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김동주(32).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4번 타자 중 하나로 기억될 자타공인 특급타자이다. 그러나 그 김동주가 프로선수로서 최고의 기회인 FA 자격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궁지로 몰리고 있다. 시간은 가고 있는데 일은 풀리지 않고 있다. 여론도 매우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으로 진출하든 한국에 잔류하든 김동주라는 선수가 지닌 브랜드에도 흠집이 나고 있다. 몸값에 따른 실리는 이미 놓쳐버렸다. 명분이라고는 일본 진출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김동주를 향한 여론의 질타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왜일까.
62억 원
김동주는 1년을 손해 본 선수였다.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대만전에서 6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유격수 땅볼을 친 뒤 1루를 향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왼쪽 어깨를 다쳤다. 어깨 뼈가 부러지고 탈구된 큰 부상이었다. 이 때문에 무려 5개월을 결장했고 FA 자격 취득이 1년 더 늦춰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생애 첫 1루 슬라이딩이 큰 부상으로 연결돼 아픔은 더욱 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김동주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예부터 일본 프로야구 진출에 대한 의지를 보인 김동주로서는 1년이라는 시간은 분명 큰 손해였다.
하지만 김동주는 2007년을 매우 성공적으로 치렀다. 비록 목표로 설정한 전경기 출장에는 실패했지만, 119경기에서 타율 3할2푼2리·19홈런·78타점을 기록했다. 당당히 출루율(0.457) 부문 전체 1위에 올랐으며 장타율(0.534)에서도 전체 5위에 랭크됐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도 0.991로 전체 3위였다. 소속팀 두산도 당초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기대이상으로 값진 성과를 올렸다. 김동주의 성적은 단순히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자신의 앞뒤를 이룬 고영민과 최준석 그리고 안경현 등에게도 상승효과를 안겼다. 이른바 ‘김동주 우산효과’였다. 이 같은 김동주를 두산은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의지였다.
과거 두산은 심정수·강병규·진필중·정수근·박명환 등 1990년대 중후반 자체적으로 길러낸 스타들을 차례로 내보냈다. 알고 보면 두산팬들만큼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갈증이 큰 구단은 없을지도 모른다. 김동주에 대한 기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두산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FA 사상 최고액, 바로 4년간 최대 62억 원이었다. 지난 2004년 말 삼성으로 이적한 심정수의 4년 60억 원보다도 좋은 조건이었다.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해서는 지갑을 꾹 닫아두었던 두산이라는 점에서 김동주 잔류에 대한 의지는 분명했다. 김승영 단장은 모그룹으로부터 역대 최고액 집행 최종 재가까지 받으며 김동주 잔류에 총력을 기울였다.
62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받은 김동주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운을 떼며 확답을 내리지 않았지만, “심정적으로 두산을 이해한다. 만약 일본에 진출하지 않고 한국에 남는다면 반드시 두산에 잔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상 최고액에도 불구하고 옵션을 두고 이견이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김동주의 요구액이 드러났다. 무려 65억 원이었다. 김동주 잔류에 두 팔을 걷어붙인 두산 구단으로서는 낭패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사상 최고액이라는 두산 구단으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성의를 내비쳤지만, 돌아온 반응은 거절이었다. 62억 원이라는 금액마저 무색해지고 말았다.
일본
김동주는 62억 원을 일단 거절했지만 이미 일본을 먼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김동주에게는 62억 원이라는 사상 최고액보다는 일본 프로야구라는 보다 더 큰 물이 먼저였다. 김동주는 두산으로부터 62억 원을 제시받기 전부터 일본 진출을 기정사실화하며 입단 구단을 희망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한신 타이거스라는 퍼시픽리그와 센트럴리그의 명문 강팀들을 지망할 정도로 일본 진출에 남다른 의지를 보였다. 비록 62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거절했지만 김동주의 일본 진출을 향한 진정성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김동주는 일본 프로야구라는 하이클래스에 도전해 볼 만한 선수이며 일본에 대한 자신감도 컸다.
김동주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본 킬러’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고려대 시절인 1997년 대만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김동주는 26타수 14안타, 타율 5할3푼8리·9홈런·19타점이라는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치며 대회 MVP를 차지했다. 특히 대만과의 준결승전에서 역전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이 자랑하는 ‘에이스’ 우에하라 고지를 상대로 대회 기간 동안 무려 홈런 4개를 뽑아내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김동주에게 일본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 없었다. 언제나 김동주는 일본의 경계대상이자 영입대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시즌 중에도 에이전트를 통해 일본 진출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일을 서두른 김동주였지만 서두른 만큼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2년간 4억 엔을 요구한 김동주의 계약기간과 몸값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한, 김동주는 3루수 포지션 보장이라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한국 프로야구를 바라보는 일본의 눈은 많이 우호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초기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은 크다. 이 같은 조건을 다 채우며 김동주를 데려갈 구단은 전무했다. 2002년 말 일본 진출에 성공한 타이론 우즈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계약할 당시 조건은 1년간 연봉 5000만 엔이었다. 우즈가 5년간 한국에서 남긴 실적보다 김동주의 성적이 우수한 것도 아닌데 그보다 훨씬 좋은 계약조건을 내건 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에 가까운 일이었다.
김동주는 “우선 일본을 알아본 뒤 결정하겠다”며 두산과 협상 테이블을 닫았다. 그러나 일본 진출에 온 힘을 쏟는 사이 두산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고 말았다. 결국 두산은 지난 2일 62억 원 제시안을 철회하는 강수를 두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하지만 두산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프로야구의 오래된 문제가 된 현대 유니콘스 문제를 말미암아 프로야구단 ‘거품빼기’ 바람이 불었다. ‘단돈’ 60억 원에 프로야구단을 살 수 있는 상황에서 김동주 하나에게 62억 원만 쏟아붓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또한 두산도 떠나간 다니엘 리오스와 함께 홍성흔·김선우 등 매듭지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끄는 김동주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2007년 해를 넘긴 후에도 “기다려달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두산은 김동주 하나만의 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명분
2007년 시즌 중에만 하더라도 시즌 후 ‘최대어 FA’ 김동주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LG와 롯데가 김동주 영입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고, 일본에서는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함께 요미우리 자이언츠까지 김동주에 관심을 보였다. 이외에도 오릭스 바펄로스, 야쿠르트 스월로스, 니혼햄 파이터스, 롯데 마린스 등이 김동주 영입 구단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김동주의 조건을 모두 채울 수 있는 팀은 일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김동주는 스스로 3루 포지션 보장이라는 조건을 떼고 협상에 나섰다. 지난 6일 극비 리에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협상구단은 요코하마였다. 일본 진출을 위한 마지막 카드였다.
그러나 요코하마와의 협상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요코하마는 8일 공식적으로 김동주 측에 입단을 거절한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이미 외국인선수가 6명이나 있고, 김동주 같은 거물에게 포지션을 보장해주지 못할 경우 실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입단 거절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김동주는 마지막까지 요코하마에 매달리며 입단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나 2년간 2억 엔을 요구한 김동주에 비해 요코하마가 제안한 1년간 1억 엔이라는 조건에는 괴리감이 커보인다. 김동주가 자존심을 버리고 스스로 몸값을 낮추지 않는 한 일본행 꿈은 물거품될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실리는 완전하게 소멸된다.
김동주에게는 시간이 없다. 일본 진출이 좌절되고 FA 협상 마감시한이 되는 오는 15일까지 계약을 하지 못하면 아예 한 시즌을 통째로 쉬어야 한다. 두산으로서는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은 김동주에게 얼마나 삭감된 계약안을 제시할지가 고민이다. 현실적으로 김동주가 국내에 잔류할 경우 대안은 두산밖에 없다. 김응룡 사장의 깜짝 발언으로 한때 삼성행이 급물살을 탔으나, 현실적으로 보상금까지 최대 80억 원을 투자하면서 김동주를 영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선택의 시간은 단 5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선택의 폭은 크게 좁아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김동주는 실망스러운 협상 과정으로 여론의 집중적인 질타까지 받고 있다. 1월 중순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까지 확실하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일을 끌고온 것 자체가 프로선수로서 아쉬운 대목이다.
실리를 잃어버린 김동주로서는 명분밖에 남지 않았다. 명분이란 결국 일본 진출이다. 야쿠르트에 입단한 임창용은 오로지 도전정신 하나로 3년간 연봉 1500만 엔이라는 신인급 대우를 감수하며 현해탄을 건넜다. 우즈도 ‘단돈’ 5000만 엔에 일본으로 갔다. 김동주가 일본 진출에 순수한 진정성이 있다면 실리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명분을 찾아야한다. 1년 계약으로 실력을 증명한 후 장기계약을 맺는 방법도 있다. 집중적인 질타를 받고 있는 김동주에게는 명분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더라도 향후 일본 진출과 같은 명분을 찾는 것이 악화된 질타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