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객원기자] 프로스포츠와 돈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돈은 프로선수에게 곧 가치요, 자존심이다. 올 겨울 내내 뜨거운 관심을 모은 ‘FA 최대어’ 김동주(32)는 돈과 자존심, 부와 명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동주는 부와 명예를 놓쳤다. 김동주에게 남은 것은 실현을 확신할 수 없는 명분뿐이다. 하지만 그 명분은 결코 그냥 명분이 아니다. 오랜 꿈, 바로 해외 진출이다. 김동주는 위험을 감수하고 1년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대단한 도전을 택하고 나섰다. 2008년은 김동주의 대단한 도전을 향한 출발점이다. 오랜 꿈, 일본 진출 FA 계약 마감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김동주는 1년간 계약금 없이 연봉 7억 원, 옵션 2억 원 등 총액 9억 원에 원 소속구단 두산과 재계약하며 두 달 넘게 끌어온 진로를 마침내 최종결정했다. 그리고 이튿날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동주는 수척했다. 수염도 깎지 않아 초췌한 인상을 주었다. 김동주가 수염을 기른 것은 지난해 시즌 초반 6연패에 빠졌을 때밖에 없었다. 표정에서도 결연함이 비쳐졌다. 오랜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1년 후를 기약하겠다는 의지가 상존했다. 김동주에게 일본은 어떻게든 부딪쳐야 하는 무대였다. 김동주가 일본 킬러라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지난해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 일본전에서는 뼈아픈 병살타와 삼진을 하나씩 기록하며 4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지난 1998년부터 일본전 성적은 16타수 3안타, 타율 1할8푼8리·1타점밖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동주가 일본 킬러라는 것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다. 지난 1997년 대만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우승을 이끈 선수가 김동주였기 때문이다. 당시 대회에서 일본이 자랑하는 ‘에이스’ 우에하라 고지에게 홈런을 4방이나 뽑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일본 진출은 일단 유보됐다. 일본 진출 좌절 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지만 김동주의 마음은 애초부터 태평양보다는 현해탄을 건너있었다. 김동주는 “어릴적부터 해외 진출이 꿈이었다”고 밝혔다. 물론 해외는 일본임에 자명하다. 이어 김동주는 “개인적으로는 일본 진출이 우선이다. 일본과 한국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김동주의 이 같은 의지는 여타 해외파 선수들의 꿈과 도전을 향한 미국 또는 일본 진출과 마찬가지다. 김동주처럼 프라이드가 강한 선수라면, 더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수 밖에 없다. 차가운 현실, 시장상황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김동주는 일본 진출 협상 실패의 이유를 “일본에서는 (수요가) 다 찼다. 3루 포지션 문제가 가장 컸고 선수영입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포지션과 외국인선수가 같이 물려 자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동주가 처음 희망한 구단이었던 한신 타이거스는 일본 내 최대어 FA 아라이 다카히로를 영입했다. 그의 포지션은 3루수였다. 소프트뱅크도 지난 몇 년처럼 메이저리그 출신 타자만 영입하겠다는 기조를 이어갔다. 알렉스 라미레스, 알렉스 카브레라 등 검증된 외국인 타자들의 이동도 김동주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당초 김동주는 3루수 포지션 보장과 2년간 총액 4억 엔이라는 조건으로 일본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김동주는 포지션 변경 가능성과 함께 2년간 2억 엔으로 몸값도 낮췄지만, 협상에 실패하고 말았다. 시장상황이 좋지 않았고, 김동주가 충분한 몸값과 대우를 받고 일본으로 진출하기에는 매력이 부족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5년간 174홈런을 때린 타이론 우즈도 5년 전 1년에 연봉 5000만 엔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김동주는 한국프로야구 최고 4번 타자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이승엽처럼 상징적인 기록을 남긴 선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우보다는 진출이 우선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주가 이에 굴하지 않고 두산과 1년 계약을 통해 일본 진출 가능성을 남겨둔 것은 그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동주는 “내년에 얼마로 평가받을지 모르지만 일본으로 나가는 방향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3루 포지션 변경과 같은 부차적인 조건도 감수하기로 결심했다. “3루 포지션 변경도 감수할 것이다. 특별히 가고 싶은 구단도 없다. 리그도 상관없다. 팀 전력도 상관도 없다. 필요로 하는 팀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것이 김동주의 의지다. 4년간 총액 62억 원이라는 보장된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결과는 1년간 총액 9억 원이 되어버렸지만 김동주의 일본을 향한 도전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도전의 2008년 김동주에게 2008년은 야구 인생을 걸어야 할 중대한 한 해가 됐다. 김동주는 일본 진출을 향한 가장 최우선 조건으로 공격력을 꼽았다. “수비보다는 공격력이 우선”이라는 것이 김동주의 말이다. 김동주는 분명 좋은 타자지만, 이승엽처럼 가공할 만한 숫자를 남기지 못한 것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타율·출루율·장타율 같은 비율 기록은 좋지만, 홈런·타점·득점 등 누적 기록은 일본 구단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김동주의 스타일이 전형적인 거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 구단들에게는 확실한 어필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2008년 어떤 성적을 남기느냐가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사실 김동주에게 2007년은 근년 들어 가장 성공한 시즌이었다. 목표였던 전경기 출장에는 실패했지만, 119경기에서 타율 3할2푼2리·19홈런·78타점으로 활약했다. 출루율(0.457) 전체 1위에 올랐고 장타율(0.534)도 전체 5위를 차지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OPS는 0.991로 전체 3위였다. 게다가 자신의 앞뒤를 이룬 고영민·최준석·안경현 등에게도 많은 찬스를 만들어주었다. 김동주의 결승타는 7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신 고영민(7개)·최준석(12개)·안경현(7개)의 결승타가 도합 26개에 달했다. 이른바 ‘김동주 우산효과’였다. 2007년은 FA 취득을 앞둔 김동주의 마지막 시즌이었고 그만큼 동기부여도 확실했다. 그런 면에서 과연 김동주가 지난해처럼 2008년에도 활약상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또한 현대 유니콘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7개 구단 체제가 된다면, 김동주의 누적 기록은 더욱 손해를 볼 수 있으며 에이스급 투수들의 잦은 등장으로 비율 기록에도 흠집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김동주는 여전히 잔부상이 많지만 어느덧 베테랑이 됐다. 하지만 스스로 장기계약을 거부할 정도로 의지를 다지고 있다면, 결과는 또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꿈과 이상을 쫓기 위해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상주의자로 비쳐질지 몰라도 김동주의 의지는 결코 부서지지 않을 화석처럼 굳고 단단하다. 한국 프로야구를 바라보는 일본의 눈은 우호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초기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은 크다. 김동주에게도 이 같은 부담은 변함없다. 김동주의 2008년이 더욱 더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김동주는 파워를 가진 정교한 타자인 데다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단하는 선구안과 좋은 공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타자다. 나이가 들었지만, 도전정신 하나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김동주라면 2008년은 꿈을 향한 징검다리의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