에 프로무대로 이충희 감독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지휘봉을 놓는 등 불운에 불운이 한꺼번에 겹쳤다. 그야말로 바람잘날 없는 날들이었다. 모든 것이 김승현의 부상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지만 김승현의 부상이 오리온스 추락의 큰 요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충희 전 감독은 김승현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으나 그가 부상으로 낙마하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김승현의 빈 자리에 정재호와 김영수가 투입됐으나 한계가 있었다. “우리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이랑은 못 한다. (김)승현이가 얼마나 먹기 좋게 패스를 주는가”라는 오리온스 관계자의 말은 오리온스에서 김승현이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복귀 연패 기간 동안 팀 동료들과 머리를 짧게 정리한 김승현은 5일 원주 동부와의 원정경기에서 마침내 복귀전을 가졌다. 주전으로 출장해 생각보다 많은 21분17초를 뛰었으나 득점은 없었고, 5어시스트·3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데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수비에서도 매치업 상대였던 동부 표명일에게 14점을 허용했다. 김승현이 긴급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온스는 선두 동부에 70-95로 대패했다. 경기 후 김승현은 “아직 예전 스피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달 정도 더 뛰면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하지만 하루가 지난 6일 대구 홈코트 복귀전에서 김승현은 경기 감각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등번호 15번을 달고 처음으로 홈코트를밟은 김승현은 주전으로 출장, 1쿼터부터 어시스트 4개를 배달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오리온스는 1쿼터에만 속공 4개를 성공시켰는데 이 가운데 3개가 김승현의 손끝에서 비롯된 속공들이었다. 1쿼터 8분경에는 골밑의 이동준에게 한 번에 찔러주는 날카로운 어시스트를 배달하기도 했다. 오리온스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김승현의 직선 아웃렛 패스와 골밑 엔트리 패스를 바탕으로 공격을 한층 원활하게 풀어나갔다. 김승현의 활약에 힘입어 1쿼터를 29-25로 앞선 오리온스는 그러나 2쿼터부터 삼성에 그만 경기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특히 김승현이 쿼터 종료 2분50초를 남기고 김승현이 교체된 이후 오리온스는 가드진에서 연이은 실책을 남발하는 등 마지막 2분50초 동안 7-13으로 뒤지며 역전을 허용했다. 김승현의 존재감이 여실히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스는 4쿼터 한때 3점차까지 점수차를 좁히는 등 이전과 달리 쉽게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후반에만 13점을 집중시킨 김승현이 그 중심에 있었다. 오리온스는 비록 92-106으로 패하며 시즌 두 번째로 10연패 수렁에 빠졌지만,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평균 관중보다 훨씬 웃도는 3748명의 관중이 이날 김승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도 ‘납득되는 패배’를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희망 김승현의 복귀로 가장 달라진 부분은 속공이었다. 지난 시즌까지 오리온스는 리그를 대표하는 속공군단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속공이 사라졌다. 지난 시즌에는 경기당 평균 4.56개의 속공을 성공시켰으나 이날 경기 전까지는 경기당 평균 3.17개의 속공에 그쳤다. ‘속공메이커’ 김승현의 공백 탓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에서 오리온스는 올 시즌 가장 많은 9개의 속공을 성공시켰다. 김승현이 관여한 속공이 무려 7개나 됐다. 속공에서 어시스트를 5개나 기록했고, 속공으로 직접 4득점을 올렸다. 뻥뚫린 고속도로 마냥 패스 길이 쭉쭉 뻗어나갔다. 대구팬들도 오랜만에 펼쳐진 오리온스의 속공 플레이에 환호했다. 골밑 높이 부재로 삼성에게 패했지만 오리온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거대한 청소기가 쓸고 지나간 듯한 관중석을 팬들이 메워줬고, 경기 후 선수들을 향한 환호도 어느 때보다 컸다. 김상식 감독대행은 “(김)승현이가 들어와 공격과 득점 면에서 많이 수월해졌다”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리온스 관계자들도 “(김)승현이가 자신감을 회복했다”며 반색했다. 삼성 안준호 감독도 “김승현이 들어오니 오리온스가 매우 좋아졌다. 몸상태가 60~70%밖에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 데도 위력적이었다. 몸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김승현은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의 포인트가드”라고 평가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김승현 본인이다. 김승현은 삼성전 이후 “동부전에는 코트가 낯설었다. 하지만 삼성전은 익숙한 대구라서 그런지 괜찮았다. 조금 더 빨리 뛸 수 있었고 몸도 더 가벼웠다. 예전 감이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코트를 너무 오래 비워둬 아직까지는 정상 컨디션을 언제쯤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 달 정도는 더 지나야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허리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 김승현으로서는 큰 힘이다. “허리 통증이 없다. 가끔 엄지발가락이 저릴 때가 있지만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김상식 감독대행은 김승현이 부상 복귀 후 2경기 연속 20분 이상 출전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지 않았다. “(김)승현이는 통증만 없으면 체력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승현이가 좋아지면 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는 것이 김 대행의 말. 김승현도 “감독님께서 잘 조절해주신다. 김상식 감독님께서도 같은 증상으로 은퇴하셔서 잘 아신다”며 “허리 근육과 배 복근을 틈나는 대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보강하고 있다. 침대에 있을 때도 허리 재활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김승현이 현재 컨디션만 꾸준히 유지한다면 오리온스에게도 희망은 있다. 프로농구 사상 첫 7시즌 연속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프로는 결코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팬들이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들여 플레이를 지켜보는 데에는 팀과 선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열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승현이라는 심장이 돌아온 오리온스에게 본격적인 열정의 시즌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